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풍요로운 삶을 가꾸기 위해 [사람]

글 입력 2021.01.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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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옷이나 전자기기 같은 것에 대해 큰 물욕이 없는 내가 한가지 유일하게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음악 어플을 구독하는 것이다. 하루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는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음악이 없는 일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런 수입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이 멜론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구독하며 매월 일정량을 지출하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하는. 대학생이 되고 난 뒤로 4년째 줄곧 같은 음악 어플을 사용하고 있는데, 어느 날 통장 잔고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보고 있으면 “이걸 계속 결제하는 것이 맞나”부터 시작해서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하나”하는 심각한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절대적인 숫자도 숫자지만, 그만큼 내가 음악 듣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뜻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좀 덜 듣는 대신 학교공부나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처럼 대학생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전시회를 가는 등의 모든 문화생활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부나 일 등 삶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굵직굵직한 과업들과 달리 이런 것들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 사소해서,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을 쏟기에도 바쁜 탓이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힘든 사람에게 문화생활을 즐길 마음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년 이맘때 나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버스로 30분 되는 거리를 오갔다. 기타를 배우고 싶었던 마음은 이전에도 나를 찾아왔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인터넷으로 중고로 된 값싼 통기타를 사서 학교에서 여는 방과 후 수업을 친구와 함께 들었었다. 그때 기타는 내게 너무도 어려웠던 악기였다. 손가락을 벌려 코드를 잡고 피크로 6개의 줄을 쓸어내려 보았지만, 악기가 오래돼서 그런지, 잡는 방법이 틀려서인지 소리가 제대로 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대로 기타는 내 관심사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졌고 집구석으로 내팽개쳐졌다.


대학생이 되자 기타를 다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갈망이 슬금슬금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방학에 새 기타를 사서 레슨을 받았다. 다행히도 중학생 때와 달리 어렵지 않게 코드 몇 가지를 잡을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곡을 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레슨을 받지는 않는다. 물론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개강하고 나면 기타를 치면서 취미를 즐길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기타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 굳이 계속해서 돈을 주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두 달은 선생님과 유대감을 쌓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레슨 날 선생님이 해주신 한 마디가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계속 레슨을 받지 않더라도, 기타를 혼자서라도 계속 쳤으면 좋겠어요. 기타를 치면 삶이 풍요로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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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 그렇다. 고단한 하루 끝에, 혹은 일상의 작은 틈새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문화예술은 우리에게 불쑥 찾아와 그 가치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맛있는 간식이 있다면 더 좋다), 혹은 잠깐 시간을 내 들린 카페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고 이내 기분이 좋아져 노래의 멜로디를 속으로 흥얼거릴 때. 삶이 아무런 재미 없이 팍팍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러한 순간들이 있음에 우리는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 자신과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고, 다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며,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흔히 시네필이라 불리는 사람들처럼 많은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특정한 장르나 음악학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어서 그 음악이 왜 좋냐는 물음에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는 페이지를 넘기기에 바빴지 행간의 의미를 곱씹거나 사색에 잠기는 일은 적었다. 뮤지컬과 연극은 아직 보러 가본 적이 없다.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고 문화 전반에 관심이 늘어난 지금,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 그런 것들을 즐길 마음과 시간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보고 싶었던 책과 영화는 학기 중에는 학교공부를 하느라 방학에 보겠다는 마음으로 늘 저 멀리 쌓아뒀고, 방학에도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끝까지 안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바쁘게 살면 공부도, 문화생활도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슈퍼맨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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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선생님의 말처럼, 좋아하는 책, 영화, 드라마, 음악, 전시회가 삶에서 가지는 의미, 그 풍요로움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고, 일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이 없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이 차단됐던 2020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 역시 집에서 비대면으로나마 즐기는 문화생활이었다.


어느덧 1월도 벌써 다 가버렸지만 그럼에도 연초에는 늘 싱숭생숭한 기분에 잠겨 지낸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계획도 세워보고, 얼마 안 가 나태해지는 나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이 가장 많아지는 달이다. 20대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 올해는 여유를 느낄 시간도, 마음도 부족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들이 주는 풍요로움을 애써 멀리하며 살고 싶지 않다. 한걸음 나아가야 할 때,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은 내게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힘을 줄 것이다. 집 밖을 잘 나가지 못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 인물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들은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더해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도 문화예술 속에서 풍요로운 해를 보내길 마음 다해 바란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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