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쳇 베이커, 재즈를 사랑한 그대의 이야기 - 본 투 비 블루 [영화]

글 입력 2021.01.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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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Born to be Blue"

 

약에 취한 것일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 그의 걸음걸이에 침묵 속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떨리는 목소리는 의도한 것일까, 제인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점점 옅어져 간다.

 

몽롱한 향기가 영화 속에서 느껴진다. 상대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진다. 아,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하면서도 부질없는가, 그의 음악에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그저 하나의 멜로디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오므린 입술로 나지막이 내뱉는 숨소리의 행렬은 끊임없이 내 귀에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을 나지막이 뿜어낸다. 눈을 감은 채 듣는, 늦은 밤의 트럼펫 연주는 나의 공간을 그림자의 안식처로 만들어 버린다.

 

 

 

 

 

Jazz to me


 

적막 속에서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공부하거나 글을 쓸 땐 항상 음악을 듣는다. 국내 음악은 가사가 잘 들리다 보니 집중을 하기 힘들어 팝송이나 연주 음악을 듣는 편이다. 그렇다고 클래식을 들을 정도로 고상한 취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식견은 '신서유기'에 나가서 한 두 문제 정도를 맞출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주는 유튜브를 틀어놓다 보면 우연처럼 반가운 만남을 갖게 되곤 한다. 내 음악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순간이자, 새로운 감정을 겪는 가장 현대적인 방법이다. 류이키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가 나오고, 새벽의 눅진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이소라의 노래 모음이 흘러나온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은 생소한 악기의 연주가 재즈라는 제목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트럼펫, 히사이시조가 지휘를 맡은 오케스트라에서 본 적이 있다. 예능 진짜 사나이에서 헨리가 첫 시도임에도 소리를 무척 잘 냈던 기억이 있다. 익숙하진 않지만, 익히 알고 있던 악기의 소리는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트럼펫 소리를 감싸는 연주 전반적인 분위기에 매혹당한 것인지, 아니면 툭툭 내뱉듯이 연주하는 그의 숨결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트럼펫을 입에서 뗀 듯 아무 소리도 없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거짓말, 사랑을 속삭여본 적 없는 사람의 떨림이 이렇다고? 겨우 몇 음절의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고 애잔하게 만드는데, 그럴 리가 없지. 듣기 평가 시험을 보는 것처럼 이어지는 가사를 주의 깊게 들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가 가사에 담겨 있었다. 문득 아름다운 선율에 멜로디를 더하는 가수의 이름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쳇 베이커, 마침 보고 싶은 영화 목록 중 그의 삶이 담겨 있는 영화가 있었고, 그의 노래를 접한 그 날 저녁, 그 영화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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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be Blue


 

'본 투 비 블루'는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음악가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일대기를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의 전성기 시절이 아닌,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영화에선 조명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주제로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크린에 담긴 흑백 프레임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명예와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대조 시켜 인물의 삶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쳇은 두 번의 이혼 후 제인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약물에 중독된 쳇 베이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사람이다. 과거의 업으로 폭행을 당하며 앞니를 잃고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지만, 영화에선 그의 연주에 대한 열정과 광기를 순수한 노력으로 표현한다. 연주자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린 순간, 그의 조급함과 두려움은 배우의 눈동자로 여실히 드러난다.

 

제인의 존재와 딕의 지원, 그리고 꺼지지 않는 쳇의 열정으로 그는 재기에 성공한다. 세심한 연주 능력은 떨어졌지만, 그만의 개성과 떨림이 생겼다는 대중들의 반응은 그에게 과거의 영광을 상기시키며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축복 앞에서도 그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그의 완벽한 재기를 위해 필요했던 영화의 마지막 공연에선, 그는 결국 약물을 선택했고, 공연장 안 모든 사람이 감동하는 완벽한 무대를 선보인다. 다시는 약물을 하지 않을 것이라 그를 믿었던, 제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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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an Hawke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를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 것만 같다. '내 사랑', '비포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동도 나에겐 벅차게만 느껴졌는데, 이제 이 배우의 표현력을 감히 평가조차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인물은 거칠 거나 투박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누구보다 로맨틱한 경우도 있지만, '내 사랑'과 '본 투 비 블루'만 봐도 그 거칠고 사회 부적응자와 같은 인물에서 에단 호크는 여린 감수성을 그려낸다. 겉으론 마초적인 남성이지만 단지 몇 마디의 대사와 눈동자로 관객을 눈물짓게 만든다.

 

믿고 보는 배우,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그런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맨체스터 바이 더 시'에서 케이시 에플렉과 에단호크라고 하겠다. 국내 배우는 김윤석 배우, 이병헌 배우. 눈빛으로 광기나 절망, 끝없는 슬픔을 보여주는 그들의 연기는 사람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화할 수 있는 그들의 연기 스펙트럼도 덤이다. 사랑과 공허, 눈동자마다 하나씩, 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들이라 생각한다. 몇십 명이 폐쇄된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우리들의 귓가에 다가올 것이다.

 

가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목소리에게 자아가 있는 것만 같다. 이상하게도 그러한 톤과 떨림을 가졌다는 이유로 나의 숨겨진 감정이나 이야기를 공감해준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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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그의 사생활에 대해 평가를 하진 못하겠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다르고, 내가 그를 비판하거나 부정적으로 여긴다고 해도 이 사회에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정말 너무 행복하다. 막연한 행복도 아닌 조금은 우울한 행복이 느껴진다. 서로 맞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라 느껴지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 겪은 감정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수많은 음악가를 좋아하지만, 그들 중 하나의 장르로 나에게 기억될 인물이다. '쳇 베이커', 앞으로 그를 생각하면 몽상가적인 우울함과, 트럼펫 소리와 교차되는 그의 떨리는 미성이 항상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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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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