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란티노를 싫어해요 [사람]

글 입력 2021.01.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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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다지 많이 보지는 못한 사람으로서, 나는 언제나 내 취향을 정당화할 논리나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특히나 그것이 비판일 때는 말이다. 나는 영화를 배운 사람도 아니고, ‘죽은 시인의 사회’, ‘트루먼 쇼’, ‘포레스트 검프’ 같은 소위 ‘명작’도 다 보지 않았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나의 의견이 높은 신빙성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의 의견을 거짓으로 포장하곤 했다. 대개는 싫은 것을 좋다고 했다. 사람들은 비판보다는 칭찬에 대해 더 유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실은 별로 재밌지 않았던 프랑스 영화를 극찬하는 말을 늘어놓았고, 무리에 섞이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감독을 칭찬하는 말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여기에 지적 허영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대부분 내 의견에 대한 자신감 결여, 그리고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모두가 사랑하는 명작을 비판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로 인해 물 흐르듯 이어지던 대화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내가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전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킬 빌’은 짜릿했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통쾌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들을 마음 다해 아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위 영화광들이 모인 자리에서 타란티노 얘기가 나오면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좋아하는 척을 하기는 싫고, 싫다고 말하는 건 더 싫었다. 정확히는, 내가 타란티노를 싫어하는 이유를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 아는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어쩌다 보니 타란티노 감독이 튀어나왔다. 난 사실 타란티노 싫어해. 그 사람이 약간은 민망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크게 대꾸하고 말았다. 어, 저도 싫어하는데!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은 타란티노의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라서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근데, 내가 어디 가서 타란티노가 너무 잔인해서 싫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게 매력이라더라고. 그래서 얘기 잘 안 해.” 어쨌든 타란티노를 싫어한다는 공통점을 찾은 우리는 그 뒤로도 종종 영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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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뭔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와 사정이 있다. 가령 어릴 때 참외를 먹고 체한 뒤로 참외를 먹지 않는 내 동생처럼, 또는 마시기만 하면 딸꾹질이 나서 탄산음료를 싫어하는 내 친구처럼 말이다. 이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호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집안의 어른들은 여전히 참외만 나오면 내 동생에게 왜 참외를 먹지 않느냐고 캐묻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울퉁불퉁해진 표면을 따라 빚어지는 취향은 나의 생각, 가치관, 그리고 인생을 모조리 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타란티노를 싫어한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이유, 그리고 그 사람이 민망하게 웃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나 자신의 일부를 어쩔 수 없이 깨 보이는 것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취향이 삶의 어떤 굴곡을 지나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다. 어떤 술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이 작품은 왜 싫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진 취향 그 자체보다는, 그걸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 나에게는 없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내 취향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지 않는, 그리고 똑같이 다른 사람의 취향도 존중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나의 불호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삶을 미주알고주알 꺼내 놓기가 싫어 입을 다물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내가 드러낸 생각과 삶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멋대로 단정 짓는 것은 싫어하면서, 정작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질 생각을 지레짐작하고 멋대로 판단했던 것이다.

 

영화 얘기를 꺼내기 전에 머뭇거리는 버릇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인기 있는 영화감독이고, 나는 영화 감상이 취미에 불과한 한낱 학생이고, 영화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타란티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타란티노를 싫어한다고 해서 나를 마음대로 재단할 사람이라면, 어쨌든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취존’, ‘싫존주의’와 같은 말들을 이제야 조금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취향’에는 우열이 없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쉽게 잊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있겠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명작은 왜 명작이고, 졸작은 왜 졸작일까? 평론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우리가 ‘싫어함’에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물론 그렇다고 이유없는 혐오나 비방을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저는 어떤 걸 싫어해요’ 하면 ‘그렇군요’하고 넘어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타란티노의 잔인함은 싫어하지만, ‘쏘우’는 좋아하는 것처럼, 싫어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조금 자신이 생긴 기분이다. 나는 타란티노를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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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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