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zildo Zegna) & 브리오니(Brioni) - 명품의 가치 [패션]

글 입력 2021.01.0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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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이들은 우리가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다. 당연히 하나같이 비싸다.

 

언더커버. 오프 화이트. 아크로님. 이들이 만드는 제품도 비싼 것들 뿐이지만 명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가격이 비싼 브랜드는 많아도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는 한정적이다. 요컨데, 명품이 비싼 것이지 비싸다고 명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품에 붙는 가격은 단순히 비싸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에 합당한 가격이 붙은 것이다. 어떤 브랜드가 명품이라고 인정받고자 한다면 갖춰야 할 자격이 꽤 까다롭다.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색이 있고, 장인의 손길을 통해서 만들어져 품질이 보증되며, 오랜 시간 속에서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것을 꾸준히 유지 해 왔을 때야 비로소 그 브랜드는 명품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가격은 그에 대한 증명인것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 브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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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Eremenezildo Zegna Official Site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원단 제작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브랜드로 그 모든 과정에 장인의 숨결이 담겨있다. 1910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원단 공장을 물려받아 ‘라니파시오 제냐(Lanifacio Zegna)’를 설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품 생산에 사용하는 모든 원단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며 그 검수 과정도 무척 까다롭다.

 

모든 검사 과정이 사람의 손길을 거치며 그렇게 만들어진 원단 중 가장 고급인 캐시미어는 티슬이라는 식물로 빗질하여 기모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을 100년 넘게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단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로고가 새겨지는데 이는 생산한 제품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이다. 이토록 꼼꼼하고도 철저하게 관리되는 제냐의 원단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다양한 브랜드로 납품된다.


제냐는 슈트를 만드는 것에도 아낌없는 정성을 쏟아붓는다. 그중에서도 최고급 라인에 속하는 쿠튀르의 경우 주문, 치수 측정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장인들이 참여하고 공장 생산이 아닌 사람의 손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한 벌의 슈트에 약 20시간 이상의 바느질 과정이 소요된다. 제냐가 이렇듯 뛰어난 품질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그 사업 모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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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Oasi Zegna Official Site

 

 

제냐 가문은 대대로 종사자가 아름다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 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믿어왔다. 이런 모토는 그들의 기업 운영 방침의 바탕이 되었는데 창시자인 제냐의 고향인 이탈리아 트리베로 지역에 기업 차원에서 마을회관, 도서관 등 다양한 복지 시설을 지어 지역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하고 있으며 ‘파노라미카 제냐’라는 이름의 도로 개통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환경에도 특히 신경 쓰고 있어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기도 했으며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 등을 통해 환경 보존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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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Brioni Official Site

 

 

이런 제냐와 비슷한 모토로 서로 경쟁하는 브랜드가 ‘브리오니’다. 나자레노 폰티콜리와 가에타노 사비니가 1945년 로마의 바르베리니에 설립한 브리오니는 전통과 장인이라는 가치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파도에 휩쓸려 전 세계 산업 전반이 공장제 대량생산 체제로 변하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당시에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핸드 메이드를 고집하며 펜네 지역에 수공업 공장을 세웠다.

 

그렇게 사람의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브리오니의 슈트는 60회의 다림질, 22시간의 바느질, 220단계에 이르는 수작업 공정을 거치며 약 6주에 걸쳐 단 한 벌이 완성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대단히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 모든 과정을 여전히 고수하는 점은 장인과 전통이라는 브리오니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내고 고객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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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Luxury Highlights

 

 

브리오니의 전통에 대한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육으로 이어진다. 브리오니는 1985년에 ‘스쿠올라 수페리오레 디 사토리아 나차레노 폰티콜리’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를 통해 장인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4년에 단 한 번, 그것도 오직 18명의 학생만을 뽑으며 이들은 약 4년의 교육과정과 1년간의 인턴을 거치게 된다.

 

모든 과정을 거치고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 수석 졸업생만이 마스터 테일러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나 그마저도 브리오니가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면 탈락한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브리오니의 장인이 되는 이들은 비로소 슈트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브리오니의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을 통해 상담을 받고 치수를 측정하게 되며 그렇게 모인 모든 고객의 패턴과 작업 지시서는 브리오니에 고스란히 보관된다.

 

 

 

명품의 미학



나는 초등학교 이후부터 수학과는 철천지원수 같은 관계를 자발적이자 타발적으로 유지하고 있기에 수학 시간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는 편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느 수학 선생님도 빠지지 않고 말했던 ‘기본에 충실하라’라는 말이다. 기초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심화나 응용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었다. 수학은 진즉에 내 손을 떠나 저 먼 곳의 임을 찾아갔으나 이 말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비단 수학뿐만 아니라 패션에도 이 단순한 문장은 절대적 진리로 작용했다.


패션에 있어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품질이다. 우수한 원단을 선택하여 옷을 입을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치수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제작되는 튼튼한 옷은 화려한 디자인이 아니라도 깊고 진한 맛을 낸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가방과 장인의 손길이 담긴 가방을 나란히 두고 바라보면 그 맛의 깊이가 다르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로 다양한 음식들이 편의점으로 흘러들어오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엄마나 아빠의 집밥 맛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우리의 시야는 시장으로 쏟아지는 공산품의 범람에 가려져 그 집밥을 발견하는 눈이 멀어져 가고 있다.


패션이라는 분야가 이전보다 개방되고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종사자의 수가 늘어난 덕분에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제품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분명 좋은 일이나, 안타깝게도 제품의 품질은 이런 발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있다. 1년이라도 성하게 입으면 선방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외관에만 치중된 제품들이 즐비한 것이 근래의 패션 시장이다. 포드가 무덤에서 나와 지금의 사회를 본다면 환희에 가득 차 박수갈채를 보낼 것만 같다. 이런 상황인지라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라는 가치를 그들은 여전히 지켜내고 더욱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장인과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명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장인을 장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본질을 추구함과 동시에 보다 뛰어나고 발전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인의 손을 거쳐 태어난 작품이 비로소 사람들에게 명품이라고 인정받는다. 20시간의 바느질, 60번의 다림질은 쓸데없는 노동이 아닌 영혼을 담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정성이 만들어내는 보장된 품질과 멋이 명품이 지닌 가치이며 비싸다고 부르는 가격은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다. 고객의 자료를 하나하나 소중히 보관하고, 기계 한 번 돌리면 뚝딱하고 나올 것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고, 정확한 치수를 재고자 눈에 불을 켜고, 원단으 위해 나무를 심고 도로를 뚫어버리는 것은 과한 행동이 아닌 장인 정신을 지켜내려는 노력이자 제품이 명품으로 태어나기 위한 산고와 같다.

 

명품과 장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가치관을 고수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안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이를 전통으로 탈바꿈시킨다. 명품에 담긴 그 역사와 전통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며 하나의 브랜드나 한 명의 장인이 걸어온 외길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멋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제냐와 브리오니가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기계를 도입하고 공장을 가동하면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모르는 멍청이라서가 아니다. 설립부터 이어져 온 그들의 본질과 가치관, 역사와 전통이라는 보물을 지켜내기 위해서이자 이들을 놓치는 순간 더는 명품이 아닌 하나의 제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브랜드와 제품을 사랑해 준 고객의 충성심에 대한 보답이다. 명품이라는 칭호를 거머쥐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이런저런 꼬드김에 쉽게 흔들리는 본질은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기에 결코 명품으로 태어날 수 없다.

 

 

 

본질을 입는 것



최근의 패션을 비유하자면 폰트만 다른 서로 같은 문장의 나열을 보는 것 같다. 겉보기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마치 내가 더 뛰어나다는 듯 뽐내고 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전부 같은 것들이다. 다채로운 세상을 위해 태어난 예술이 단출하여지고 있는 상황은 본말전도다. 이제는 문장의 내용조차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고뇌와 사색은 전혀 담기지 않은 텅 비어있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다. 일시적인 즐거움과 여흥은 누리겠지만 그 재미는 얼마 못 가 사라지고 자리만 차지하는 내용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 자명하지만 지금의 패션은 그 일시적인 자극만을 추구하며 병들어간다.


사람도 패션과 같다. 옷을 입는 것은 사람이기에 본질적으로 패션은 사람을 위해 태어났으며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패션을 만들어냈다. 옷이 명품인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웃기는 말이다. 명품인 사람이 명품을 걸쳤을 때 비로소 명품은 진정한 명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도축장의 돼지에게 샤넬 백을 걸친들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옷과 가방, 액세서리에 어울리는 품격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슴 아프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은 냉정하고 냉혹하며 잔인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수정을 반복하며 그 모든 감정으 담아 쓴다고 하여도 모든 문장이 명문은 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명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한 문장이 될 때까지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명작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옷장 한편에 고이 놔두고서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고 언젠가 다시 한번 입어보며 그 시간을 되새기고, 시간과 함께 낡은 것이 아닌 더욱더 깊어진 멋을 품는 제품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명품으로 가는 길이자 패션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 멋을 멋지게 소화하는 품격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다.


나는 패션을 사랑하기에,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를, 그들의 문장을 걸치고서 자신만의 멋을 마음껏 뽐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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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 대한 정보는

'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 도서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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