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큐레이터 전공생, 대학교 4학년을 바라보며

글 입력 2021.01.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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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가장 긴 본관 건물의 길이로

기네스북에 오른 나의 모교, 조선대학교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에서는 첫째,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미학, 미술사학을 포함한 여러 시각문화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하여,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을 이끌 수 있는 미술비평, 전시기획 등 시각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둘째, 미술관학, 전시론, 큐레이터인턴쉽 등 문화예술기관에서 필요한 실무 교과를 익혀 공사립미술관, 갤러리, 문화예술기관 등에서 기획과 운영을 담당할 큐레이터나 예술행정가를 양성하는 데 있다.


-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학과 소개란

 

 

큐레이터 전공이라고요? 아, 그 미술관에서 작품 설명해주는 사람 맞죠?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함께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요,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도슨트이고 큐레이터는 전시의 전반을 기획하고 미술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나 역시도 처음엔 낯섦이 가득했던 단어였다. 더군다나 '큐레이터'라는 명칭을 내건 학과는 모교를 포함해 국내에는 두 곳의 학교만 개설돼있기에 특수함을 지닌 과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했고 기대되는 학과였다.

 

그런 낯섦과 기대감을 반반씩 품고 2018년 3월, 설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학교에 입학해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을 물결의 부드러운 움직임처럼 살며시 흘려보냈다. 2021년에는 드디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4학년이 된다. 3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이 과에서 무얼 해왔을까? 본 글을 통해 다시금 되짚어 보려 한다.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본 전공은 인문학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전공이지만 다른 인문계열 학과처럼

일반적인 이론 공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전시와 비평 등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전공이다."


 

풋풋했던 새내기 시절이었던 1학년. 불과 2년 전 그 시절에는 1, 2학기에 걸쳐 서양미술사를 심도 있게 공부했다. 비록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이론보다는 실기를 해왔기에 사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어쩌면 백지 수준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랬던 내게 첫 전공수업이었던 ‘서양미술사’는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과에 신선한 흥미를 가져다준 흥미로운 과목이었다. 속한 과를 다니고 졸업해야 하는 확실한 목적과 비전을 설정할 충분한 이유를 찾게 해준 강의이기도 했다. 그렇게, 미술사의 흐름을 찬찬히 읊으며 발전양상과 더불어 다양한 국가의 기나긴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예술계가 이 세상에 당당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근거를 전해 받을 수 있었다.

 

한편, 1학년은 처음으로 나름의 전시를 ‘기획’해본 학년이기도 하다. (비록 실제 전시의 수행까진 이어지지 않았지만) 전시의 주제를 설정하고 가상으로 작가를 섭외하는 것과 전시장 모형을 제작해 발표하고 리플릿까지 제작해보는, 그야말로 실제 개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수행해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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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만들어본 전시 리플릿

 

 

나는 당시 전시회명을 ‘마주쳤던 행복’으로 설정한 뒤, ‘우리가 마주쳤던 행복은, 거창하거나 위대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우리가 과거에 자연에서 마주쳤던 그 날의 추억 속에 있었다’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전시 제목을 뒷받침했다. 그리고선 그에 맞는 세 작가의 작품을 기획 의도와 접목하여 하나의 가상 전시를 구상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가상으로 꾸린 것이었으나 하나의 전시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다채로운 성격의 미술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작품 보는 눈을 기르고, 전공과 관련한 여러 경험-미술관 아르바이트, 인턴쉽 수업, 비평 글 작성, 서포터즈 활동 등-을 해보며 보다 깊숙이 전공에 빠져들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전공 공부를 하며 높은 만족과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운명이었을까, ‘큐레이터’라는 단어가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예술의 큰 틀 안에서 학창 시절의 꿈을 전전했지만, 이전까지는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던, 그러나 미래에 마주하고팠던 부캐를 드디어 대면하게 된 기분이랄까. 그랬다. 발을 굴리며 힘차게 나아갈 딱 맞는 액셀을 찾은 듯한 기분이 나를 마주했다. 미술이론을 더욱 섬세히 공부할 수 있는 강의의 구성과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시는 유능한 학과 교수님들, 체계적인 실습 교육 등의 전반적인 학습 환경이 그런 기분 좋음을 가능케 해주었음이 분명했다.

 

*

 

그리고 바로 그러한 원동력이 2, 3학년의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후 동양미술사, 한국미술사, 미학, 예술학, 작가 연구, 미술비평, 인턴쉽 프로그램 등 여러 시각문화 이론 및 현장 경험을 축적하며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 갖가지의 노력을 했다. 특히 2학년 전공수업 때에는 비평 글을 자주 썼는데, 그때 글쓰기와 관련한 진전이 있음을 몸소 체감하곤 했다. '글'에 대한 관심도 또한 늘었기에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더하여 비전과 관련한 대외활동과 외부 프로젝트도 여럿 수행하며 채워지지 않은 역량을 채우고 또 넓히려 했다. 그런 여정에서 아트인사이트와의 소중한 인연도 맺었다. 큐레이터, 더 나아가 문화예술 기획자로서의 필요 역량을 채우고 넓힐 유용한 도구를 당당히 손에 붙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학과로부터 전해 받은 불타는 열의는 아트인사이트의 19기 에디터로서 활동한 3개월 동안, 더하여 컬쳐리스트와 앞으로 활동하게 될 필진 활동에 있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이루어냈다. 나 자신이 무엇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며 해당 분야에서 발전시키고 싶은 역량이 무엇인지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뿌리와 근본이 바로 나의 전공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알아차리게 된 순간이다.

 

 

   

3학년의 끝과 4학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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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12.24까지

본교 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회 전경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3학년의 학교생활도 어느덧 끝이 났다. 이번 학기는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냈지 않았나 싶다. 이론 공부부터 2, 3명씩 팀을 나누어 전시의 전반을 꾸려나간 것까지. 고생한 만큼 배움의 여지가 많았던 2020년도가 끝나갈 무렵, 동기 10명과 교과 연계로서 추진된 전공 수업의 연장선이었던 전시회 [Four sights for now]를 개최했다.


총 네 가지의 주제 중, 나는 2명의 팀원과 함께 [Phobia X 他者化: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주제로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혐오 사회'의 문제를 다루어 타자화(他者化)된 혐오'를 그려내는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현시대를 극복해나갈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보도록 이끄는 데 기획의 초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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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동기들과 팀별로 역할을 분담해 전시와 관련한 재정, 디자인, 홍보, 운송 및 보험의 모든 부분을 나누어 담당하고 그에 필요한 하나부터 열까지의 사항을 공유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제에 맞는 작가 섭외와 컨펌 등 하나의 전시를 개최하면서 복합적인 여러 요소가 전부 고려돼야만 했다. 큐레이터의 업무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정에 있어서도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팀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의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착오와 실수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처음과 마무리를 무사히 수행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비 큐레이터로서의 경험을 쌓아 올렸다는 생각이 그간의 힘듦과 역경을 넘어설 수 있게 도운 듯했다. 그렇게 9월부터 시작했던 전시 계획은 12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실체로 나타났고, 그제야 대장정의 끝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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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2021년이 시작됐고, 2개월 뒤 새 학기가 다가오면 또다시 4학년으로서의 새 출발을 위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을 예정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원형을 발견해준 나의 전공을 디딤돌로 삼아서 말이다. 더하여 전공과 미래에 마주할 부캐에 부끄럽지 않은 자기 발전의 기회를 앞으로도 만들어나가려 한다.

 

어떠한 일을 하며 가치관과 정체성을 찾아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안겨준 모교와 학과, 그런 감사한 마음에 부합할 수 있도록 스물셋인 '2021년'은 나를 한 번씩 찾아오곤 하는 불청객인 나태함에 맞서 작년보다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겨 후회가 남지 않는 한 해를 이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더 나은 2021년과 대학생 신분으로서의 마지막인 4학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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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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