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과연 종강이 오기는 할까

글 입력 2020.12.2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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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종강이 오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고학번이 되어도 과제와 시험은 여전히 어렵고, 종강이 언젠가는 온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다. 벌써 일곱 번째 종강이지만 여전히 과제를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시험 날짜로 빽빽하게 채워진 12월 셋째 주가 정말 오기는 하는 건지, 이 경쟁과 고통에 끝이 있는지. 한 학기 내내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종강까지 달려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과제를 미뤄두고 일찍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인생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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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후드>는 ‘비포’ 시리즈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만든 성장영화다. ‘비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영화 속 시간의 흐름과 현실 속 시간의 흐름을 같게 해, 12년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정말 12년에 걸쳐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임에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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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메이슨 주니어의 성장 과정도 흥미롭지만, 내가 더 관심이 갔던 것은 메이슨의 어머니였던 올리비아다.

 

분명 이야기는 메이슨의 시점으로 전개되지만(메이슨과 사만다가 아버지와 있는 동안 올리비아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올리비아가 어떤 남편을 택하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리비아가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부지런히 학위를 따고,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하는데 그 전공이 바로 심리학이라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청춘시대>의 유은재,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진 밀번 등 심리학을 전공한 캐릭터를 드라마 속에서 보면 반갑다. 다들 어떤 이유로 심리학 전공을 택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심리학을 선택했고, 그래서 자연히 그런 관점으로 영화, 드라마 속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올리비아 역시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복잡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보려 했으리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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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번번이 결혼생활을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첫 남편이자 메이슨 주니어와 사만다의 친아버지인 메이슨 시니어는 철이 없고, 두 번째 남편이자 올리비아의 교수는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통제했고, 올리비아의 제자였던 세 번째 남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후 알코올중독으로 가족과 갈등을 빚는다.

 

첫 남편과의 이혼 후 올리비아는 학업과 육아를 분주히 오가야 했고, 두 번째 남편에게서는 옷가지 하나 챙길 틈 없이 도망쳐 나와야 했으며, 세 번째 남편은 사춘기를 보내던 메이슨에게 상처를 주었다. 각각의 순간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처럼 올리비아의 가족을 붙잡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삶을 살아나간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매니악’한 과에 합격했으니, 4년 정도 심리학을 배우면 저절로 삶이 달라질 줄 알았다. 이만하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고,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으니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끝없이 발버둥 치지 않으면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조차 힘들다는 걸, 심리학을 배운다고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수가 된 올리비아에게도 행복이 늘 따라다니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언젠가는 종강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종강한다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자꾸 잊게 된다. 심지어 졸업 후 취업을 한다고, 결혼한다고 해도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지루할 것이다. 올리비아는 메이슨이 대학교 기숙사로 가는 날, 황망하게 말한다. 두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이제 자신을 기다리는 건 자신의 장례식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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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를 붙잡는 행복의 순간을 마음껏 만끽해야 한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쨌든 하나의 장애물이 영원하지는 않으니 섣불리 끝을 예단하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십의 자릿수가 바뀌는 해여서 그런지, 유난히 요란하고 온통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했던 한 해였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고, 숨이 턱턱 막혀오지만 분명히 이 시기도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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