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꾸는 그 날을 향한 걸음 - 지구에서 스테이 [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있음을 듣고, 찬찬히 그리고 담대히 견디기
글 입력 2021.01.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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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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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하나씩 미루어지는 동안

봄은 다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중략)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있을 테지만

한번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는 것과 이미 보았던 영화를 돌려 보는 것을 나는 좋아합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과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을 당신의 목소리로 다시 들어보는 일

 

나는 이제 예전만큼 자주 걷지 않지만

방 안에서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면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너무 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요 만나지 않아도 헤어지는 사람들이 분명

 

지금도 막 생겨나는 중인데

 

나는 천천히 꽃잎을 맞고 있는 중입니다

봄은 계속 떨어져가고 있는데요

 

- 이희형, <나는 이제 예전만큼 자주 걷지 않지만 방 안에서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에서

 


해가 바뀌었고 또 한 번의 겨울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돌입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것을 새삼스럽게 곱씹어보는 요즘과 달리, 작년 봄엔 바이러스가 봄에서 여름으로 또 한 계절 이어질 거라는 예감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상 초유의 비대면 학기는 복작거리는 캠퍼스의 봄을 생각할 새도 없이 져버렸고, 혼란한 마음으로 여름의 초입에 놓였을 때 이희형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었다.

 

그해 나의 봄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로 점철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애틋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기약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하나씩 미루어지는’ 시간을 살며 새롭게 깨달은 건 애틋함에 취할 여유는 기다림의 행위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놓였을 때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내심이 부족하고 마음이 넉넉지 못한 나는 기다리는 현재를 잘 버텨내지 못한다. 학교에 갈 날을 하루에 한 번씩 미루는 마음만큼 괴로운 건 없었고 그렇게 3월과 4월 그리고 5월이, 그리하여 ‘봄은 다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는 이 시의 화자처럼 평범했던 여러 봄과 당신을 자주 추억했다. 미소 짓게 되는 기억들의 끝은 ‘결국 아름다운 건 언제나 단 한 번뿐이었는데요’ 하는 깨달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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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한번 시였다. 「지구에서 스테이」는 한국의 시와 일본, 유럽과 영미, 중국, 홍콩, 그리고 타이완에서 건너온 시로 엮은 시집이다. 세계 각국에서 전해오는 코로나 19는 더 멀리 닿는 힘이 있었다. 현재의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슬픔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고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되돌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리고 반성이면서 희망이기도 한 여러 메시지들은 공감과 위로로 이어졌다.

 

 

 

살아있음을 '듣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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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방 안에 책들이 막 우거져서

사람을 가둬버린다

말이 사람을 가둬버린다 망쳐버린다

겨우 도망쳐 나와서 새로 생긴 전철역을 보러 가는데

 

- 가니에 나하, <2020년 3월과 6월, 도쿄에 새로 생긴 전철역을 7월에 처음 찾았다> 중에서

 


최근엔 공간의 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집 안의 크고 작은 소리부터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머무르는 카페에서 듣는 소리, 짧은 산책 시간을 채우는 소리까지. 그중에서도 집이라는 공간을 기록한 소리를 소개한다.

 

공기 청정기가 공기를 정화하는 소리. 걸터앉은 내 무게를 깨닫게 해주는 소파의 가죽 소리. 뒤꿈치를 많이 쓰며 걷느라 자주 꾸지람을 듣는 내 발소리. 빛을 켜고 또 끄는 소리. 여러 종류의 신발 중 화장실의 슬리퍼만이 낼 수 있는 찰박거리는 소리.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 칫솔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괜히 몇 번씩 여닫는 냉장고 소리. 그리고 글을 쓰는 오늘 같은 날 가장 소란한 책상 위 소리.

 

소리를 기록함으로써 ‘살아있음’을 절실히 감각하고 싶은 욕망을 들여다보았다. 집 안에 머무를 때 놓이며 길어지는 침묵과 적막은 ‘사람을 가둬버’릴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리하여 내가 일상의 크고 작은 소리를 통해 채우고자 한 공간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무기력의 공간이었음을 깨달았다. 희미해진 소리는 내 존재감과 정체감 또한 위험하게 지워가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게 적막 속에 숨어 미약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말하는 작은 것들을 따라갔다.

 

거실 창을 여닫는 소리는 저 멀리 초등학교 운동장 위를 조그마한 아이들이 자기 몸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던 소중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부엌의 소리를 기록하면서는 요리에 취미가 없는 내가 수플레를 시도하다 달걀 지단을 만들었던 사진을 찾아 갤러리를 뒤적였다.

 

무엇보다 소파에서, 침대에서, 책상 앞에서 읽고 썼던 책과 모든 기록은 쉬지 않고 재잘댔던 마음의 소리들을 줄줄이 따라가도록 했다.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골라 나열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소중한 취향들을 떠올리는 건 큰 위로가 됐다.

 

‘살면서 겨우 그런 게 좋았다(황유원, <여름밤 칵테일>).

 

 

 

꿈꾸는 그 날로 가기 위해 '찬찬히 그리고 담대히' 견디기



우리는 집 안에 머무르는 듯 하지만, 꽤 자주 코로나 19 이전 누렸던 일상의 기억을 잊지 않고 찾아간다. 그렇게 떠난다. 멀리 다른 나라로, 공연장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교실로, 공을 주고받던 공원으로. 또는 미래로도 간다. ‘울어서 치유된 생명으로’ 꿈꾸는 그 날로. 또 ‘창문 활짝 열고 밥을 먹는다 울면서 벽 너머를 꿈꾸기에 (김상윤, <모든 것들은 그날을 꿈꾸기에 우는 것이다>).


 

가슴에 피어나는 분홍 꽃, 숨과 온기와 수분과 활력을 뿜고 있다 천국과 지옥 뒤섞여 있는 이곳, 견디려면 그런 꽃이 피어야 한다 견디면서 창밖 하늘을 바라고 있다.

 

늘 울고 있다 달에서 보면 푸르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그날을 꿈꾸기에, 바위와 짐승, 꽃과 사람이 함께 울고 있다. 울어서 치유된 생명으로, 생명이기 위하여, 삶과 죽음 뒤엉켜 있는 지금을, 이겨내려 지구는 눈물의 방호복 입고 정지된 시간 속을 어둠과 싸우고 있다

 

- 김상윤, <모든 것들은 그날을 꿈꾸기에 우는 것이다> 중에서

 


김상윤의 시 <모든 것들은 그날을 꿈꾸기에 우는 것이다>에는 2020년 4월 3일자 질병관리본부의 공식 포스트 속 문장이 인용된다. ‘찬찬히 그리고 담대히’. 두 개의 부사 뒤에 시 속 발견한 동사 ‘견디다’를 이어 붙여본다. 찬찬히 그리고 담대히 견디기.

 

그리고 「지구에서 스테이」에 실린 많은 시가 찬찬하고 담대하게 견디는 힘에 응한다.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어느 죽은 별의 먼지 (엄원태, <신생국, 별의 먼지>) 일지도 모른다는 성찰을 통해 인간이 그동안 자연에게 가한 폭력과 그 대가를 찬찬히 곱씹는 힘. 바이러스를 단순 ‘재앙이라고 부름으로써 결론짓는 일을 인간들은 질리지도 않고 되풀이' 할 때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끔찍한 시를 쓰게 될 것인지 현실을 담대히 마주하는 힘. 나아가 우리가 ‘이 시를 쓰고 있다 (가쿠 와카코, <네가 이 시를 쓰고 있다>) 는 걸 생각하며 펜을 다시 쥐어보는 힘.

 

‘벌써 그 내일’‘지금 멈춰 서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 (이토 세이코, <지구에 스테이하는 우리들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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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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