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라는 대명사를 어색해하는 것.-2 [사람]

글 입력 2020.12.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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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이 있는 글입니다.

 

 

전편에서도 언급하였으나, 필자는 본 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히며 글을 열도록 하겠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우선 ‘그녀’라는 말이 어떠한 경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가에 관하여 알아본 후, ‘그녀’와 ‘여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비교 및 대조해보며 ‘그녀’라는 단어가 갖는 어색함에 관해 탐구해 보았다. 나아가 한국어에 해당하는 이 경우를 외국어인 프랑스어의 경우와 비교해보며, 언어에서 '성별 가르기'는 ‘반올림’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지난 글에서 예고하였던 대로,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성별 가르기'를 ‘반올림’하는 것에서 오는 문제점과, 대명사는 ‘성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해보도록 한다. 전편을 읽었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쓰도록 하겠다.

 

 

 

언어에서 ‘성별 가르기 반올림’을 할 때의 문제점


 

언어 표현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쪽으로 ‘반올림’한다는 것은, 어떤 언어에서는 ‘올림’이 시행되고, 어떤 언어에서는 ‘내림’이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방법 모두 조금 더 성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성별 가르기 반올림’에서 ‘올림’의 시행이 이루어질 때면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올림'이 시행되는 언어에는 ‘그 여성’을 의미하는 여성 단수도 있고, ‘그 남성’을 의미하는 남성 단수도 있다. '그 여성들'을 의미하는 여성 복수도 있고, '그 남성들'을 의미하는 남성 복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이 섞인 ‘그 여성들과 남성들 집단’ 즉 '혼성 집단'은 어떤 표현을 통해 지칭할 것인가?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는 전혀 곤란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다. 필자는 이 '충분히 곤란해야 할 만한 것이 곤란하지 않은 상황'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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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앞서 프랑스어의 예를 마저 들어보도록 하자. 프랑스어에서 ‘그 남성’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Il’이다. ‘그 여성’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Elle’이다. ‘그 남성들’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Ils’이다. ‘그 여성들’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Elles’이다.

 

그렇다면 3인칭 혼성 복수 대명사, 즉 ‘그 여성들과 그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 프랑스어의 거의 모든 단어는 ‘남성형’이 ‘기본형’이다. 따라서 혼성 집단을 가리킬 때는 그 집단의 여성 수와 무관하게, 본래는 삼인칭 남성 복수 대명사 표현인 ‘Ils’이 쓰인다. 물론 여기에서 ‘Ils’은 삼인칭 남성 복수 대명사로서 쓰인 것이 아니라 삼인칭 혼성 복수 대명사로 쓰인 것이다.

 

그렇지만 왜 ‘남성형’이 ‘기본형’인 것인가? 왜 ‘남성형’과 ‘여성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남성형’에 ‘e’를 덧붙임의 형태로 ‘여성형’이 생성되는 것인가? '올림'의 방향이 조금 불균형해 보이지 않는가?

 

사실 이는 성별을 가르는 것이 ‘주류’인 언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단어의 성별을 가르지 않는 언어인 중국어(汉语)의 3인칭 대명사 변화 양상을 관찰해보아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어에서 ‘그 남성’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他(Tā, 타)’이다. ‘그 여성’을 의미하는 대명사는 ‘她(Tā, 타)’이다(남성 단수 대명사인 他자 앞에 '여성 여(女)'자가 붙는다). ‘그 남성들’은 ‘他们(Tāmen, 타먼)’으로 쓰고, ‘그 여성들’은 ‘她们(Tāmen, 타먼)’으로 쓴다.

 

물론 중국어에서도 한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에는 성 정보가 없지만, ‘그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에는 성 정보가 있다는 어색함 역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주제와는 무관하니 여기에서는 가볍게 넘어가 보도록 하자.

 

그러나 중국어도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그 여성들과 그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로는, 그 집단 속 여성이나 남성의 수와는 무관하게 ‘他们(Tāmen, 타먼)’을 사용한다. ‘남성형’으로 쓰이는 것이 ‘기본형’인 것이다.

 

왜 ‘기본형’은 ‘남성형’으로 쓰여야 하는가? 어쩌면 부조리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점에 대한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 모든 언어를 한국어에서처럼 '내림’의 방향으로 향하게 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수백에서 수천 년간 사용된 언어에는 그 언어권의 문화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언어의 방식을 다른 언어에 강요하는 것은, 어느 한 문화를 다른 문화에 강요하는 것으로, 이는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의아하게도 이처럼 ‘성별 가르기’가 기본값인 언어의 ‘기본형’ 정하기에 대한 해결책은, ‘성별 가르지 않기’가 기본값이라고 볼 수 있는 영어에서 쉽게 제시해준다. 바로 ‘그 여성’을 가리키는 ‘She’나 ‘그 남성’을 가리키는 ‘He’와는 무관한, 제삼자적 단어인 ‘They’를 상정하여 그것을 여성 복수, 남성 복수, 혼성 복수 모두에 통용되게끔 하는 것이다.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복수형에 's'를 붙이는 것이 복수형 생성의 기본 공식인 영어에는 'Shes'나 'Hes'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 성별과 독립적인 하나의 단어 'They'를 가져왔다. 이는 '성별 가르기'가 자연스러운 언어 문화권에서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

 

 

 

대명사는 ‘성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하는가


 

위에서 언어의 ‘기본형’ 양상에 대한 흥미로운 전개를 살펴보았다. 이제 필자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볼 것을 요청한다. 바로 ‘대명사’라는 단어 자체의 뜻을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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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대명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대신 나타내는 말. 또는 그런 말들을 지칭하는 품사.’라고 설명한다. 영어에서 '대명사'를 뜻하는 말인 ‘pronoun’의 영영사전에서의 풀이는 ‘대명사는 명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그러한 경우는 보통 그 사람이나 사물이 앞서 언급되었을 때이다.(A pronoun is a word that you use to refer to someone or something when you do not need to use a noun, often because the person or thing has been mentioned earlier.)’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중 어디에도 ‘성별을 지칭’해야 한다는 설명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언어 속 대명사는 ‘누군가’가 아니라 ‘특정 성별의 누군가’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과거에는, 생물학적 성별을 가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었고 아니었고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것은 중요했던 일로 여겨졌다. 또 그러한 중요한 생물학적 '성 정보'는 한 개인의 외형적 특징으로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성 정보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정말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경우(예를 들자면 생물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생기는 성별에 따른 차별화된 의료상 치료 및 처방 방식 등)에는 중요하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물론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곤 하지만, ‘중요하지 않게 여겨져야 한다’라는 인식이 당위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머리카락의 길이나 특정 성별이 입는 특정 옷 등을 통하여 생물학적 성별을 구분할 수 있었으나, 현대에는 ‘특정 성별을 대표하는 머리 길이’나 ‘특정 성별만이 입는 옷’의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이 역시도 적어도 당위로서, ‘사라져야 한다’라는 인식이 점차 자리 잡고 있다. ‘치마를 입은 머리가 긴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즉, 현대사회의 사피엔스들에게는 생물학적 성별을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을 뿐더러, 우리가 미지의 제삼자를 가리킬 때에 알 수 있을 거의 유일한 정보인 ‘외형’에서도 생물학적 성별을 가려내기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 어떠한 외형적 표현상도 성별의 지표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자면, 대명사 안에서 성별을 가르는 것의 필요성에 관해서 고민하게 된다. 또한, 더욱 깊게 사고해보면 이러한 행위의 도덕성에 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게 된다.

 

필자의 글을 읽고 난 후에도 독자는 여전히 대명사에서 ‘성별을 가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필자의 글을 읽고 난 후, 독자는 대명사에서 ‘성별을 가르지 않는 것’이 조금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는가?

 

물론 이는 필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을 비방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이것은 여전히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고, 필자는 순수하게 필자가 ‘조금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설득하고자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독자가 필자에게 설득당했다면 정말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독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이러나저러나, 두 번에 걸친 나름의 프로젝트 연재를 이렇게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준 모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또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흥미로운 의심을, 여러분도 시작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며 이번 오피니언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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