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잘 먹고 잘 사는 법 [사람]

먹방과 결핍에 대해
글 입력 2021.01.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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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에서 만 칼로리 챌린지라는 게 유행이다.


24시간 동안 10,000kcal를 섭취하는 도전이다. 성인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의 5배, 대략 5일 분량의 음식을 하루에 다 먹어버리는 시도이다. 심지어 10,000kcal로도 부족해, 2,000~5,000kcal를 추가해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먹방(먹는 방송)은 오래전부터 유튜브 효자 상품이었다. ASMR을 위주로 하는 먹방부터 Vlog와 결합한 먹방, 20인분도 넘는 양을 빠르게 먹어 치우는 도전 먹방까지. 조회 수가 보장되는 콘텐츠로 자리 잡은 먹방은 크리에이터의 수도, 시청자의 수도 꾸준히 늘었다.

 

먹방 유튜버 채널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면 인기 비결은 명확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대리 만족'이었다. 사람들은 먹방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만 칼로리 챌린지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짜 잘 드셔서 대리 만족 최고!!" / "저도 그렇게 한 번만 먹어 보고 싶어요ㅠㅠㅠㅠㅠ" / "다이어트 중인데 영상 보니까 대리만족 엄청 됩니당"

 

먹방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잘 먹기도 하지만, 먹는 만큼 살이 안 찌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입이 짧아서, 살찔까 두려워서 먹지 못하는 양을 거뜬히 먹는다. 소화력이 뛰어나서,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허기를 잘 느낀다



우리는 먹는 행위를 함으로써, 혹은 그 행위를 봄으로써 허기를 채우려 한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라는 말은 사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먹방 시청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갈 충족시켜준다. 그렇다면 먹방 유튜버가 배를 채울 때 우리가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신해서 느끼는 만족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도 사도 끝이 없다. 딱 이것만 사면 더는 바라는 게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물건을 사는 순간 새로운 물건에 눈이 간다. 욕구는 방향을 틀긴 해도 사라지진 않는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 용어만 빌려보자면, 욕구에는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매슬로우-욕구이론.jpg

 

 

다 별개인 것 같지만 연결돼 있다. 위험에 노출돼 있다(안전 욕구)고 생각하면 잠을 설치게 되고(생리 욕구), 삶이 무기력할 때(자아실현의 욕구)는 먹는 것(생리 욕구)으로 채우려 한다. 우리는 대상의 부재, 결핍을 흔히 식탐으로 해소하려 한다.

 

결국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만만한 '먹기'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식욕이 아닌 다른 것을 충족시키려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먹어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결핍이 생겨난다. 소화가 안 돼서, 살이 찔까 봐 생각만큼 많이 먹지 못한다.

 

대신 먹방이 적절한 순간에 등장한다. 먹방에는 나보다 훨씬 많이 먹고 자유롭게 먹는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는 그들을 봄으로써 대리만족할 수 있다. 개인의 결핍을 식욕에 기대어 채우려 하고, 식욕을 먹방에 기대어 해소하려 한다. 물론 먹는 것 자체를 사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배가 불러도 계속해서 먹는 것은 말이 다르다.

 

 

 

열정적으로 과식하기



유튜브는 식욕을 해소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조장하기도 한다. 먹방 유튜버들이 많이 먹는 모습에 익숙해져 '과함'에 대한 감각이 마비됐다. 나 또한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란 착각도 하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포만감은 불쾌감으로 변한다. 그런데도 손과 입은 쉬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배불러도 계속 먹는 느낌은 달릴 때의 느낌과도 같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느낌말이다. 당시엔 숨이 차올라(배가 차서) 힘들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엔 다시 뛸 수(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한쪽은 건강한 채찍질이지만, 다른 쪽은 모진 채찍질이다.

 

이 정도면 배부른가? 단 걸 먹었으니 이제 짠 걸 먹어볼까? 이미 가득 찬 위에 음식을 꾹꾹 눌러 담으며 온전히 먹는 행위에 집중한다. '먹는다, 배부르다, 다시 먹을 수 있다' 이 세 단계만 반복한다. 동시에,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는 쾌감도 느낀다. 다만 에너지는 건설적인 곳이 아닌, 몸속 깊은 동굴로 향한다.


식욕은 욕심이 많아 다른 욕구까지 감싸버린다. 대체된 욕구로 인해 진짜 허기와 가짜 허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과식을 부른다. 과식하면 먹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괴로움만 남는다. 진짜로 결핍된 곳은 채우지도 못한 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버려 괴롭게 된다.

 

결국 실제로 배가 고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을 채우려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건강하게 사는 법



흔히 건강하게 사려면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서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건강하게 먹어서 건강하게 살 게 되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니 건강하게 먹는다는 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은 건강한 습관 중 하나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어느 순간 목표가 사라지고 수면 패턴도 엉망이 됐다. 새벽 5시가 넘어서 잠이 들어도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 됐다. 잠에서 깨는 건 이미 점심시간이 된 후였다. 눈 뜨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다른 과자를 찾았다. 알 수 없는 보상심리로 밀가루 식품과 단 음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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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꾸준히 습관을 만들었던 때도 있었다. 규칙적으로 잔 덕에 7시에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에는 간단히 오트밀이나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책도 읽고 영어 공부도 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다시 저녁에는 꾸준히 스트레칭해서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바람직하게 도미노가 넘어갔다.

 

건강하게 살면 건강한 식사가 따라왔고, 과식보단 절제하게 됐다. 때론 부족한 것이 더 낫다. 배고픈 상태를 맛있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능력이 한참 모자란 상태는 그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큰 상태로 생각해야 한다. 부족함을 미충족된 상태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족함'의 가능성을 보며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제 먹방을 끄고 배고픈 상태를 즐겨보자. 그 자체를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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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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