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이남기? 이남기!

글 입력 2020.12.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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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라는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당연하죠!”였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저돌적일 줄이야.

 

그렇다. 후회하는 중이다.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모든 면에서 불확실한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좋은 관계를 이어온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역시 누군가를 오롯이 받아들여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고귀한 일이다.


나는 2021년이면 21살이 된다. 빠른년생이라 정확히 말하면 20살이지만 그냥 21살로 세기로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의 나이를 보고 조금 놀랐을 것 같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의 치기 어린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의 삶의 깊이는 다소 얕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여러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보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아마 꽤 재미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당신의 기억 한편에 좋은 모습으로 자리하기를 원한다.




#1.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었다. 유재석처럼 지혜로운 소통을 이끌고 싶었고, 오프라 윈프리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물론 속내로는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멋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속 장래 희망을 쓰는 빈칸에 항상 ‘방송인’을 적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방송인의 꿈이 조금 옅어졌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았고, 꿈꿀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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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 EBS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학교 요리왕>에 참가하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학교 요리왕>은 EBS에서 새롭게 시작한 ‘청소년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다. 특집 프로그램으로 3부작이 편성되었고, 요리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응모를 원한다며 공고가 올라온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 학교 요리왕의 이름으로



<학교 요리왕>의 목적은 평범한 급식에 질린 학생들을 위해, 학생의 눈높이에서 급식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청소년 요리사를 찾는 것이었다. 이 거창한 프로그램을 본 나는 ‘일단 해 보자’라고 마음먹었다. 나는 요리와 방송이 좋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재밌는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원서를 내고, 직접 요리하는 영상을 찍어 참가 신청서와 함께 메일로 발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선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예선 합격이라는 것은 본선 진출, 즉 방송에 직접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방송 작가님이 본선 진출자 중 중학생은 나뿐이라고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본선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고 편한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한 후 촬영장으로 갔다.


대회의 심사위원으로는 오세득, 서태화, 이효재 선생님이 계셨다. 세 분 모두 내가 몰랐기 때문에(지금은 잘 안다) 크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가장 긴장하게 만든 것은 주변 참가자들의 실력이었다. 조리 고등학교 재학생은 물론이고, 어렸을 적부터 수타 신동으로 불린 형, 제주에서 해녀 생활을 하는 누나 등이 있었기에 식재료에 관한 이해와 요리 기술 면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학교 요리왕>에서의 경험을 모두 글로 옮기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결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혹시라도 중간 과정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학교 요리왕>을 검색해 볼 수 있다)


나는 본선 1, 2, 3차까지 진출하여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나는 ‘학교 요리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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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포동포동했던 때였다(화난 거 아니다)

 

 

생초보와도 같았던 중학교 2학년짜리가 뛰어난 경력을 가진 형, 누나들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이기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물론 노력하지 않고 요행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만큼 성장하기 위해 많은 요리 연습을 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았다.


학교 요리왕이 된 이후, 여러 방송에서 문의가 왔다. KBS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지만 아쉽게도 상황이 맞지 않아 출연이 성사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SBS <영재 발굴단>에서 출연을 요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영특한 친구들이 나오는 방송이었기에 괜히 나갔다가 망신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다음으로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서 연락이 왔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자녀와 부모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궁금해서 연락했을 것이다. ‘유재석 아저씨 보고 싶지 않냐’는 작가님의 전화는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지만, 방송에 보여줄 만한 갈등이 없어서 출연을 사양했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프로그램은 SBS <스타킹>이었다. 출연하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작가님과 촬영 약속을 잡았고, 1학기를 마치고 나서 여름방학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타킹>이 딱 그해 여름에 폐지되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다른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3. 그 이후에는



중학교 3학년의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것은 아직 방송에 나갈 때가 아니라는 신의 뜻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조리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계속 요리사의 꿈을 키우는 것도 나의 진로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우선 내가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지 않았고 요리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눈앞에 놓인 공부부터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러다 선생님의 권유와 주변 어른들의 조언으로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정말 뜬금없는 결정이다. 아마 ‘과학고 진학’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이 아닌 주변에서 알려준 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과학고등학교라는 공간은 무언가 창조하길 원하는 나의 예술적 갈망을 채우기에 부족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느껴졌던 고등학생 때, 나의 성적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3년이 나에게 고난과 같은 시간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했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운 좋게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어찌어찌 연결하여 식품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그러하듯, 대학 또한 유례없는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중이기에 나는 올해 동안 집에서 온라인 강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4. 지금은 뭐 하고 있냐면요



2020년 상반기에는 고등학교 때 못했던 요리를 실컷 했다.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요리 영상을 찍어 올렸다. 구독자 수는 적지만, 누군가 나의 요리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이 재밌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올렸다. 지금은 열정이 시들해져 업로드를 잠시 멈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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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는 요리 교실 강사 자리를 제안받았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수업이 취소되어 실제로 요리 교실을 운영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요리를 가르치기 위해 레시피를 정리하고 재료의 정량을 계산하는 등 새로운 경험을 했다.


아, 그리고 제과제빵 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가장 취약한 분야가 제과제빵이라 이번 기회에 공부해 보고 싶어 이것저것 만들어봤다. 마카롱을 제일 많이 만들었고, 타르트, 빵, 케이크도 만들었다. 많이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보낸 후에 피드백을 받으며 점차 실력을 늘렸다.


2020년 하반기에는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품공학은 내가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과학고등학교라는 특정 환경에서 요리라는 관심사를 접목하여 결정한 진로에 불과했다. 내가 진정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쯤의 기억이 난다. 한 선생님이 나를 불러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너는 어느 학과에 갈 거니?” “OO 대학교입니다.” “아니, 어느 학과인지 물어본 거야. 학교 말고.” “아, 식품공학과입니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잠깐 고민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인문학을 해야 해.” “아, 그런가요.” “남기야, 나는 아쉽다. 너한테는 인문학이 맞아.”


그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부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인문학에 관해 알아가려 애쓰는 중이다. 공연, 영화, 책 등을 보며 내가 접하는 모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 문화예술 속 존재하는 사람에 관해 탐구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내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2021년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나만의 길을 찾는 것.’ 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생각이다.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공연예술과 관련된 쪽으로 진로를 바꿀 것이다. 올해까지 4년 동안 이공계열 위주의 공부를 했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아마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이미 많은 사람이 걸어간 길이다. 그들이 걸어간 길에 발자국 하나 더 얹는 것이기에 크게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물음표와 같았는데, 지금 너를 보고 드는 생각은 느낌표와 같아.’ 정말 고마운 표현이었다. 물음표로 시작되어 느낌표로 남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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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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