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그들의 입을 없앴나 -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연극]

‘아무도 아무말도 듣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현대인들을 위한 연극
글 입력 2020.12.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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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제목은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로,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무언극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목을 듣고 어떤 실험적인 기법을 도입하려는 건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배우들은 수많은 대사를 내뱉는다. 80분 남짓한 시간, 배우들은 잠깐의 암전을 제외하고는 쉼 없이 말한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의 말이,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심지어는 대화가 소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배우들은 말을 하지만 누구도 듣지 않는다. 대사는 공허하고, 텅 비어있다. 사람들의 말은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아무말도 듣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혼잣말이 아니라면 모든 말은 듣는 이에게 닿기 위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상대방이 지나간 뒤에 말을 하거나 오기 전에 말을 해 시간이 어긋난다면,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말을 해 공간이 어긋난다면, 그래서 상대방이 말을 듣지 못한다면 말을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렇지만 듣는 이를 눈앞에 두고 말을 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말을 하고 말이 들리더라도,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그건 듣지 않는 것과 똑같다. 이 연극에서 모든 대사는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다. 지극히 일방향적이거나, 오해와 거짓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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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시작하면 비정규직 시위와 절규, 정부의 형식적인 답으로 가득 찬 뉴스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깐의 암전 후,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가 ‘쇼타임’이라 말한다.

 

여자는 흰색 곰돌이를 안고 곰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곰은 요리를 하고, 아빠 곰은 말없이 밥을 먹고, 아기 곰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왜 왔냐고, 돌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하늘 위로 올라간다. 다소 기묘한 이야기임에도, 여자는 ‘아기 곰과 엄마 곰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연극은 관객에게 친절히 설명하거나 해설해주지는 않는다. 단지 퍼즐 조각들을 던져줄 뿐이다. 배우가, 대사가, 눈빛이, 흘러나오는 음악이, 배경이 되는 뉴스가, 작위적인 웃음소리는 우리에게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된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우선 넘쳐나는 정보의 편린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인공인 수정이 계약직이란 말은 극 중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도 수정을 계약직이라 부르지 않고, 수정이 스스로 계약직이라 설명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관한 뉴스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관객들은 그것을 스스로 수정과 연관 지어야 한다.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관객은 들려오는 모든 소리와 보이는 모든 장면을 적극적으로 이해해야한다. (실제 계약직인 것은 리플렛의 시놉시스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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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지는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관객의 자유다. 어떤 이들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당연한 사실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누군가는 끝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나처럼, 연극이 끝난 뒤 다시 한번 연극을 곱씹어보며 아, 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내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전혀 관계없다고 여겨졌던 일말의 사건들. 계약직 이수정은 정상호 부장이 호통을 치자 비 오는 날 그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앞에서는 싹싹하게 굴며 아부하던 권 대리는 둘이 함께 있는 것을 사진 찍는다. 사실 권 대리는 정상호 부장에게 ‘정상’호 ‘인’간 쓰레기라는 뜻의 ‘정상인’ 별명까지 만들며 정상호 부장을 싫어하고, 부장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아내 미정이 회사로 찾아가자 권 대리는 바람이 아니냐며 바람을 넣는다. 미정은 수정에게 전화를 건다.


이렇게 한 번에 정리해서 보면 권 대리가 미정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수정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것이 일목요연하고 자명한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 단서들은 8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무런 맥락 없이 나온다. 그러니 하나씩 흘러나오는 정보를 퍼즐로 취급해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도,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것도 전부 관객의 자유다.


아무도 소통하지 않는 무대를 보고 있자면 단순히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현실과 환상, 과거와 꿈을 넘나드는 이 연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분석하고 싶게 만든다. 흰 곰 인형과 검은 곰 인형의 의미는 무엇일까, 엘비스는 언제부터 수정과 함께했을까, 수정과 인기는 정말 사랑하던 사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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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혹은 배우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수정은 정말 시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정신병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병명은 무엇인가요, 아니면 다 알면서 그냥 모른 척하고 사는 건가요. (물론 코로나로 인해 공연 전후 극장 로비에서 출연진과의 대면 만남, 사인 및 사인 요청, 선물 전달 등은 모두 제한된다)


마지막에 부장이 수정의 머리와 목을 시체의 심장에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것만 아니었어도 남편 인기가 시체인지 그저 아파서 누워있는 것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수정을 보고 아, 정말 시체구나,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전에 나왔던 인기가 손을 떨며 술을 마신 후 베개 밑에 숨겨놨던 번개탄을 꺼내고, 휠체어에 앉아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과거 회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부장이 꾼 꿈이 아닌 것이다. 인기는 실제로 자살했으며, 수정의 집 한가운데 누워있는 것은 환자가 아닌 시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극이 아니고 막무가내로 던져지는 조각을 관객이 직접 끼워 맞춰야 하는 만큼, 하나의 단서가 이전의 장면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고, 연쇄적인 실마리가 되어 관객이 직접 추리할 수 있게 한다. 수정이 인기를 부장처럼 잡아 왔나 싶다가도, 부장의 약이 비싼 걸 알고 인기에게 먹이려고 하는 장면이나 인기의 자살 장면을 보는 순간 둘은 정말 사랑을 했던 거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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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 이상을 들어야 소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이상을 이해해야 의미가 있는 연극이다. 그 의미를 아는 관객만이 이 연극과 ‘소통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연극은 12.16(수)~ 12.27(일) 대학로의 드림시어터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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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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