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라는 환상: 미성년 [영화]

글 입력 2021.01.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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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면 어른이 되는 거로 생각했다.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내 나이에 두 번째로 앞자리가 바뀌고 나면 엄청난 이벤트처럼 어른이 되는 거였다. 그러나 막상 스무 살을 갓 넘긴 나는 정말 별거 없었다. 간판만 바꾼 채 영업을 이어가는 음식점처럼, 바뀐 것 없는데 그저 부르는 수식어만 달라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할 유의미한 순간은 그다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고, 아는 것도 없고, 무서운 건 많았다. 그중에서도 아직 애처럼 연약하고 두려움 많은 내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내가 어릴 적에 생각했던 모든 걸 뚝딱뚝딱 해내는 든든한 어른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환상이었다. 취직하거나, 결혼하면 어른다운 어른이 될까? 그동안 실망했던 경험에 따르면, 몇몇 타이틀이나 사건들이 극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른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제 내 주변 많은 사람은 나이가 주는 환상에 넘어가지 않는다. <미성년>은 이런 경계에 대해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의문을 던지는 영화다. 어른과 아이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은 영화 속에서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기준들은 다시 심판대에 오른다. 부모와 자식, 학생과 선생, 성인과 미성년자와 같은 명백한 단어들로도 정의할 수 없는 ‘어른’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어른의 기준 1: 감정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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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은 자기감정에 충실하다. 어른들은 우선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자기감정에 충실한 건 어른들뿐이다. 그들을 위로하고 헤아리는 건 아이들의 몫이다.

주리의 아빠는 윤아의 엄마와 바람을 피웠다. 주리와 윤아는 그걸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서로의 악연이 지긋지긋하게 싫고 밉다. 그러나 각자가 바빠 서로 충분히 미워할 새도 없다. 자신의 엄마와 배 속의 아이를 책임지라고 고군분투하는 건 윤아의 몫, 엄마가 아빠의 바람 소식에 상처받지 않게 하는 건 주리의 몫이다.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눈치 보고 달래보는 데에도 이들의 시간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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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의 아빠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어쩌지 못하고, 도망치느라 바쁘다. 윤아의 엄마는 바람으로 저지른 사랑이 주는 위로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주리의 엄마는 그들 중 결국 아무도 용서하지 못했다. 윤아 엄마가 운영하는 오리고기 집에 손님인 척 들어갔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윤아 엄마를 밀쳐 버린다.

 

도망치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빠지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동안, 이들의 자녀들의 감정을 배제되었다.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망가진 일상에 대해 섣불리 분노하고 눈물 흘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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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엄마와 주리 아빠가 마냥 철없는 인물이라면, 주리의 엄마가 어쩌면 어른 대부분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윤아 엄마도 끌어안고, 윤아도 위로하고, 주리를 보호하고 싶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다.

 

매번 무너져 내리느라 주변을 채 다독이지 못하는 동안에, 그녀는 주리에게 보호받고 윤아에게 위로받는다.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녀가, 윤아 엄마에게 고백하는 대사가 인상 깊었다.

 

“나는 (윤아 엄마가) 환자복 입고,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떡져서 누워있을 줄 알았어요. 그거 보려고 왔는데. 전복죽도 끓여서 먹이고, 안되는 위로도 좀 해주고. 그래야 내가 숨도 좀 제대로 쉽고 사람 구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른스러움에 진정으로 충실한 어른이 몇이나 될까. 우리의 수많은 그럴듯한 연기 아래에 외면하고 싶었던 유치한 의도는 여전히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의 기준 2: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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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엄마와 주리 아빠 사이에선 아이가 태어났다. 뱃속에서 아이가 커가는 동안, 아이를 위한 어떤 미래도 논의되지 않았다. 결국, 조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생사를 오가지만, 아이의 부모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주리 엄마는 아이를 모른 척했고, 윤아 아빠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가던 중이었다.

매일 문지방이 닳도록 병원문을 넘어다니면서 이 아이를 위한 미래를 설계하는 건 다시 아이들이다. 윤아는 아이를 자기가 키울 거라고 말한다. 주리는 말도 안 된다며 말리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위해 준비되어야 할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책임감 있게 나선다.

 

 

“돈 벌어서 애랑 둘이 독립할 거야. 우리 엄마나 너네 아빠 같은 사람보단 내가 훨씬 자격 있지.“

 

 

매일 아기 양말을 빨아 널던 그녀의 수고와 정성이 무색하게, 아이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윤아의 엄마는 서둘러 퇴원준비를 하고, 주리의 아빠는 더는 윤아 엄마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와중에 각자의 매듭을 짓느라 허우적대는 어른들 뒤로 아기를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 나온다.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던 아기의 죽음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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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기의 시신을 찾아, 죽은 동생을 위해 외롭지 않은 마지막을 준비한다. 죽은 아기에 대한 애정과 책임은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의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공유해보지 못한 어른들은 경험하지 못할 치유와 회복이 이들에게는 찾아온다.


*

 

영화의 마지막, 주리와 윤아는 아기를 보내주며 활짝 웃는다. 미워하고 증오했던 서로에 대한 과거를 털어버리고 진정한 우정과 거기에 어울리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원치 않았던 상처라도 외면하지 않고 치유해내는 진정한 어른들의 결론이 인상 깊었다.


영화는 찌질하고 무책임한 어른들과 의젓한 아이들을 대비시켜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비가 내 유치하고 미성숙한 속마음을 들춰내는 것 같았다. 어른이라는 묵직한 이름이 사실은 귀찮고 성가시진 않았는지. 충분히 성숙하지도 못하면서 어른이라는 이름을 휘둘러 큰 목소리만 내려던 순간은 없었는지. ‘어른’이라는 호칭의 단물만 쏙 빼먹고 쓰고 떫은 부분은 모른 체하려던 건 아니었는지. 쉽게 고개 저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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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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