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글은 처음 읽었다. 그래서 초반에 볼 때는 문체와 내용, 시사점이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딱딱한 문체, 객관적인 수치와 기사 자료 언급으로 인해 사설 칼럼을 보는 것 같았다. 감성을 쫙 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들. 나는 병리학 적인 걸 잘 몰라서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보다보니까 이해가 됐다. 마치 숙명이었다.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의사로써. 어떠한 고발자 위치. 대변자. 전문의로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 그리고 도움 요청이었다.
우리가 배척하고,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려주었다. 정신이 ‘아픈 것’이었고, 신체가 아픈 것과 동일하게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리고 아프니까 약을 받는 거고,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한다.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야한다. 범죄율의 통계는 일반인보다 낮다.
하지만 정신병’에 대한 무지로, 편견으로, 오해로, 수용시설을 빙자한 격리로 대할 뿐이다. 함께 살고 의지하는, 현장에 있는 의사로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원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사실만을 전하는 담백한 글이 더 가슴이 아팠다.
정신 질환자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들도 아프고 싶지 않았다. 피해주고 싶지도 않고, 그저 한 사람의 몫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지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병 때문에 힘들 뿐이지. 환각, 환청, 조헌병 등으로 힘든 사람들도 이전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버려진 나무는 버려진 자신들이며, 버려진 나무를 조합해 만든 모자이크 모양의 바닥은 버려진 자들이 서로의 능력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나무 조각을 분류하는 일은 지루한 작업이지만 이러한 일을 할 때는 누군가의 ‘증상’은 ‘재능’이 된다.
강박과 회계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다. 애정 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전화받는 일이 알맞다. 함구증이 있는 사람의 과묵함은 무게 있는 사장 역할에 제격이다. 이처럼 각자의 증상이나 능력이 합쳐지자 빛나는 하나의 모자이크 작품이 되었다.
공동체의 힘. 사람은 원래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리고 서로 다름이 하나의 매력이고, 마음이 아파도 같이 어울리는 삶이 필요하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 직업인 안병은 저자에게 들으니 너무 와닿다.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건조한 문장이지만 읽기가 힘들었다.
격리되는 그들의 삶. 함께 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다니는 안병은 의사. 이 책 덕분에 또 하나의 파문, 물결이 되어서 더 어울릴 수 있게, 더불어 같이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