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글 입력 2020.12.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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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또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본 사람이 '보존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 주인공 '준세이'를 생각할 것이다. 보존가에 대해 전혀 모르던 학창시절, 이 책을 읽고 막연히 보존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소설 속 주 무대였던 이탈리아를 떠올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부시절 교양수업에서 만난 보존가에 대한 배움은 보존가가 마냥 낭만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보존가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하는 양과 범위가 엄청나게 많고, 쉽게 될 수도 없다는 현실적인 것 배웠다. 이때의 배움은 보존가에 대한 로망을 동경과 경외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번 독서를 통해 만난 보존가는 철학적인 사람이었다. 그저 보존에 필요한 기법을 공부하고 그림을 보존처리 하는 사람이 아닌, 긴 시간을 지내온 한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는 사람인 것이다. 보존에 들어가기 전, 긴 시간에 거쳐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보존에 들어간다. 그 긴 시간 동안 보존가는 아픈 그림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의 치료방법을 찾아내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보는 작품은 원작일까?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과연 '내가 봤던, 보는, 보게 될 작품은 원작이라 할 수 있을까?' 였다. 오랜 시간 세상의 빛을 마주한 작품들이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접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자연적인 요소로도 훼손될 수 있다. 그런 작품들은 보존가의 손에 의해 치료되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과연 보존가의 손에 의해 치료된 작품은 원작자가 만든 그림과 같은 것일까' 하고 말이다.

 

 

미술품의 보존 처리에도 취향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은 물론이고 시대와 장소, 문화에 따라 취향이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키기로 한 것은 지키면서 복원하고 왜 그렇게 복원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 p.49

 


글쓴이의 취향은 오래된 것은 오래된 느낌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존재하는 보존가 수만큼 취향이 존재할 것이다. 이 취향이 그림을 다시 그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연 보존의 과정에서 그들의 취향이 더해진 그림은 원작자의 의도가 그대로 담긴 원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보존작업이 들어가기 전 다치지 않은 건강한 상태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도 대대적인 보존작업 후 색이 밝아졌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는 보존 전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절대 볼 수 없구나.’라고 말이다.

 

물론 보존 전의 작품도 오랜 시간을 존재했기에 외부에 의해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완성된 직후의 그의 작품 또한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명 보존 작업 전의 그림도 미켈란젤로가 막 그려낸 그림과 달랐겠지만, 보존작업 후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보니 괜시리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최대한 원작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하고 말이다.


‘원작’에 대한 생각은 계속하여 진행 중이지만, 과정 중 변화가 생기더라도 보존가가 존재하기에 세기에 걸친 작품들이 아직까지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보존가가 있기에 본래의 모습을 잃었던 작품이 빛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보존가의 존재가 곧 작품의 생명과도 직결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미술품에서 털어 내고 닦아 내는 먼지와 오염은 정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일까? 만약 이 미세한 먼지조차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의 작업은 잘못된 것이리라. 나는 오늘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지금보다 더 쌓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은 질문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돈다. - p.25

 

 

앞서 보존작업을 거친 작품을 원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던 생각은 존재의 가치로 이어졌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작품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늘어났다. 현재에는 레이저를 통하여 오랜 시간 쌓여온 먼지와 노폐물 등도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작품과 함께해온 먼지와 오염은 과연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와 함께인 작품은 보다 더 존재의 가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글쓴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모두 함께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 막중한 책임을 잘해 보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논쟁은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줄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논쟁을 생산적인 자극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 p.58

 


책을 통해 다양한 보존방법과 보존과정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만났다. 평소라면 그림에 담긴 이야기, 또는 그림 자체만을 관람했더라면 이제는 보존된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하여 그림을 더욱 풍부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이 과학자의 손길로 더 오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과학으로만 이뤄진 손길이 아닌 수많은 고뇌와 연구, 철학이 함께 담긴 그 손길을 책을 통해 느껴보길 바란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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