[Opinion] 내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1.2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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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부터 동화책 대신 다양한 작품 도록을 읽고 자랐으며, 아버지 취향인 전시에 함께 다니며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접하였다.

 

그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미술을 배웠다. 한 번도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완전히 접은 적이 없었으며, 어렸을 땐 아버지를 따라, 조금 크고 나서는 나의 의지로 전시를 찾아다녔기 때문에, 따져 보면 나의 미술 감상 경력은 20년이 넘는다고 봐도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미술 감상 경력 20년이 넘는 미술 감상자로서 나의 경험에 근거하여, 미술관 관람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공유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내가 소개할 전시 감상 방법은 ‘꼭 이렇게 감상해야 한다’라는 것이 아닌, ‘이렇게 감상하는 법도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며,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유형의 전시가 있고 그 모든 전시를 같은 방법으로 감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므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고만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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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감상하는 사람 이미지


 

어렸을 땐 전시장에서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움직이지 않는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저 노트에는 무엇을 적고 다니는 것인지 참 궁금했다. 그 시절, 내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방법은 이러했다.


먼저, 티켓을 받으며 옆에 있는 팜플렛을 하나 집어 든다. 오디오 설명서가 있는 전시장이라면 부모님께 열심히 듣겠다는 약속을 한 후 사 달라며 조른다. 그렇게 팜플렛과 오디오 설명서로 무장하여, 큐레이터의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나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향대로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한다.

 

비슷하게 생긴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열심히 보기에는 지루하므로, 아무 표시도 없는 작품 앞에선 5초 이상 소비하지 않는다.

 

오디오 표시가 붙어 있는 작품은 분명 중요한 작품이므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설명서 속 큐레이터의 음성을 듣는다. 큐레이터의 말에 따라 작품을 이리저리 뜯어보다 보면 왠지 내가 이 작품을 엄청나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작품 관람을 하고 전시장을 나오면, 열심히 공부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아트샵 상품에 내가 오늘 본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는 것을 보니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2,000원짜리 작은 엽서를 몇 장 사서 집에 돌아와 팜플렛과 함께 서랍에 넣고 다신 꺼내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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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 이미지

(출처: MW2016 웹사이트)



아마 대부분의 전시 관람 입문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실수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미술에 대해 본인의 지식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가이드라인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려 정작 자신의 감상에는 집중하지 않게 되는 실수 말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의도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전시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을 볼 때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보는 자의 자율적인 감상이다.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정확한 답을 내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작품 앞에서 자신의 자율적인 감상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그 작품에 관해 생각한 것이 전문가의 의견과 달랐을 때, 나의 얕은 지식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명한 미술 비평가도 아니고, 그런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성급하게 미술 작품에 대한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 잭슨폴록의 작품을 보고 ‘저건 5살짜리 꼬마애도 그릴 수 있겠다’라는 감상을 떠올리고, 그 작품에 대해 더 생각해 보거나 공부해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작품이 가진 예술적 의미를 영영 알 수 없게 돼 버린다.

 

하지만 처음 느낀 감상에서 조금 더 나아가 ‘왜 저렇게 그렸을까?’, ‘저 색의 조합은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지?’ 등의 생각을 해 본 후 그 작품에 관해 공부해 본다면, 우리는 그 작품이 예술계에서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가졌는지 알 수 있게 되며, 저명한 예술 비평가들의 평가에 ‘아닌데,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라는 태클을 걸어볼 수도 있게 된다. 즉, 그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이 구체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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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넘버31>, 1950

 

 

그래서 나는 이제 막 미술 전시 관람에 발을 들여놓은 미술 관람 입문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팜플렛과 오디오북은 일단 가방에 넣어 두세요. 그리고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며 눈에 띄는 작품을 몇 점 찾아보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그냥 지나치셔도 좋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선 5분 이상 그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그렇게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팜플렛과 오디오북을 다시 꺼낸 후,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다시 관람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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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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