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피와 담배 [영화]

대화와 만남의 준비물
글 입력 2020.12.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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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이 두 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11가지 일상 에피소드로 엮은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를 선택할 때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날이 있고, ‘아! 오늘은 이거다!’라고 느껴지는 분명한 영화가 있다. 영화 <커피와 담배>가 나에겐 후자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두 단어의 평범하지만 오묘한 감성의 합이 은은한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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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꼬꼬마 10대와 달리 20대로 넘어가자마자 특별한 계기 없이 하루 한 잔 이상 커피를 찾는 사람이 되었다. 갓 20대에는 “나도 이제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 수 있어요!”라는 괜한 어른 흉내를 잡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그런 척들이 일상이 되어 밥을 먹고 난 후 입가심으로 꼭 마시는 규칙이 생겼다. 또 계속해서 생겨나는 과제의 양에 따라 커피의 양도 늘어났고, 기분에 따라 헤이즐넛을 추가할지 뺄지 고민하고 있는 결정 장애도 잇따라 생겨났다.

 

지금 나에겐 커피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조금 달라졌다. 커피를 너무 사랑하는 딸을 위해 올해 초 아빠가 커피 머신을 선물해 주셨다. 머신뿐 아니라, 직접 커피 사이트를 찾아 제일 인기가 많다던 원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렇게 세심한 나의 아빠는 저녁 식사 후에 꼭 하나 챙기는 것이 있다. 엄마와 나에게 “커피 타줄까~?”라고 늘 물으신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수긍하고 커피 맛을 기대하겠다며 아빠 옆에서 커피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사실 커피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굉장히 간단하면서 귀찮은 과정이다. 전에 마셨던 굳은 원두를 빼내서 흐르는 물로 씻고, 빳빳하게 마른 수건으로 분쇄된 원두의 찌꺼기를 정돈해야 한다. 그리고 원두를 일정량으로 넣고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한다. 머그컵에 졸졸 흐르는 커피가 추출될 때까지 앞에 서서 기다려야 하고, 계속 몇 방울씩 흐르는 커피의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 은근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행위뿐 아닌 누군가의 애정과 사랑이 깃들어져 있다. 커피를 매순간 일상화 시키면서 우리 집 구성원 간의 분위기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커피로 비유하자면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를 해 마시는 첫 입같이 진해졌고, 그 향이 입안에 빠져나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19시기와 커피의 합은 집이라는 공간에 잘 버물어져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매달 색다르게 마셔보려고 하는 원두의 선택에 대해 성공과 실패에 따른 리액션은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또 집 안 구석구석 피어나는 커피 향을 함께 맡고 있으면 하루의 끝에 여유와 안락함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그 반면 영화 <커피와 담배>는 이 두 단어와 어울리는 집 밖의 공간에서 주인공들을 1:1로 마주 보게 배치시키고, 실속 없는 대화들을 오고 가게 만든다. 모든 등장인물의 공통점에는 한 손은 담배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교차로 들으며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쌍둥이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 두 할아버지가 서로에게 충고하는 모습, 일 관계로 만난 사람들의 어색한 모습 등 여러 상황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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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넓고, 얕게 그리고 매우 짧은 상황들로 배치되어 있는 극이기에 깊은 의미와 교훈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감독 짐 자무쉬는 이 지점을 노려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매력화 시킨 것 같다. 사람들은 영화를 바라볼 때나 어떤 작품을 바라볼 때 꼭 해석을 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들이 있어야만 그 시간들이 알차다고 느낀다. (대표적으로 내가 이 부분을 심하게 갈구하고, 갈증을 느끼고 있어 그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감독은 이런 나와 더불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던져주는 듯했다.

 

커피와 담배는 사실상 파고들면 몸에 좋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냥,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여유'를 만들어주니까. 또는 우리들만의 뭉칠 수 있는 접점이 되어주니까 그냥 찾게 되는 것이다.

 

요새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1:1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관계가 몇이나 있을까? 비즈니스적인 관계 때문에 만나야 하는 것 말고, 의미 없이 만날 수 있는 지인과 친구가 몇이나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학창 시절 때까지만 하더라도 굳이 뚜렷한 목적이 없더라도 학교와 학원이 사회화를 자연스럽게 맺을 수 있도록 그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주체적으로 공간을 찾아야 하고, 그 공간에서 대화가 물 흐르듯 이뤄질 수 있는 모션을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을 각자 발견해야 한다.

 

그것들이 바로 별다른 ‘이유 없이’ '여유'를 만들어주는 커피와 담배가 되어주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들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대화를 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비즈니스를 위한 의미 있는 소통은 목적이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단일성이며, 연결성이 없다. 그러나 유쾌하지만 의미 없는 대화는 친한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유대감이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무의미한 대화들이 가장 소중한 대화이자 시간이라고 느낀다.

 

큰 알맹이 없는 소소한 대화들에 힘을 얻고 서로에게 여유를 만들어주는 시간으로 기억되어 계속해 그 관계가 유지된다. 그 관계에 합을 더해주는 커피와 담배는 10대 때의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통분모를 대체해주는 역할을 해주며,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극심하지는 않아 대부분 사람들에게 꾸준히 찾는 것들이 되어준다.

 

*

 

꼭 의미가 있고, 남는 것이 있어야만 알차게 보내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마땅치 않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소재로 이뤄져 있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영화적인 수수께끼 느낌의 열쇠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현시점 나에게 정말 필요했다. 늘 어떤 것이 주어지면 “그래서 이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라며 순이익을 따지려고 하는 나에게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고 여유를 만들어줬다. 똑같은 일상에 무심코 매일 찾는 커피와 담배처럼, 일상과 영화나 작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바라볼 때가 필요하기도 하다. 즉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에서 색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큰 강박일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커피와 담배>가 보여주고자 한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단순하지만 잔잔한 분위기를 내뿜는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꼬여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카페에서 옆 사람 이야기에 아무 의도 없이 귀가 쫑긋 세워지는 것 같이 묘사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언제 봐도 좋을 것 같지만 현재 시국 (코로나19)으로 집 앞에 있는 카페에도 발을 내딜 수 없는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새로운 정보와 신비적인 영화적인 기술은 눈 씻고 바라봐도 찾을 수 없지만 커피와 담배가 주는 여유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계속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흑백 영상과 실내에서 커피와 담배가 보여주는 옛 정서에 취하는 재미도 펼쳐질 것이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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