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 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너 때문에 - 대도시의 사랑법 [문학]

글 입력 2020.12.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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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책을 손에 쥐었다. 글자 속에서 8월의 끈적한 여름 공기가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이야기는 생생했다.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가 바로 옆에서 펼쳐진 듯한 느낌에 단숨에 박상영 작가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박상영 작가는 2016년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등단한 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2019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단편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있다. 그 중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로 구성된다.

 

박상영 소설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성의 문제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너무 직접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가감 없는 묘사 덕분에 작품 속 주인공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또 박상영 소설은 가볍다. 쓸데없어 보이는 가벼운 농담들이 등장하고 속어나 욕이 필터링 없이 등장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가벼운 농담 뒤에 현대인의 '외로움'과 '애증'이라는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벽에 대고서라도 무슨 얘기든 털어 놓고 싶어 하는 외로움, 자조적이다 못해 자학적인 인물들의 씁쓸함 웃음, 마흔여덟 가지의 감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애증. 이를 통해 그의 소설이 가볍기만 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고독하고 모호한 사람들의 심리를 포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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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외로운 대도시 - <재희>, <늦은 우기의 바캉스>



작품 속 인물들의 외로움은 무분별한 섹스로 이어진다. 그들은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외로운 밤을, 공허한 마음을 적적하지 않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아서 헤맨다.

 

<재희>에서 대학 동기인 재희와 '나'는 정조 관념이 없다시피 상대를 돌려가며 관계를 맺는다. 그러한 무분별하고 텅 빈 관계들에 익숙해져 진정한 인연을 맺는 것은 기피한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취해 새로운 남자와 잤다. 나는 세상이 외로운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진리를 매일 아침, 종로의 모텔촌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나오며 느끼곤 했다.”

 

"우린 그냥 섹스나 몇 번 하고 치운 사인데 네가 좀 오버를 하는 거 같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 나는 소개팅 어플 틴더를 하며 외로움을 달래고자 한다. 나는 실수로 버튼을 눌러 매치 된 하비비와 하루를 보내고 방콕까지 향한다. 나는 출장이나 업무로 바쁜 하비비가 왜 자신을 태국으로 부른 것일까 생각하지만, 동시에 자신도 왜 모르는 사람인 하비비를 따라서 이곳에 왔을까 자문한다.

 

 

“그는 도대체 나를 왜 이곳에 부른 것일까. 그저 방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 주기를 바라서일까. 조명을 켜놓고 방을 어질러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일지언정 아무 목소리라도 내줄 누구라도 필요했기 때문일까. 출장이 잦은 사람이니까. 빈 베개를 홀로 베고 누웠을 때의 차가움이나 사각거리다 못해 베일 것 같은 시트의 나쁜 감촉을 아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나는 지금 도대체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마음을 가장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깨진 핸드폰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뼈를 갉아 먹는 외로움, 벽을 보고서라도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 외로움은 연작소설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의 외로움은 텅 빈 관계를 통해서는 해소될 수가 없다. 그들은 외로움으로 하루를 보낼 사람을 찾고, 다시 외로워하고, 다시 사람을 찾으며 제자리를 빙빙 돌 뿐이다.

 

인물들은 사실 자신의 옆에 있어 줄,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갈망한다.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채워주길 바라기도 한다. '나'에게 진정한 소통의 대상이었던 친구 재희와 전 애인 규호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때, 영원할 줄 알았던 재희와 나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때에 맞춰 블루베리를 사다 놓던 재희.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내 연애사의 외장하드 재희.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며, 가당찮은 남자만 골라 만나는 재희.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그렇게 규호와 나의 기억도 유리막 너머에서 안전하고 고결하게 보존된 상태로 남는다. 영영 둘인 채로”

 

 

 

나를 향한 애증 - <대도시의 사랑법>


 

'나'는 에이즈를 가진 동성애자로 이태원 클럽에서 만난 바텐더 규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규호가 다가올 때 자신을 깎아내리는, 자기를 혐오하는 태도를 취한다.


 

“날 좋아하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난 주제 파악을 너무 잘하지”

 

“나는 꽃다발 효과를 노리며 콩고물이나 받아먹는 기생충에 불과하거든. 미모 친구들의 배경이고 병풍이며 술 먹고 떡이 된 애들을 살뜰히 챙기는 종갓집 당숙모 같은 역할이란 말야”

 


하지만 '나'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기만 하고 계속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규호에게 마음을 열면서 동시에 자신이 에이즈가 있다는 것을 당당히 인정하고, 그것이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으며, 규호에게 자신과 사귀고 싶으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에선 에이즈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영은 그것을 에이즈가 아닌 ‘카일리’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건 나야. 또 다른 나. 앞으로도 나일 거고 죽을 때까지 나일 테니까.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 하고. 나랑 만나고 싶으면 말이야. 그걸 알아둬야 해. 내가 나이며, 동시에 카일리라는 사실을 말이야.”

 


남들에게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무거운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시에 규호에게 자신을 잊어달라고 말한다. 자신을 정말 잊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일종의 방어기제로,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순수한 나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나의 순수한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규호는 나에게 에이즈가 있거나 말거나 나이기 때문에 연애를 시작한다.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규호의 말을 계속 상기하며 진정한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에이즈로 인해 성관계를 잘 맺지 못했던 나는 규호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규호에게서 사정지연제나 비아그라가 발견되어도 못 본 체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3년의 연애를 지속하였고 규호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둘은 결국 헤어진다. 규호는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냐고 묻지만, 나는 단호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말한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속마음으로 되뇐다. 사실 규호가 필요하다고.

 

 

“나 기다려줄 거임?

-현지인이랑 연애하면 외국어가 빨리 는다고 하더라.

우리 이제 헤어지는 거?

-그만 좀 물어봐.

넌 내가 없어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사실 나, 네가 엄청 필요해 규호야..”

 


주인공이 자신을 혐오하게 된 데에는 보잘것없는 외모와 능력이 가장 크다. 자신의 친구들 사이에서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에이즈가 있다는 사실은 말하기 쉬운 일이 아니며, 사랑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자기 자신을 폄하한다. 마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신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마냥 가볍게 웃음을 섞어서. '나'의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또 당당하게 에이즈는 내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애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랑을 나누는 애인과 다른 도시로 옮겨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너를 향한 애증 -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타인을 향한 애증은 어머니와 애인에게 투영된다.

 

'나'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나와 갈등을 겪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형과 연애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들키고, 폐쇄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면서 각종 검사를 받았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를 증오했고 그녀가 죽기를 바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두 살 연상의 이과생과 키스를 하다가 엄마에게 들킨 것이다....(중략)....다음날 그녀는 나를 문책하거나 혼내는 대신 자신의 빨간 마티즈에 태웠다. 그리고 경기도 양주의 한 정신병원에 나를 입원시켰다.....(중략)..... 그렇게 나는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나는 매일 오전 혈액검사를 포함한 각종 검사를 받았으며”

 

“나와 같은 지붕 아래 잠든 저 여자가 늙고 병들면 경기도의 외진 숲에 내다 버리고 말리라. 산채로 미친 들짐승의 먹이로 만들 것이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그 시절을 버텼다.”

 


현재의 나는 어머니의 병동을 지키고, 밖에서는 회를 먹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회를 사 가야겠다는 효자다운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극복되었고 어머니를 향한 증오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한편 나는 아카데미에서 만난 남자와 만남을 지속한다. 남자는 미 제국주의의 산물인 성조기와 할로윈을 싫어하는 공상주의적, 꼰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는 '나'가 파스타를 먹자 하면 남자 둘이 어떻게 파스타를 먹냐,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며 나와, 자기 자신, 동성애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런 그의 공상주의적이고 꼰대같은 면을 매우 싫어하지만,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며 사랑에 빠진다.

 

 

“당신이 맛보고 있는 건 우럭, 그러나 그것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닙니다. 혀끝에 감도는 건 우주의 맛이기도 해요.....(중략)..... 그러고 보니 남자의 눈빛이 약간 맛이 간 것 같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종교단체에 속한 사람인가?”


“꼰대 디나이얼 게이 같은 점이 소름 끼치게 싫었지만 그런 그에게 정신없이 빠져드는 내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영은 그가 원할 때만 자신을 찾는 애인에게 그에게 막말하면서도, 화가 난 그가 다시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어느 날 나는 애인의 집에서 컴퓨터 검색을 하다가 그가 동성애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동성애자이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애인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의미 없는 것들을 검색하다가 즐겨찾기 목록을 열었다. 그중 제목에 동성애가 들어간 기사가 있어서 무심코 클릭해보았다 .....(중략)..... 그 기사들은 모두 동성애라는 질병 혹은 징후에 대해 갖가지 원인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데나 동성애를 갖다 붙이는 등신 같은 자들에게? 이딴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구절을 모으며 자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못난 그에게? 별로인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좋아해 버리고, 단지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의 컴퓨터를 마구 뒤지며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나에게? 어쩌면 그 모두에게.”

 


결국 나는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자신의 애인에게 분노하며 주먹질을 한다.


 

“사랑, 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를 식탁에 눕힌 채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중략)......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 뒤였고.”

 

 

애인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생각은 어머니에게도 연장된다. 나는 병동으로 돌아와 아직도 기독교에 미쳐 미친 듯이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어린 시절 나의 트라우마와 상처는 하나도 수습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옆을 지키며 어머니를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엄마 있잖아. 그런데, 단 한 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내 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태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중략).....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미소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라고 질문했던 '나'는 이후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사랑은 한순간에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동전의 앞면 뒤에는 증오가 있고 그것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의 감정은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빨간약 파란 약 같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없다. 빨간색부터 노란색, 녹색을 거쳐 보라색까지 쭉 펼쳐진 그 넓은 스펙트럼이 감정이어서 1초라는 짧은 시간에 우울하면서 동시에 행복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망각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향한 그 감정이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몇백 개가 합쳐지고 나면 복잡한 감정은 모든 색을 합친 검은색이 된다. 그 몇백 개의 단어가 뒤얽힌 감정은 모순에 모순을 거듭해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점점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집착이, 애증이 되어버린다.

 

 

 

사랑이란?



박상영 작가가 사랑은 아름다운가? 라고 물었다면 나는 사랑이 존재하는가? 라고 묻고 싶다. 사랑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연과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진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사랑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우연에 의한 착각이며 언젠간 사라져버릴 연기 같은 것이다. 보이는 것 같다가도 바로 사라져 버린다. 절대 그것을 잡을 수도 간직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사랑을 믿는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 '나'는 소원을 비는 풍등에 애인의 이름 단 두 글자를 적어 하늘로 띄운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

 

 

아련하고 생생한 사랑 이야기에 사랑의 존재를 의심하던 나도 언젠간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보았다.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삭막했던 도시가 한순간에 아름다운 도시로 변하는 그런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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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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