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통의 사회에서 소통을 본능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 연극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셈이다.
글 입력 2020.12.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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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매체에서 익히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구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소통을 필요로 하며 살아간다. 특히나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뒤바뀌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다수가 모일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우리에게 있어 ‘소통’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올바른 소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통은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다른 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소통에 대한 정의의 밑바닥을 살펴보자면, 그것은 이러한 과정이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위해 다른 이의 말을 ‘듣는 척’하는 것이 아니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그의 상황에 대해 진심 어린 공감을 바탕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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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 이수정은 어딘가 불안정한 인물이다. 대화보다는 혼잣말이 편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질서 정연하게 꺼내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의 말을 잘 새겨 듣지도 않는, 소통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다. 수정이 그렇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이 주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린 수정이 험학하고 두려운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두 귀를 막아 버리는 것뿐이었다.


다른 이와 말을 주고 받고 대화를 배워 나갈 시기에 수정은 귀를 막는 것부터 배웠다. 당연히 귀를 막은 수정에게 다른 이와의 대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화의 기본은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저 듣지 않고 스스로 말만 하면 되는 혼잣말만 늘어난 것은 그녀에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수정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소통의 기회가 바로 그녀의 남편인 인기였다.


인기는 몸은 불편하지만, 듣는 것만큼은 잘하는, 수정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줄 만한 인물이었다. 항상 혼잣말을 하는 수정을 눈 여겨 보던 그는 수정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털어놓으라고, 돕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 스스로조차 들어주지 못해 공중에 흩어져버리는 수정의 단어들을 처음으로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런 인기를 통해 수정은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 그러니까 소통의 첫 걸음을 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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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수정이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겪었던 것과 같이 특별한 계기가 없었지만, 소통을 어려워 하는 또다른 이가 있다. 언제나 막말을 일삼는 수정이 다니는 회사의 부장 정상호이다. 상호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일 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 그에게 있어서 대화란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일방적으로 내뱉고 마는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결국 일방적인 대화에 지친 상호의 부인 미정은 상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그런 미정과 심하게 다툰 상호는 홧김에 평소에 무시해왔던 수정과 식사를 함께 한 후 거나하게 취해 수정의 집에 무단 침입한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이 휠체어에 묶인 체였다. 그때부터 수정과 상호의 끝나지 않는 불통의 지옥이 시작된다.


수정과 상호는 서로의 말을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내뱉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밖에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또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불통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평소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굳이 말을 섞지 않고 피하면 될 일이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해결을 위해서 두 사람은 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절박하게 소통이 필요했다.


문제는 여태까지 진실된 소통이라고는 해본 적 없이 살아온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을 할 줄 모른 다는 것이었다. 수정은 자신을 풀어 달라는 상호의 말은 무시한 채 자신의 상황이 어떠 한지, 어떤 어린 시절을 겪었고, 어떻게 해서 지금의 답답한 성격이 되었는지를 두서 없이 늘어 놓는다. 상호는 살기 위해, 풀려나기 위해 수정의 말을 듣는 척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대화를 이어 가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을지 만을 궁리한다.


급기야 두 사람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통의 상황에 무력까지 이용해 가며 서로를 할퀴고 상처 낸다. 상호는 수정에게 그녀의 남편인 인기는 죽었으며, 그녀는 현재 죽은 이의 시체를 붙잡고 말하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수정은 그런 상호의 말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의 남편은 죽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하고 급기야 상호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프라이팬으로 그의 머리를 가격하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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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던 남편 인기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정은 인기가 죽지 않았다고 믿었고, 으레 그래왔듯 자신의 혼잣말을 죽은 인기에게 늘어놓으며 또다시 혼자만의 고립된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수정의 집은 그녀의 혼잣말 만이 떠다니는 나름 그녀만의 안락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수정의 공간에 달갑지 않은 인물인 상호가 침입한 이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들어주는 이 없이 일방적으로 향하는 언어들이 쌓여가며 결국 수정의 집은 불통의 공간이자 그로 인해 물리적인 갈등까지 빚으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상호와 수정의 일방적인 언어들 만이 오간 수정의 집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불통의 사회를 축약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에 공감하며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그만큼 들어준 경험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그러한 경험이 바로 떠오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 홍수와 같이 퍼붓는 사회 속에서도 각자의 목소리만을 허공에 내뱉고 마는 불통의 사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례없는 전염병 사태로 인해 잠시 세상이 멈추고, 다른 이와의 소통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이 불가능한 지금, 멈춰 서서 올바른 소통이란 무엇인지, 그 방법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고심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연극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통해서 본 불통의 최후를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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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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