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에 먹혀버릴 때, 체념 증후군의 기록 [사람]

체념증후군의 기록
글 입력 2020.12.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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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기운이 나지 않는 날이 있다. 할 일은 태산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좋아하는 취미조차 귀찮다. 이 상태가 영영 지속될 것만 같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 순간 삶의 의미를 잃고 영원토록 천천히 침잠되며 죽음을 맞이하는 억겁의 시간을 떠올린다. 이 의미 없는 모든 것들에 이제껏 내 시간과 정성들을 쏟아왔음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냥 제발 이 모든 것이 끝나버리길 움직이지도 못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우울증의 한 증상 중 하나는 바로 무기력이다. 흔히 대중들이 떠올리는 우울증 환자의 모습이 햇빛도 들지 않는 골방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인 것 또한 이의 영향일 것이다. 정상적인 범주 너머의 무기력, 이것이 우울증의 재빠른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함에는 틀림 없다. 직접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신체적 증상이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병’임을 인지하는 것 조차 힘들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게 느껴질 때쯤이면 중증으로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무기력은 대체로 불안에서 온다. 불안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안절부절 못하며 손톱을 깨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니 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어떻게 연관 지어야 할까?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은 스웨덴의 난민 아동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2000년년부터 늘어난 난민들은 수 많은 나라들로 도피를 해왔고 스웨덴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난민 가족들은 직접적인 위협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스웨덴으로 도망쳐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잠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잠자는 것이 왜 이상한 일인지 아마 의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잠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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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보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잠자는 공주는 그리 녹록치 않다. 어느 순간부터 행동과 반응이 줄어들고 밥도 잘 먹지 않던 아이들은 마침내 잠에 든다. 눈을 감고 침대에 편히 누워 안정적인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운 아기천사 인형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코에 꽂혀있는 호스만 빼면 말이다.

 

사실 아이들은 코마 상태에 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않으며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처럼 조용하고 천천히 호흡을 할 뿐이다. 동화 속의 저주를 받은 공주와 잠든 아이들의 딱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아무리 키스를 해주어도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움직여준다. 휠체어에 앉혀 산책도 하며 돌아와서는 따뜻하게 샤워도 시켜준다. 방문 의사들은 아이의 반응을 검사하고 부모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알려준다. 기절한 것도, 식물인간이 된 것도, 그저 잠든 것도 아닌 상태. 이 상태는 기약 없이 이어진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씩 아이들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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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들은 왜 잠에 든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무기력은 불안에서 온다. 아이들의 상태는 어찌 보면 매우 매우 극심한 무기력의 상태일 것이다. 너무나 무기력해서 잠에서 깰 힘 조차 없다. 이때 무기력은 불안에서 오지만 다시 불안은 무기력에서 시작된다. 불안해서 기력이 없어지다가 다시 기력이 없음에 불안함이 밀려온다.

 

난민 가족들은 단순히 ‘이민’의 개념으로 스웨덴에 온 것이 아니다. 그들 각자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부의 압력과 극단적 전통 혹은 종교 등의 희생양으로 죽음의 위협을 받는 이들이다. 그들이 스웨덴에 계속 합법적으로 머무르기 위해서는 망명허가판결을 받아야 한다. 만약 망명이 거절된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은 즉, 죽음을 뜻한다.

 

제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쯤은 안다. 망명허가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망명이 거부되어 다시 허가를 신청하는 이들도 많다. 이미 거절당한 요구가 동일한 조건 하에서 다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신에게 기도하고 기다릴 뿐이다.

 

마치 자연재해 앞의 인간처럼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지만 죽음을 등 뒤에 두고 있는 상황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불안과 무기력함을 몰고 온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무기력을 탈피한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때 인간은 극도의 불안함을 느낀다. 불안함은 다시 스스로의 무력함을 상기시키고 그렇게 아이들은 잠에 빠져든다.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 한 가족은 마침내 망명허가 판결을 받는다.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잠든 아이에게 속삭여주고 밝아진 가족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니 아이는 몇 개월 뒤 깨어난다. 1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지만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희망을 느끼자 깨어났다는 점에서 아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지는 명확해 보인다.

 

여전히 체념증후군에 대한 연구는 충분치 않다. 또한 왜 스웨덴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지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 흐리고 우중충한 북유럽에는 유난히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이유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 죄가 없는 아이들이 극심한 상황에 노출되며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몸이 고통에 휩싸이지도 피가 튀기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 고요함이 얼마나 두렵게 다가오는지 느껴졌다.

 

난민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 무작정 받아들일 수도 배척할 수도 없는 선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아이들만큼은, 불안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들에게 어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걱정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에 살았으면 하고 꿈꾼다. 아무런 죄 없는 천사들은 그저 마음 편히 잠들었다 눈을 뜰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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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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