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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윤리 선생님이 기억난다. 작고 아담한 신체에서 철학가들의 사상을 한 문장씩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열거하셨던 모습은 여전히 내 뇌리에 짙게 남아있다. 그러한 선생님 덕분인지, 아니면 철학이라는 학문을 욕심 있게 습득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 때문인지 철학 분야는 나에게 있어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대학교에서 <인간과 윤리>, <현대사회와 철학>, <몸 철학과 연극의 역사>를 들으며 철학이라는 매력적인 학문을 늘상 내 곁에 두려고 노력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이 악물고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물 흐르듯 담겼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의 전체를 상기시킬 순 없지만, 그만큼 이 학문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해 탄탄한 가치관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철학에 흥미 있어 하는 분들이 썩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실용성이 크지 않다고 느껴 배움의 중요도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다. 또는 가설을 배우다 보면 “왜?”라고 연결되는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후자의 경우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철학을 배울 때는 상황을 연출시켜 답까지 향하는 과정을 배운 적은 없었다. A는 A이고, B는 B라는 틀에서만 철학에 몸을 담가봤으니, 처음에는 이 책이 적응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 책 안에는 A의 답이 A 이긴 한데, 왜 A로 나타나게 된 건지 논리 정연한 가설을 들려주며, 심도 있는 사색 시간을 만들어준다.

 

13장으로 구성된 철학 여행 중에서, 필자는 가장 인상 깊었던 6장을 정리하며 소개해보려고 한다.

 

 

 

1. 신의 존재


 

 
“저기 지구에는 많은 종교가 있어. 그리고 그 종교가 요구하는 첫째 교리는 믿음이야. 종교를 갖기 위해서는 일단 믿음이 있어야 해. 그런데 믿음은 지식과는 좀 달라. 인간이 이언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말할 때와 탁자 위에 컵이 놓여 있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라. 이언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안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저 아래로 내려가 너 자신을 보여 준다면 네 존재에 대한 믿음은 지식으로 변형되어 버릴 거야. 아이러니지. 네가 네 모습을 보여 주는 순간 종교는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 문장에 내 신경은 몰두됐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종교를 신의 존재의 혼동으로 인해 외면하고 살았던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답 어딘가에는 코딱지만 한 믿음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외면했던 종교를 다시 신뢰해 작년에 슬며시 부활시키는 중이었다. 그러나 또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정말 신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점을 되풀이 시켜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면에서 비일비재하게 외치는 나의 목소리에 현대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 타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증명된다면 사람은 믿음의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반드시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의 주 원칙인 믿음의 토대를 훼손한다.

 

얼마나 옳은 소리인가. 신과 종교는 그 자체가 믿음으로 성사되는 고결한 영혼들이다. 그 영혼에 대해 실제와 비실제를 논한다는 것은 신과 종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과 종교는 그 자체가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인 신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련다. 증명은 믿음을 부정하며 믿음이 없으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알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이라는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려는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파악하려고 하는 생각은 굉장히 무의미하며, 신은 영원히 자신을 보여주지 않아 종교는 제 자리를 지키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 악을 허용하는 신


 

또 두 번째 의문점이 있었다. '(믿음으로)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 세상에는 선 뿐만 아니라 악도 즐비하게 일어나는 걸까?' 가끔 친구들과 가볍게 했던 실제 대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면 대화의 마무리는 대부분 이렇게 종결된다. “신이 실제 있었다면 이 세상 모든 악을 다 처리해 줬겠지. 그런데 악은 절대 사라지고 있지 않아. 대체 뭘까. 어휴 모르겠다. 어렵다 어려워.”

 

 

“자유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악이 있어야 한다.”

 

 
“신은 처음에 세상을 창조할 때 두 가지 선택 중에서 갈등을 했을 거예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동시에 악도 만드느냐,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주지 않고 악도 만들지 않느냐. 두 번째 세상은 있을 필요가 없겠죠? 우리가 로봇이나 꼭두각시와 같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어요?”
 

 

이에 덧붙여서 신을 옹호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첨언을 듣는 것이 좋겠다. 최고 선의 존재인 신은 자신의 전능함과 선함으로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악이 있게 하심은 악에서 선함을 낳기 위함이니...

 

그래서 세상에서 필요악(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극복할 한계가 없다면 아무리 풍요로운 경험일지라도 즐거움의 보답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건너야 할 어두운 계곡이 없다면 산 정상에 있을 때 맛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반으로 준다는 헬렌 켈러의 말을 덧붙여져 악이 존재하는 이점을 말해준다.

 

신이 아닌 모든 인간들은 악을 그 자체의 악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신은 악의 결과가 그저 악뿐이라면, 악을 세상에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필코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악이 계속해서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악에서 선의 도출이 있다는 증명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악에서 선의 희귀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악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봐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명백한 악을 보며 살아가야 우리는 ‘신은 왜 악을 처리하지 않으실까’가 아닌, '악에서 선으로 도출될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려해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신과 달리, 우리 눈에 악이라고 생각되는 악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 <이언의 철학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고민해 봤지만, 가볍게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의아했던 부분을 접근하기 쉽도록 도와준다. 필자는 인상 깊었던 6장에 대해 떠들었지만, 나머지 부분 또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을 수 있기 마땅하기에 이 책을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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