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선의 선비들은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 탐독가들 [도서]

글 입력 2021.01.1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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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맑은 일이다.”

 

_ 다산 정약용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창 동양고전 붐이 일고 있었다. 서점에서는 인문고전 독서법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고, 학부모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논어>나 <대학> 같은 동양고전을 반복해서 읽혔더니 아이의 학습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후기들이 올라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입학한 학교에서도 신입생 필독서로 <리딩으로 리드하라> 같은 독서법에 관한 책 여러 권을 지정해 전교생이 읽게 했다. 꽤나 두꺼운 책들이었고, 이 책을 읽다가 시간이 다 가서 정작 동양고전 읽을 시간은 없겠다며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했다.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읽었던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독서법에 관한 책을 볼 때면 책을 펴기도 전에 긴장하게 된다.

 

비록 책 편식이 심한 편이지만, 나는 선비처럼 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물론 선비라는 직종(?)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굳이 비유하자면 현대의 선비는 수험생이고-조용한 방에서 책을 읽으며 안빈낙도, 인분지족하는 삶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아마 많은 현대인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여러 물리적, 정신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일단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고, 넉넉한 마음씨를 갖기 위한 충분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생의 몇몇 과업(취업, 독립, 기타 등등)을 이미 이룬 뒤여야 할 테고. 그러니 선비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탐독가까지는 아니어도 애독가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탐독가들>은 선비를 꿈꾸는 애독가로서, 책을 사랑한 옛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선비가 되려면 진짜 선비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조선 시대 선비들은 책을 얼마나, 어떻게 읽었을까? 그들에게도 책은 숙제처럼 느껴졌을까?

 

고전 문헌을 연구하는 박수밀의 <탐독가들>은 인문고전을 독파했던 조선 지식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다. 역시 독서론에 관한 책이라 읽기 전부터 긴장했지만,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책을 읽어라!’라고 권유하는 책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은 이렇게 읽었다고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정약용, 이순신 등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위인들의 위인전을 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독서’ 또는 ‘다독’이다. <탐독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자랑한다. 이덕무는 평생 2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김득신은 책 한 권을 1만 번이 넘게 읽었다. 허균은 2년 동안 4천 권의 책을 사서 집을 도서관처럼 만들었고,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훌륭한 리더이자 독서광으로 유명한 세종은 독서를 국가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바쁜 업무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젊은 신하들을 위해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통해 일정 기간 자택에서 책을 읽게 했다. 한적한 곳에서 책만 읽으면 된다니, 일에 지친 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휴가가 있을까 싶다. 물론 휴가 후에 임금님에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했을 테지만 말이다.

 

압도적인 독서량이나, 독서와 관련된 정책도 인상 깊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들이 독서 자체를 대하는 태도다. 책에서 인용하는 각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이 책에 대해 쓴 문장을 보면 독서를 통해 순수한 즐거움을 얻는 애독가, 한 권의 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탐독가로서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늘 의문이 든다. 착한 자는 착한 쪽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악한 자는 악한 쪽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실제로는 착한 가운데도 악함이 있고 악함 가운데도 착함이 있다.”

 

_ 성호 이익, <고사선악>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태도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성호는 ‘성호 학파’를 형성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했는데, 그가 평소 제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스스로 깨닫는 자득(自得)의 독서였다.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능동적 독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성호는 <논어>와 같은 옛 경전을 배울 때도 반드시 의문을 품어야 하며, 객관적인 사실인 양 저술된 역사서를 읽을 때도 선인과 악인을 뚜렷하게 갈라놓은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성호는 권위적인 고전을 읽을 때도 비판적 독서를 한 셈인데, 저자의 의도와 글의 목적을 유추해 가며 자기만의 관점으로 글을 읽을 것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의 가치관이 현대의 교육이 지향하는 바와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300년 전의 학자에게서 배울 점을 발견하는 것도 <탐독가들>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천 권의 책을 사들일 여유도, 한 권의 책을 만 번이 넘게 읽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2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구체적인 독서론은 충분히 실천 가능할 것 같다. 책을 읽고 필요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는 초록(抄錄)이나 매일 공부할 양을 정해 놓는 식의 독서법은 이미 현대의 선비들도 잘 알고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인물들이 독서에 몰두했던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독서 환경은 크게 변화했지만 탐독가들의 책을 애호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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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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