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식에 담긴 것 [사람]

글 입력 2021.01.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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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동안 한국을 비운 적이 있었다. 새로운 장소와 호의적인 사람들, 낯선 경험이 주는 자극에 시간은 지루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좀처럼 먹어보지 못한 식재료나 조리법으로 익힌 음식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고추같이 생겼지만 하나도 맵지 않고 특유의 끈적한 점액이 입에 감돌던 ‘오쿠라’, 우동과 칼국수 사이의 면 요리 ‘호우토우’ 등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이렇듯 새로운 요리는 도전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한국의 음식이 그리워졌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 한인타운으로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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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올 날이 한 자리 수로 진입할 무렵, 나는 휴대폰 메모장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돌아가자마자 먹을 음식을 적어놓고 우선순위를 매겼다. 당장 떠오르는 건 삼겹살, 닭갈비, 떡볶이, 치킨과 같은 외식·배달 위주의 음식이었다.

 

그렇게 리스트가 화면을 가득 채울 때쯤 불현듯 엄마의 계란말이가 떠올랐다. 생활하면서 떠올린 적도 없고, 만들기 힘든 음식도 아닌데 왜일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계란말이의 순위는 점점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10위권 밖이었던 것이 날이 갈수록 메달권에 가까워져 결국에는 삼겹살을 밀어냈다.

 

귀국하는 날에 완성된 리스트의 1위는 당당히 계란말이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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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정오의 여름,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도착장으로 향했다. 몇 개월 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바로 일주일 전에 만난 것 마냥 익숙하고 반갑기만 했다. 오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며 아빠의 손은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가져갔다. 동생은 방금 사왔다며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권하기 바빴다. 엄마는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계란말이!”


몇 개월 만에 돌아와 그렇게 소박한 음식을 먹어서야 되겠느냐며 엄마는 살짝 웃었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삐 부엌으로 향했다. 계란을 꺼내는 엄마의 손이 분주했다. 냉장고에서 계란 4개를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저었다. 거기에 쫑쫑 썬 파와 당근, 약간의 소금을 더해 금세 계란 물이 완성됐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한번 휘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국자로 계란 물을 살짝 담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았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겉면이 어느 정도 익자, 엄마는 젓가락으로 살살 계란을 굴리기 시작했다. 무너지지 않도록 옆면과 윗면을 눌러주면서 세심하게 모양을 잡고 다시금 계란 물을 부었다. 한 번 더 맛깔나는 소리와 함께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났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한 후에야 식탁으로 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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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하게 노릇해진 계란말이는 두꺼운 자태를 자랑하며 후각을 자극했다. 누가 먹기도 전에 가장 먼저 젓가락을 뻗었다. 한 조각을 베어 물자 익숙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적당한 소금간에 식감을 살려주는 야채, 그리고 고소하고 단단한 계란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맛에 젓가락은 쉬지 않고 접시와 입 사이를 왕복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걸.


때는 초등학생 1학년이 되어 맞이한 첫 여름방학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집을 비우고 동생은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저녁까지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다행히 학원에 다녀서 할 일도 적당히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어 나름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부모님 역시 무료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끼니만 빼고 말이다.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꽤 걱정되었나 보다.

 

엄마는 집안 가득 즉석밥을 채워놓았다. 그리고 진미채볶음, 멸치볶음 등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반찬이 냉장고에 즐비했다. 거기에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반찬을 해놓고 접시에 담아 랩을 씌워두었다. 당시 나는 편식이 심한 아이였다.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소시지볶음, 떡꼬치 등 간단하면서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놓았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반찬을 기대하며 냉장고를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반찬이 계란말이였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케첩에 찍어 새콤한 맛을 즐길 수도 있는.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니 엄마도 더 자주 해주셨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어도, 또 그다음 방학이 와도 계란말이를 먹었다.


이후 학년이 올라가고 편식이 줄면서, 먹어본 음식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방학이 와도 다른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는 날들이 많아졌다. 혼자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살고, 대학교에 와서는 자취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계란말이는 점점 희미해졌다. 몇 개월의 외국 생활은 더했다. 앞에 있는 새로운 음식을 먹기 바빴지 기억 저편에 있던 음식이 떠오를 틈이야 있겠는가. 그럼에도 귀국한 후에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계란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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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계란말이는 간단해 보여도 만들기는 까다롭다. 계란 물을 붓고 적당하게 익혀 뒤집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뒤집으면 속 안쪽이 익지 않고 너무 오래 두어도 계란끼리 달라붙지 않는다. 뒤집을 때도 조심하지 않으면 계란이 찢어지거나 모양이 망가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러 번 반복된다. 시간도 걸리고 세심히 다루어야 한다.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계란말이를 만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고는 한다.


온종일 가족과 함께했던 어린이의 생활에 처음으로 느낀 엄마의 부재.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항상 있었던 계란말이. 그리고 외국에서 혼자 생활했던 나. 어쩌면 온몸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즐겁게 보내온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집에 가면 내가 만든 계란말이를 식탁에 올리고 싶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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