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 [도서]

글 입력 2021.01.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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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이다”, “시작이 반이다”. 이런 구절들은 우리의 삶에서 횟수를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일상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린다. 또한 그 빈번한 등장의 수만큼 자연스레 우리에게 식상함도 안겨준다. 그러나 내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날들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식상함으로 채워지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각자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삶을 구성하는 매일을 버티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그런 단순함에서 비롯된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그 식상한 구절을 떠올리며 되새기는 것이다. "그저 해보는 거다"와 같은 말들을. 다채롭게 인생을 살리라 결심하며 새로운 시작의 설렘에 들뜨는 것은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하게 되는 모습은 아름다운 빛깔이 아니라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흑색이 자욱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더 좋은 선택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하겠다는 마음이 때론 빛줄기 하나 비치지 않는 우중충함을 마음에 번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저 요지부동으로 있어야 할 것 같은 순간, 발을 내딛는 곳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떤 대단한 철학적 심상이 아니다. 그저 “해보자, 앞으로 나아가 보자”하는, 단순하고 짧으면서도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한 말이다.


이렇게 때로는 무모하고, 대책 없는 듯이 시작해 이어지는 여정은 처음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다채로움과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다시없을 경험과 성취감을 안겨주며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 그 시작의 원동력이 단순함에 있음을 나를 비롯해 사람들은 때론 잊어버리고 부정하곤 한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 때문인지, 이미 삶에 지쳐서인지 어느 쪽이건 그 단순함의 실천을 돌아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여정을 살피는 것도 그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책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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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을 계획은 하였지만 내가 강원도 설악산까지 걸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내 생애 한 번쯤은 훌쩍 떠나서 걷고 싶었던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래도 두려움은 있다.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시작한 일이고, 그렇게 마음먹었으니 떠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은 설렌다. 다 벗어놓고 훌쩍 떠나는 것이야말로 나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53일의 걷기 수행 그 먼 길을 나서는 날, 창밖에는 부슬비가 내린다. 여행을 시작하기엔 조금 고된 날씨지만, 스님은 그저 길을 나설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여러 번 계획하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그렇게 다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고서야 "바로 지금이 때다"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실천에 옮긴다는 것만으로도 들뜰 뿐이다. 그렇게 계획한 대로 장산 스님은 만행을 떠난다.


불교에서 만행(萬行)이란 무상보리,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물론 부처의 깨달음을 담는 과정은 쉽지 않다. 모르는 이와의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고 예상치 못한 친절을 베푸는 이들도 만났지만, 어떤 이들은 공연한 시비를 걸곤 한다. 만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피로에 몸도 지쳐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장산 스님은 계획한 길을 계속 걸어간다.

 

 
요즘 나는 마치 시험을 치르는 학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같이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렇다. 나에게 약속했든, 부처님과 약속했든 간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처음에 생각하였던 것은 ‘천천히 걷자’였다. 그런데 날짜를 계산하고, 오늘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 등, 매일 한 가지에만 골몰한다. 시험 치를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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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세존사에서 출발해 설악산 낙산사에 도착하고 다시 세존사로 돌아오기까지, 스님은 마주하는 풍경 그 안에서 있었던 역사적 순간과 지금의 모습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1,300 킬로미터를 걸으며 거쳤던 내원사, 황룡사, 부석사 등의 사찰들과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유적뿐 아니라 이름 없는 어느 길 위에서 떠올렸던 자신의 생각과 고찰을 나눈다.


책에는 배낭 하나 짊어지고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기록과 더불어 불교에서 전해지는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렇게 매 장을 넘기며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기록이 어느 특정 시기의 장산 스님의 일기라기보다는 부처의 말씀과 뜻,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준 가르침을 담았다는 법문을 읽는 듯한 감상이 느껴진다.


 
내가 걷는 길들은 모두가 시골길이나 옛길이다. 자연히 산모퉁이나 마을 한복판을 지나며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신남 해수욕장이라는 간판이 있어 바닷가에 가보니 열 명쯤 들어가면 될 것 같은 아주 작은 해변이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네의 마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시인은 평안을 얻을 것이다. 어떤 때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아름답고 정이 갈 때가 있는 법이다. 작은 것은 작은 대로 그것들의 쓰임새가 있고, 큰 것은 큰 것대로 그 것의 쓰임새가 있다. 세상은 절대 한 쪽에 치우치는 법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며 공정하다. 사람이 그렇게 보지 못할 뿐이다.
 

 

장산 스님은 책을 마무리하며 만행을 나서기 전에는 바쁘다는 핑계가 마음에 자리했고, 때론 까맣게 잊기도 했으며 이제는 기회가 없겠다고 여긴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더 이상 늦출 순 없다며 길을 나선 그 선택은 참 잘한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장산 스님의 솔직한 심경을 담아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후 떠올려본다. 나의 내일이 좋은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와 같은 고심에 잠식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그리고 빠른 행동의 실현을 묵묵히 잇는 자세를 갖추자는 다짐을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특별한 이 없는 듯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서 가끔은 스스로를 살펴가면서 살면 좋은 인생이 될 것이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면, 그 특별한 삶을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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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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