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 [공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글 입력 2021.01.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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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 난 모든 아기들은 공항에서 태어난다 생각했어. 부모들이 기다리면 포대기에 싼 아기들이 하나씩 배달되지. 그럼 부모들은 감격해서 기념사진 찍고 아길 품에 안고 집에 데려가.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동생으로 만들지’

 

'Airport Baby' 중에서

 

 

처음 들었을 때 그 의미가 다소 궁금해지는 단어 ‘에어포트 베이비 Airport Baby’는 아주 어릴 적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주인공 조쉬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자신을 입양한 백인 부모로부터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너무나도 다른 외모 탓에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자랐고, 그렇다고 자신이 태어났다는 나라 한국도 ‘코리아’라는 지명만 알고 있을 뿐 전혀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만나겠다는 열망 하나로 한국에 당도한 22살의 조쉬는, 사람들에게 부모를 찾지 못한 불쌍한 입양아 혹은 생김새는 비슷해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오면 자신의 진짜 가족도 찾고, 자신이 속할 곳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곳에서도 조쉬는 그저 ‘p’와 ‘f’의 차이는 잘 알아도 ‘카’와 ‘까’의 발음상 차이는 구분하지 못하는 이방인일 뿐이다.

 

한국과 미국, 어디에서든 조쉬의 존재는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영단어 ‘different’의 의미 그 자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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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쉬는 험난한 고생 끝에 겨우 닿은 생모가 자신을 반기기는커녕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고, 심지어 고작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쌍둥이 형제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까지 받는다.

 

그러나 어린 자신을 미국 땅으로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돌아온 자신을 생모가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던 이유, 그리고 자신이 떠난 후 그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멀게만 느껴지던 그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이처럼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던 조쉬라는 인물이, 가족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한국과 미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삶을 살았으나 그랬기에 양쪽 모두에 속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와 공항에서 자신을 ‘배달받아 품에 안고 데려가준’ 부모가 있는 사람,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이름인 ‘에어포트 베이비’를 조쉬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긍정하게 된다.

 

*

 

그리고 조쉬의 이 여정을 돕는 중요한 인물이 한 명 있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트렌스젠더 딜리아다.

 

유달리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딜리아는 일찌감치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그런 자신을 유일하게 받아주는 곳인 이태원에서 수십 년 째 살고 있다. 가족에게서 내쳐진 조쉬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가족을 떠올린 딜리아는 조쉬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를 돕는다.

 

궁극적으로 이는 딜리아가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된다. 얼핏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채 스스로를 긍정하며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 딜리아는가족에게 버림받은 기억과 50년 전 사랑의 흔적만을 가지고 좁디좁은 세계에 갇혀 살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조쉬를 돕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세계 밖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딜리아는 이태원을 떠나 살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보다 넓은 세상 앞에 당당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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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입양아가 자신의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돌아온다는 다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이야기의 큰 줄기로 삼고 있지만, 단순히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주인공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후반부에 약간의 신파가 끼어드는 점은 아쉽지만, ‘김밥도 천국이 있는데 나에게만 천국이 없다’며 좌절하던 조쉬가 스스로를 ‘에어포트 베이비’라 칭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또한 <에어포트 베이비>는 모던한 스타일의 넘버와 계속해서 귀에 맴도는 메인 멜로디, 재미 교포의 한국어 어투와 사투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재미를 더하는 언어 유희, 정이 넘쳐서 더 정감 가는 캐릭터들까지 뮤지컬 그 자체로서 탄탄한 매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다 차치하고라도, '지금 있는 그대로 모든 건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이 작품은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객들과 공연계에 위로를 전하는,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하고 또 소중한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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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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