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 미술에 귀 기울여 볼 이유 - 방구석 미술관 2

글 입력 2020.12.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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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을 좋아하는 내 동생이 자기가 한국 학생이라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가 한국인이라 공유할 수 있는 K-pop의 감성이 좋다고 했다. 나는 동생 말에 괜히 반박하기를 좋아한다.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유튜브 봐, SNS에도 K-pop 콘텐츠 차고 넘치는데. 외국인이라고 요즘 세상에 K-pop 못 즐기나?

 

그랬더니 동생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아이돌 음악들이 가지고 있었던 감성, 아이돌 팬들의 문화, 이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밈들은 자기가 한국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음악이나 뮤직비디오야 언제 어디서든 보고 접할 수 있지만, 그보다 많은 걸 이해하려면 일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한 셈이다.


한 사람이 속한 문화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작 고만한 작은 차이 하나로도 이해도가 달라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앞으로 내가 한국 미술을 사랑하게 될 이유이다. 나는 운 좋게도 이 뛰어난 작품들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습득했다. 책으로 이야기될 기회가 적었던 한국 현대미술은 오히려 그래서 쉽게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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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책에서 소개된 작가들에게 한국의 예술가라는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한국에서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시기를 겪으며 많은 예술가는 일본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복잡한 국내 정세에 예술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과 배움이 있는 곳을 택한 것이다.

 

많은 배움이 있더라도 낯선 환경에서 힘겹게 길을 개척하다 보면 익숙한 내 나라와 두고 온 가족이 그립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타지에서 느끼게 된 그리움이 이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담아낸 방식만큼은 서로가 달랐다. 다른 나라에서 겪고 접한 예술이 흘러들어와 예술가들의 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유영국과 김환기는 한국적으로 해석한 추상미술을 만들어 냈고, 장욱진은 오히려 외부의 것을 막아내 자신의 색을 지켰다.

 

각 예술가에 대한 아래의 서술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같은 흐름과 배경 속에 살더라도 이렇게 각자가 택한 행보와 예술적인 표현은 다채로웠다.

 

 

“예술가는 논리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시대의 조류는 늘 바뀌기 때문에 예술가는 10년 또는 20년 후 자기가 한창 활동할 때에 세상에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미리 냉정하게 예측하여 공부해야 한다. 예술가에게도 논리적인 두뇌가 필요하다.“

p148 유영국

 

 

"<어부>는 제도권에서 배운 것을 답습하거나, 유행하는 서구의 미술사조 및 양식을 모방하거나, 남의 작품을 훔치듯 베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 화가의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모방은 진정한 가치 창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백지상태로 자기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창조되어 나오는 이미지를 그리려 했습니다."


p204 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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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예술을 꽃피우기에 기름지고 편안한 땅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겪어내는 동안, 자유로운 예술의 이상향을 억압하는 많은 환경이 있었다.

 

그들의 예술을 뒷받침할 경제적 기반은 수없이 흔들렸고,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도박을 거는 기분으로 떠났을 외국행은 낭만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꽉 막힌 시대상에 자신을 우겨 넣을 수 없었던 여성 작가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 수많은 고된 제약을 이겨나갈 강한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음에 감사한다. 덕분에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이만큼 늘었다. 예술이 나아간 길은 우리 사회가 나아간 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담아낼 수 있는 그릇도 그만큼은 넓어졌을 것이다.

 

*

 

이 책은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책이라기보단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문을 연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읽기 쉬운 말들로 풀어주고 있다. 책을 통해 예술가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오늘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고민들 속에서 용기를 낸 예술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알게 된다면 한국 미술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건 제약은 있기 마련이지만, 용기를 내는 건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행보가 인상 깊었다. 작품은 그들의 삶을 반영한다. 어떤 삶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잘 이끌어 주는 책이었다. 좋아지는 것이 많아지는 경험에 책이 좋은 윤활유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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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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