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미디 속에서 받는 위로 - 멜로가 체질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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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볼 때 정주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정주행보다는 그때그때 본방송을 챙겨보는 걸 선호한다. 똑같은 걸 보더라도 본방송으로 즐길 때가 더 재밌기도 하고, 한 편을 보고 난 뒤 다음 편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나에겐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의 전개를 상상하기도 하고 다시 보면서 본방송으로 보면서는 미처 몰랐던 부분을 찾기도 하고 두 번 봐도 좋은 장면들이 생기기도 할 때,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뒤늦게 알아 넷플릭스로 정주행한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덕분에 내가 그 드라마를 뒤늦게나마 볼 수 있었지만, 본방송으로 한 편 한 편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가 체질은 수다 블록버스터라고 소개하는 드라마답게 대사에 아주 신경 쓴 드라마이다. 일단 대사량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 어마어마한 대사 속에는 주옥같은 말들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다.
“서른 되면 어른 될 줄 알았어?!” 포스터에 적힌 문구마저 내 마음을 정확히 관통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스무 살만 넘어도 되게 어른 같고, 어른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지는 못하고 어른이 쉽지 않다는 것만 알아가는 것 같다.
PPL을 맡은 한주는 PPL을 하지 않겠다는 배우 때문에 애를 먹는다. 드라마 현장에선 감독, 매니저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다들 나 몰라라 한다. 감독들을 찾아간 한주는 도움을 요청하지만, ‘오빠라고 불러보면 생각해 보겠다’라는 성희롱적 발언만 듣게 된다.
다음 날, 한주는 과한 애교와 오빠 소리를 남발하며 복수 아닌 복수를 하며 정면으로 돌파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은정은 몇 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은정의 주위에 상수가 나타나고, 그 상수의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상수는 촬영현장에선 별명이 ‘야감독’일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다. 첫 등장 역시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팍 든다. 근데 촬영 현장 밖에서 만난 상수는 좀 이상하고 의외다.
길에서 시비 거는 취객을 단숨에 제압해 은정을 구해주지만, 촬영 현장에서 말싸움까지 했던 은정을 못 알아본다. 버는 족족 보육원에 기부하고 쌀이 아깝다고 보육원에 와서 밥을 먹는다. 공감 능력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 같지만 의외로 공감 능력도 있다.
“무슨 사연 있어요? 뭐 아리고도 먹먹한 종류의 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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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 행복하게 보내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고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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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연이 이거뿐인 게 얼마나 아리고 먹먹한 건지 알아”
이런 상수가 나는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라 좋았다. 사람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좋은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안 좋은 행동을 할 때도 있지 않은가.
촬영 현장에선 화를 버럭버럭 지르고 막말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이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면도 가지고 있다. 촬영 스태프들이 그가 보육원에서 김 회장이라고 불릴 만큼 기부 천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주가 일하는 회사의 대표는 강하고 무서울 만큼 정확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은 역할마저도 여러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고 도구적 요소로 쓰이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 작품의 특징은 인물들이 겪는 어려움을 굳이 신파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그랬듯 주인공들의 현실을 웃기게 표현하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담아내는 그 포인트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 유쾌한 포인트가 단순히 웃기고 재밌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위로가 되어 준다는 게 이 드라마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최아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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