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침묵을, 듣는다 [도서/문학]

희곡 '화염'속 침묵에 대한 고찰
글 입력 2021.01.27 20: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무지에서 비롯된 보복의 역사를 끊기 위해 배우러 떠난 이가 언어로 무수히 투쟁한 결과 ‘침묵’하게 되었을 때, 그선택은 사뭇 대담해 보인다. 언어는 내뱉는 것이지, 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이들을 마주한다면, 당신은 ‘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테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작품 ‘화염’ 속 주인공인 나왈의 일생과 그녀의 침묵을 통해 더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당신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두 번의 폭발, 두 번의 침묵


 

희곡 ‘화염’에서 나왈은 두 번의 폭발을 경험하며, 각 폭발의 결과로서 침묵을 택한다.


첫 번째 폭발은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와합에게 임신 사실을 밝힌 순간이다.

 

“내 뱃속에 아이가 하나 있어, 와합! 내 배가 네 것으로 꽉 차있다는 말이야. (중략) 엘람 할머니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대양이 내 머릿속에서 폭발해 버린 것 같았어. 화상을 입었다고.”

14세의 아이에게 임신이란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는 혼란과 두려움을 수반한 것임을 나왈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녀에게서 형언하기 힘든 당황스러움과 혼란이 느껴진다.


“아무 말도 않겠다고 약속해줘. 부탁이야, 피곤해. 부탁이야, 침묵을 지켜 줘. 난 입을 다물게. 아무 말도 하지마. 아무 말도” 

 

그러나 당황스러움보다 큰 두려움이 찾아오고, 나왈은 와합에게 침묵하기를 요청한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레바논 내전 상황에서 기독교인 나왈과 무슬림 와합의 사랑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잉태한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었지만, 그 행복은 알려지는 순간 곧 불행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세상에 홀로 나가 살아남기도,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들었던 어린 나왈은 아이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언젠가 다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며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택한 첫 번째 침묵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이었다.

 

 

 

“배워라, 읽고 쓰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첫 번째 폭발과 침묵 이후 나왈에게는 분노가 싹 텄다.

 

그녀는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도록 강요했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인 전쟁에 대한 분노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 그녀의 할머니 나지라의 유언에 의해 자신이 느끼는 분노, 즉 어머니를 향한 것부터 전쟁의 상황까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우기 위해, 말하고 쓰기 위해 자신의 고향을 떠난다.

 

 

그을린2.jpg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화염'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그을린 사랑'의 일부다.

 

 

이후 3년 만에 말하고 쓰는 방법을 배워 돌아온 나왈은 나지라의 묘비에 이름을 새겨주고 아들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분노가 분노를 낳는 과정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시작을 더듬을 수조차 없는 그 분노의 유산을 끊어내기 위해 쓰고, 말하고, 노래하며 사람들에게 사상을 알린 나왈의 정 반대에서, 나왈의 아들은 생명에 대한 감각이 잘린 채 유능한 저격수를 거쳐 ‘아부 타렉’이란 이름으로 고문 기술자가 되어 잔혹한 고문을 자행한다.

 

 

아들과 어머니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감옥에서 아부 타렉과 72번으로 만나

아부 타렉의 강간으로 인해

아들과 어머니 사이,

쌍둥이(잔느, 시몽)가 태어난다.

 

 

 

어린 시절은 목에 꽂힌 칼이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나왈은 고문 기술자로서 무자비한 고문과 성폭행을 자행한, 그래서 잔느와 시몽이 태어나게 한 장본인인 아부 타렉의 재판을 진행하는 내내 증언하며 침묵하지 않는다. 이는 그녀가 나지라와 한 약속, 즉 불행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배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전쟁은 일어났고 수많은 이들이 끊어낼 수 없는 폭력의 굴레 속, 서로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증언하는 것이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 믿었으나, 그녀의 외침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가, 자신을 강간해 쌍둥이를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진실이었다. 이는 지성적 사고를 뛰어넘는 충격적 사실이며 나왈에게 일어난 두 번째 폭발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깨달은 순간, 침묵한다.

 

 

그을린1.jpg


 

작품의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목격한 독자들은 이때 비로소 침묵의 폭발적 데시벨을 감지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기로 맹세하여 평생을 찾아다닌 대상이, 사랑은 고사하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감정은 ‘넌 일어나서 그 조그마한 피에로 코를 꺼냈지. 그리고 내 기억은 폭발해 버렸단다.’라는 편지의 구절에서 압축된 문장으로 드러난다.


진실을 마주한 나왈은 결국 끊임없이 지켜온 목소리를 거둔다. 사랑이 있는 곳에 증오는 있을 수 없기에 사랑을 지키기로 선택한 것이다.

 

 

 

침묵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다가간다


 

흐릿하고 뭉뚱그려진 감정은 언어를 통해 실체를 가지고 명확해진다. 따라서 말할 줄 알고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은 말을 함으로써 표현하고, 생각할 수 있다.

 

나왈도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표현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침묵했다면, 그 침묵은 사랑뿐만 아니라 증오의 감정까지 모두 용인하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지는 책임’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따라서 그녀의 두 번째 침묵은 단순히 흐르는 정적이라기보다 두려움과 사랑, 원망과 용서가 모두 함축된 숭고의 경지에 가까워 보인다.


이 침묵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왈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한 간병인 앙투완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분 머리맡에서 보낸 몇 년 동안, 저는 당신 어머니의 침묵을 들으려고 애쓴 나머지 넋이 나가 있었죠.”


나왈의 인생과 그녀가 마주한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앙투완에게 나왈의 침묵은 그저 진 빠지게 답답한 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유언을 따라 진실의 조각을 찾고 비로소 침묵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는 침묵으로 화답한다.


침묵은 진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그저 닫힌 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의 코앞까지 다가온 이들에게 침묵은, 숨죽여 기다리는 시간이다.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모든 것을 감내했기에 얼마나 고귀한 선택이었는지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실이, 기다리는 이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아니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함께 목소리를 거두고 침묵에 귀 기울였을 뿐이다.


목소리와 외침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토록 마음을 때리는 데시벨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말라갈 때마다, 혹은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마다 ‘화염’과 나왈을 떠올린다. 혹시라도 우연히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읽기를, 그래서 함께 그 침묵에 귀 기울이기를 바래본다.

 

*

 

아래는 나왈이 쌍둥이들에게 남긴 편지의 일부다.

 

 

만약 울고 있다면 울음을 그치지 마라

왜냐하면 나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니까.

어린 시절은 목에 박힌 칼이지

그리고 넌 그걸 빼낼 줄 알잖아.

이젠, 말을 참는 걸 다시 배워야 한다.

그건 때론 아주 대담한 행동이야.

말을 참는 것 말이다.

이젠, 역사를 다시 써야 해.

역사가 산산조각 나버렸거든.

천천히

모든 조각들을 위로해 줘야 해

서서히

모든 기억들을 치유해 줘야 해

조용히

모든 이미지들을 달래 줘야 해.




김현나.jpg

 

 

[김현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