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쉽게 써지지 않는 글

문화 편식쟁이의 실패한 글쓰기
글 입력 2021.01.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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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글쓰기는 실패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성공적으로 구매한 조선왕실 사각 유리등 DIY 키트를 문화 마케팅과 연결시켜 써야 하나. 흠, 근데 문화 마케팅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이걸 쓰지? 사랑해 마지않는 아티스트 ‘(여자) 아이들’의 새로운 앨범과 이들의 (무척이나 기대되는) 행보에 대해 써야 하나. 아, 근데 글로 쓰기에는 내가 ‘음알못(음악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자신 없다. 아니면 텀블벅에서 후원한 보드게임 ‘먼치킨’과 단순함에서 오는 즐거움에 대해 써야 하나. 근데 몇 번 플레이해보지도 않았는데, 쓸 수 있을까?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었더라? 도나 해러웨이의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었는데, 한 번 써볼까? 근데 내가 텍스트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글을 쓰지. 이 글은 절대 못써. 며칠 전에 본 영화 <올란도>에 대해 써야 하나. 할 이야기는 많으니까 쉽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아, 근데 저번에 올린 오피니언과 결이 비슷할 것 같네. 어떡하지, 그냥 ‘쓸 거리가 많은 책이나 영화’ 한 편 골라서 대충 글 쓸까? 안 돼, 그건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 못하지. 아, 오늘도 망했다!

 

2021년, 뭐든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며 즐거워하리. 그렇게 다짐했건만, 글쓰기 앞에서는 이렇게나 뭉기적거린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딜레마에 봉착한다. 이건 저번이랑 비슷한 내용이고, 이건 너무 어렵고. 차라리 다른 누군가가 주제와 분량을 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대학에서 체득한 ‘과제에 최적화된 글쓰기 스킬’을 시전 할 수 있을 텐데. 이 괴로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사실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준다 해도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든 내가 글을 써야 하니까.) 몸이 두 개여서 또 다른 내가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그냥 누워서 편하게 넷플릭스나 실컷 볼 텐데.

 

요 며칠간 자기혐오에 시달리다가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문화예술'과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문화 편식쟁이의 실패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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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너무 비슷한 이야기만 떠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이런 걱정을 하긴 했었다. 매주 써야 하는 글이 자가 복제에 자가 복제를 거칠까 무서웠다. 그리고 실제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이런 느낌을 종종 받았다.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건, 내가 그 누구보다도 문화 편식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 뻔뻔스러운 편협함은 글쓰기를 통해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뭐 하나를 해보려고 하면, '마감'이라고 하는 글자가 살포시 머리 위로 떠오른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가 글을 써 내려가기에 편한' 문화예술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보면 밀려오는 자괴감. 주객이 전도된 글쓰기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운이 좋게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 영감을 받는다 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유치원생의 수준(그렇다고 내게 유치원생처럼 넘실거리는 상상력이나 톡톡 튀는 재기 발랄함이 있는 건 아니다.)이니 완성된 글 하나를 만들어내는 게 어렵다. 작년에는 모처럼 '창극'에 흠뻑 빠졌었는데, 공연을 보고 와서 이에 대해 오피니언을 기고할까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쉽게, 잘 써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고개를 쳐들었다.

 

잘 쓸 자신이 없어서, 쉽게 잘 쓸 수 있는 글을 위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새로움의 벽을 마주할 용기는 편안함 앞에 수치도 모르고 드러누웠다. ‘글’ 자체를 위한 문화예술을 찾게 된다. 내게 일종의 놀이터였던 문화예술은 어느 순간 사라진 것 같다. 어떤 대상과 제대로 만나보기도 전에, '내가 이걸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한 번 자라나니까 어제도, 오늘도 글쓰기를 실패한다. 이건 저번이랑 비슷한 내용이고, 이건 너무 어려우니까 안 돼. 나 자신아, 대체 어쩌란 말인가!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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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써 내려간 글에 대해 일관성이 있어 좋다고 자기 합리화와 만족을 할 수도 있겠지만, 2021년에는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솔직히 말해 나의 우주는 비좁다. 이럴 때 엔터프라이즈호가 나를 싣고 저 새로운 어딘가로 훌훌 떠나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태까지의 나를 떠올려보면, 분명 커크 함장이 친히 내게 손을 내밀어도 그 손길을 대차게 무시할 확률이 높다. 일단 미개척지를 찾는 것 자체가 일이다. 어렵사리 그곳을 발견한다 해도, 그 영역에 마음을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 새로운 만남에 설레었다고 치자. 그런데 혼자 설레발치다가 임무를 망치면 어떡하나.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 그리고 위험도를 따지며 뭉기적거리다 보면, 엔터프라이즈호는 이미 떠나고 없다. 그럼 나는 다시 나만의 우주에서 안온한 날들을 누리다가도, 그 나날들에 염증을 느끼며 넌더리를 낼 테다. 안 봐도 비디오다.

 

한 마디로,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이 무섭다.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된 '쉽게 써지는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치우쳐진 취향은 나의 세계를 제한하고, 협소한 세계는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편하다고 여기에 머무르면, 점점 비좁아지는 땅에 그대로 머무는 꼴이다. 나의 '문화예술 글쓰기'에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꺼이 엔티호에 올라탈 담력. 이제는 미개척지에서의 임무 성공 여부보다는, 새로운 만남 자체를 기대하는 태도를 갖고 싶다.

 

막말로 임무(글쓰기)에서 죽 좀 쑤면 어떤가? (물론 심각한 죽 쑤기는 안된다.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을 위해서는 더 많은 사색과 정성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내 우주의 영역이 미약하나마 팽창한다는 거다. 오늘은 잠들기 전에, 이전에 포기했던 문화예술 영역의 글감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정리해봐야겠다. 쉽게 써지지 않는다고 포기했던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쓸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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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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