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여주지 않을 때 아름다운 사랑 : 블라인드 [영화]

감추고, 피하고, 도망가야 보이는 그들의 사랑
글 입력 2021.01.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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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숨어야 했던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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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성격은 과거의 사연들이 수치화된 합을 이뤄 결과로 발생한다. 마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잿빛으로 가려진 분위기를 보며 개인적인 사연이 실려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는 친엄마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행을 당하며 자라왔다. 사랑을 듬뿍 줘도 모자랄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니 마리의 자존감은 가루로도 남아있지 못했다.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고 마치 목각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한마디로 단향이 풍기지 않는 여자였다. 그러나 사랑을 하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루벤의 곁에서 그를 오랜 시간 보조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처음에는 그에게 냄새가 난다며 날카롭게 밀어내기 바빴지만, 그 뾰족한 말들이 단언컨대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받아보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랑이 어색해서 서툴렀기에, 방어력이 강하게 나온 것뿐이었다.

 

그런 마리는 그의 곁에서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다. 외모 콤플렉스가 극심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남자 앞에서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집에 검진을 하러 온 주치인 빅터의 입에서 루벤의 눈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눈이 열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기뻐해야 하는데 사실 마리는 그럴 수 없었다. 마리에게는 처음이자, 유일한 사랑을 느낀 그와 사랑이 끝난다는 걸 온몸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루벤이 자신을 볼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동안 나이도, 생김새도 어쩔 수 없이 속이면서 예쁜 모습을 만들어놨는데 실제로 자신을 보면 실망할 거라는 상처를 받아들이기 겁났다. 그래서 마리는 루벤의 수술 당일 떠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두려워 먼저 떠나버리는 마리의 선택은 두 사람의 관계가 진실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너무 사랑했기에, 간절했기에 그 앞에서는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고 싶었던 한 여인의 진실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벤에게 마지막으로 애절한 편지 한 장을 남긴다.

 

 

내 사랑 루벤, 이 편지를 읽고 있을 즘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고 있겠지. 허나 가장 아름다운 건 네 손끝으로 본 세상일 거야. 내 사랑, 나를 기억해 줘. 내 손끝, 네 귓가에 남은 나를.. 너로 인해 난 놀라운 사랑을 봤어. 가장 순수한 사랑.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아. 영원함도 그렇고.

 

-마리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마리가 감성적인 표현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 아픈 합리화처럼 느껴졌다.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던 사정을 그에게 말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이 그가 가질 깨끗한 눈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니, 우리는 진실한 사랑을 한 것이라고 인식시켜 놓고 싶은 순수한 욕심으로 보였다.

 

 

 

사랑해서 찾아야 했던 루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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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암흑 속에서 울부짖는 포효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의지할 사람도, 온기를 느낄 사람도 없는 루벤에겐 안정적인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러나 날카롭고 예민한 루벤을 제압할 사람은 없었고, 그 기에 짓눌린 보조자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마리는 그들과 달라도 달랐다.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루벤을 길들였다. 루벤은 그녀가 책 읽어주는 목소리에 빠져들었으며, 책 속 내용이 상상될 정도로 집중했다. 또 그녀의 향기와 온기가 루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돼주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깔끔하게 갈아입었다. 생전 관심도 없던 집안일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카펫을 정리하며, 마리가 보이는 모든 곳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주치인 빅터가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가져오자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가 곁에 없다는 걸 파악했고, 또다시 침대에서 날뛰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눈을 떠야만 하는 이유는 그녀의 입지가 컸는데, 마리가 사라졌다고 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루벤은 책을 찾기 위해 시내 도서관에 들어가게 된다. 그 도서관에는 마리가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벤을 한눈에 알아보지만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저번처럼 빠른 걸음으로 피하진 않는다. 그러다 루벤은 스쳐 지나가는 향을 맡고, 확인하기 위해 마리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마리라고 확신이 들자 눈을 감고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만진다. 그리고 말을 꺼낸다. 이제 가자고, 나랑 집에 가자고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마리는 거절한다.

 

날 것의 그녀를 마주한 루벤은 잠시 놀라긴 했어도 그 사랑이 옅어지거나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을 믿지 못하고 따라와 주지 않는 그녀를 얻기 위해, 뾰족한 고드름 두 개를 가지고 자신의 눈을 다시 찌른다. 그리고 영화는 루벤의 눈을 하얀 천막으로 가리고 푸릇한 자연을 배경으로 다시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녀를 가까이 옆에 두고, 사랑을 하고 싶어 내린 결단은 보는 사람을 하여금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얼마나 그리워했고 애절했으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까. 감히 짐작해볼 수없이 어려운 사랑이다. 어쩌면 죽기 전에 누구나 느낄 수 없는 사랑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지만, 한 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잔인한 자해의 행위는 두 사람의 진한 농도를 표현하기에 최적화 되었다고 판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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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둘은 정말 아픈 사랑을 넘어선 쓰라린 사랑이다. 사랑이 어렵다고 하는 말은 이 둘을 위해서 하는 말처럼 들릴 정도로 계속 삐끗거린다. 쉽게 아물어지지 않는 사정과 감정의 형편은 쉽게 나아질 수 없다. 특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진하게 나타날 수 있다. 보여주기 어려우니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래서 아픔을 감내하고 떠나는 쪽을 선택한다. 아픔은 순간의 진통처럼 크게 휩쓸지만 언젠가 아물어진다는 사실을 기필코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벤의 입장에서는 많이 안타깝지만 마리의 선택에 존중한다. 마치 그녀의 사랑은 회피하고 피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나에겐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았기에 감내야 할 아픔이 동반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리가 회복하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모든 관계는 끝까지 가보는 것보다 ‘깔끔하고, 열린 결말’로 끝내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는 쪽으로 손을 든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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