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임기현

글 입력 2021.01.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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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정비가 왜 좋아?”

 

“차 종이 다양하게 있어서 좋아. 최신인 20년도 차도 있지만, 60,70년대 차도 있고 다양해서 재미있어. 그리고 새로운게 들어올 때 마다 계속 배워서 좋고. 기름도 묻고 힘들지만,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거나 가끔 겨울에 붕어빵이라든지 여름에 음료수를 주면 너무 뿌듯하고 보람차. 사실 고등학생 때는 꼴통이었거든.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 하고. 그렇다고 양아치는 아니고. 근데 난 그때 공부를 안해서 고마워. 그때 공부했었으면 지금쯤 다른 일을 했겠지만, 나는 지금이 만족스러워. 하나를 정하면 파고드는 성격이야.”

 

“나는 너와 반대로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다양해서 못고르는데. 너는 한 두가지 명확하게 있으니, 하나를 정해서 우직하게 가는구나. 한 편으로는 부럽다.”

 

여행하다가 만난 인연이다. 날씨가 오랜만에 좋았다.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찍어주다가 카페로 들어왔다.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느즈막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임기현 1.jpg

 


요즘 사람 피부 색은 연노랑색이 고정인가.. 패턴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연노랑색을 배경에 깔았다. 그리고 눈은 가리는게 재미있어서 이번에도 자주색, 분홍색으로 덮었다. 이미 노란 배경이라 잘 색깔이 들어가서 스며들지는 않지만 열심히 채워봤다. 초록색 선으로 얼굴선과 코, 입 귀라인을 그렸다. 그리고 귀엽게 자른 앞머리를 남색, 보라색 등으로 하고 자주색과 주황색도 쓰고 색색별로 넣었다.

 

머리가 굉장히 귀여웠다. 머리카락에 포인트를 주고, 볼 옆면도 조금 노란 계열인 비슷한 색감드로 면적을 나눴다. 그리고 기대있는 상체를 콩테로 그려서 색을 조금 뺐다. 선으로 힘을 빼고, 색깔로 눈을 돌리게 했다. 색깔이 맘에 든다는 사람들과, 가끔씩 선을 좋아한다는 동종 업계 사람들의 말을 적당히 수용 중이다. 그리고 선만 들어가면 아쉬우니까 살구색도 조금 칠했다. 이제 디테일하게 색도 조금씩 잘게 넣고, 선도 야금야금 추가해서 마무리를 했다. 네이비컬러 니트가 잘어울려서, 목 부근에 니트 선도 넣었다.

 

“너무 좋아. 느낌이 좋아.”

 

“그리고?”

 

“사실 무슨 기분인지 설명하기가 여려워. 어느 누구도 그려준 적이 없어서. 처음 경험하는 거야. 너무 신기해.”

 

“설명하기 어려워도 괜찮아. 네가 즐거우니 됐다.”

 

*


점심 먹을 때 친구가 말했었다.

 

“나는 미술에 관심이 없어. 왜 좋은지도 모르겠고. 사실 내가 색약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어. 적록색약."

 

“아, 그럼 숫자 구분하는 거 어렵겠네? 그 테스트 있잖아-”

 

“응. 나는 다 똑같은 동그라미 밖에 안보여.”


그럼 더 재미없을 수 있겠다. 나는 반대로 색에 민감해서, 색에 둔감하거나 관심없는 사람의 세계를 잘 모른다. 그들에게는 너무 안일하고 이기적인 세상인 걸 알았다. 색약자들을 위한 그림, 다른 버전으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그림을 그리려고 해. 그런데, 음. 네가 색약이라고 말했었잖아. 그럼 네가 봤을 때 이 크레용들 중에서 구분 안되는 색들은 뭐야? 그 중에 중복되는 건 빼고, 네가 구분할 수 있는 색으로만 그려볼게.”


파란색과 보라색 사이의 색을 뺐다.

 


임기현22.JPG

 

 

“난 기억이 안나지만, 어릴 때 팔에 라면을 쏟은 적이 있대. 그래서 오른팔에만 화상이 있어. 난 화상 자국이 컴플렉스였어. 그래서 운동회가 있거나 해도 항상 팔에 밴드 붙이고 가리고 다녔어. 2년동안 가리다가, 타투를 하게 됐지. 뭘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부모님 이름으로 정했어. 18년도 겨울인가?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부위가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부위가 되었어.”


가로, 대각선 방향으로 그렸다. 뻗은 팔 대로. 이것저것 많이 뭍은 흰색을 칠했다. 사실 크레용이 지저분해도, 이색저색 다 뭍어있어도, 나는 그런 자연스러운 점이 좋다. 깨끗하진 않지만 이것저것 섞여있지만 그 모습 그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팔을 그린다. 선을 과감히 그을 때는 신난다. 백지는 항상 두렵지만, 그 이상으로 설랜다. 처음 스쿠터를 타본 어제처럼. 그림그리는 일은 언제나 항상 설레고 즐겁다. 팔을 색색별로 좋아하는 색들로 칠하고, 이제 영어 글씨를 그릴 때가 왔다.


“어? 레터링이 되게 두껍네?”

 

“응. 흉터를 가리려고 두꺼운 글씨체로 했어. 인터넷도 찾아보고 고민 많이 했지.”

 

“오오~ 나도 타투 딱 하나 있는데, 내가 쓰고 디자인해서 그대로 받았어. 왠지 넌 타투에 대해 관심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있다고 해서 놀랬잖아.”

 

“맞아. 이거 아니었으면 타투 없었을걸?”

 

“역시(웃음).”


파란색으로 L을 시작했다. 초로색과 분홍색 등 다른색으로도 조금씩 바꿨다. K 를 쓰려는데 크레용이 너무 두꺼웠다. 하하하... 뭐 이것도 자연스러운 거겠지. 괜찮아. 우연의 드로잉을 좋아하니까. 나머지 글씨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썼다. 어차피 알아보든 못알아보든 상관 없었다. 이걸 기억하고 내가 표현했다는 행위가 의미있으니까.

 

그리고 콩테로 조금 그리고. 옆의 음료수도 그렸다. 파란색 바다 에이드. 사실 차가운 뽕따맛. 레몬과 빨대도 그렸다. 그리고 나무 트레이도 같이 그렸다. 콩테로 팔 포인트 주고, 역시 좋은 느낌의 니트 선을 그렸다. 걷어올린 팔로. 싸인을 하고 끝냈다. 왠지 요즘 그림 색감과 스타일이 다시 비슷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아무렴 어때.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가득 차있으니까.


잠깐의 동행. 새로운 여행지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좋다. 이래서 여행을 다니는 걸까? 접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나도, 너도 둘다 여행이 처음이지만. 이렇게 경험하고 알아가는 거지. 자동차 고장나면 친구보러 홍천으로 가야겠다. 군 부대라서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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