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고자 하기까지 - 쿠사마 야요이 : 무한의 세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
글 입력 2020.12.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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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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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짐 없이 선명하게, 가장 영롱한 색채로 꽉 채워진 동그라미들의 향연. 힘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듯, 생기를 잔뜩 머금은 도트Dot 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장면으로 나는 쿠사마 야요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샛노란 호박, 거울이 마주하는 사이 피어난 무한한 향연, 꿈틀거리는 동체 속에서 울렁이는 크고 작은 점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쿠사마 야요이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실제로 보거나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유명한 작품들로서, 그녀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표현들로서 그녀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예술가”,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가 1위” 같은 표현들로 말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삶과 예술을 담은 <쿠사마 야요이 : 무한의 세계>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 이 다큐멘터리가 쿠사마 야요이라는 예술가를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시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가를 표현하는 세간에 떠도는 무수한 수식어를 벗어나, 그러한 예술을 펼쳐내야 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삶 자체에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었다. 그것을 그려내기까지 겪어야 했던 삶과 시대의 결을, 그녀의 삶 매 순간 그려져야 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의 흐름을 다른 깊이로 응시하고 싶었다.


 

*

"이 영화는 성차별, 인종 차별, 정신 질환을 극복하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아온 한 개척자의 이야기다"

 

- 감독 헤더 렌즈

 


“쿠사마 야요이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살펴보고 나서 보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미리 간단한 자료 조사를 했었다. 타인의 관점에서 쓰인 쿠사마 야요이에 대한 문장을 찬찬히 읽어내려갔고, 그녀에 대해 어느 정도 필요한 내용들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여러 의미로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지금까지 너무도 표면적으로만 그녀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에 있었다. 단지 문장들로 사실 내용을 확인하는 것과 예술가의 고백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다른 깊이로 일어나는 이해와 공감의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와 뉴욕 미술계에서 얼마나 공공연하게 차별과 편견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다시 이해하는 데에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가 단지 동양인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주해야 했던 어려움들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여러 감정을 느끼며, 당대 미국 사회의 단상을 학문으로 배울 때와는 분명 다른 깊이로 파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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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사회, 남성주의가 공고히 자리 잡은 미국 현대미술계,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여성과 동양인이라는 정체성. 쿠사마 야요이에게는 무엇인가를 추진하고 인정받기에 어느 하나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런 상황이었던 만큼, 나는 그 무엇보다 거침없이 자신의 삶과 예술을 끝까지 이끌었던 쿠사마 야요이라는 예술가와 사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의 나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내용에 집중하며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바라보았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표출한, 더 나아가 단지 표출뿐만이 아닌 그것으로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서슴없이 창작하고 움직였던 쿠사마 야요이라는 사람의 열정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천재'라고 그녀를 수식하고자 한다면, 그녀의 작품이 아닌 그런 예술을 해낸 쿠사마 야요이가 의지와 열정 자체에 그 표현을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쿠사마 야요이는 누구든 쉽게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는 고통을 오히려 자신의 예술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10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쿠사마 야요이는 캔버스와 잉크를 모두 버릴 정도로 거센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친다. 엄격한 어머니, 외도하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 환경은 그녀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는 여성인 쿠사마 야요이에게 결혼을 강요했고,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결혼하기를 거부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려나간다. 어느 날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은 쿠사마 야요이는 오키프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한 답장을 계기로 1957년 일본을 벗어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 도착한 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쿠사마 야요이는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미국의 미술사를 다시 쓰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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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단지 미친 예술가로만, 그녀의 예술을 단지 정신 질환의 표출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망설임 없이 미국으로 향한 쿠사마 야요이에게는 너무도 확실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성공하겠다는 목적과 의지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미국에서 오롯이 자신의 실력을 통해 창작한 작품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와 미술계는 쿠사마 야요이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미술계는 여성 딜러조차 여성 작가의 작품을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백인 남성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때였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당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사이에서도 눈에 띄어 전시에서 주목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언급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반복되는 이미지 패턴으로 공간을 채운 작품을 제작한 아이디어를 앤디 워홀이 가져가 자신의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고, ‘부드러운 조각’ 아이디어는 클래스 올댄버그가 가져가 작품을 제작했다. 그렇게 오히려 성공한 것은 쿠사마 야요이가 아닌 아이디어를 훔쳐 간 백인 남성 작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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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 집적: 1000척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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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Cow

 

 

그녀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이 감히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술계에서 인정받으며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로 살아가길 열정적으로 꿈꿨던 만큼 그 상처의 깊이가 어땠을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사건 이후 쿠사마 야요이는 아무도 자신의 작업실을 보지 못하게 모든 창문을 천으로 가리고,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쿠사마 야요이는 예술가로서의 성공만을 열망한 것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던 예술가이기도 했다. 인간의 아름다운 몸이 희생당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나체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으며, 이 움직임에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철저히 차별받고 무시되었던 성 소수자들과 함께 했다. 서로의 몸에 점을 그리고, 점을 붙이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쿠사마 야요이와 퍼포머들을 보며 당시 만연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단상을 지켜보며 잠시 굳어있던 감정이 잠시 풀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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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작품을 보며 나는 쿠사마 야요이의 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점들의 환영이 작품이라는 형태의 표면 위로 표출되었다. 그 점들은 다양한 형태로 공간을 채워 우리의 시선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었고, 그러는 한편으로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나의 점무늬는

내 삶을 빛나게 하는 중요한 의미다”


환영 증세로 그녀를 괴롭히던 점들은 오히려 그 누구에게나 함께하자고 말을 건네는 예술적 언어이자 다리로 탈바꿈한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점들은 개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타인과 함께하고 선명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에너지를 지닌 표현이자 언어가 되었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과 예술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은 예술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당대 사회와 미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거침없이 표현되었던 그녀의 예술 세계를 외면했지만, 그에 상관없이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에게 남겨진 깊은 상처를 추스르며 예술가로서 이루고자 했던 꿈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추구해나갔다. 그리고 오히려 사회에 아무렇지 않게 만연해 있는 상처를 예술로써 어루만지고자 했다.


서양 남성 작가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미술계에 환멸을 느끼고 정신적으로도 지친 쿠사마 야요이는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미국에서 나체로 퍼포먼스한 것이 일본에 알려진 이후 가정, 지역,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예술가가 아닌 그저 선정적인 이슈메이커로서만 조명된다. 일본에서도 그 어떠한 인정도 받을 수 없던 쿠사마 야요이는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술가를 꿈꾸던 그녀가 지니던 삶과 예술을 향한 열망은 그녀의 삶을 쉬이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의지가 그랬다. 1976년 쿠사마 야요이는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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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을 떠난 지 16년 만에 뉴욕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쿠사마 야요이는 비로소 다시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작가로서 초청받지 못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현장 바깥에서 자신의 퍼포먼스 예술을 펼쳤던 쿠사마 야요이는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1993년 일본 대표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는다. 그 이후부터 쿠사마 야요이는 세계에서 사랑받는 예술가로서 비로소 인정받았고, 92세가 된 현재에도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다.

 

 

*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끝자락 즈음 그녀의 고백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참으로 쉽지 않은 고백이고, 사실 공감하기도 어려운 고백이라 생각되는데 그녀의 삶과 예술을 살펴본 후에는 절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삶의 많은 순간을 고통과 차별, 상처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쿠사마 야요이는 끝내 자신의 꿈이었던 모두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런 예술가에게 자신의 예술로 세상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술을 펼쳐나가는 일 만큼 기쁘고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

 

빈틈 없이 생기를 잔뜩 머금어 터질 듯이, 그러나 무너짐 없이 견고하게 눈부신 색채로 그려진 그녀의 점들이 왜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는지 이해되었고, 그녀의 예술이 어째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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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만연한 차별과 편견을 이겨낸 그녀의 삶은 예술 자체를 막론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남다른 울림을 주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삶의 궤적 자체가 어쩌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고백 앞에서 삶의 기쁨이란 무엇인지, 평생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이겨내고 끝내 그 고백에 이르게 한 예술이 지닌 힘이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예술을 그토록 입에 달고 살아가는 걸까, 무엇이 나를 매 순간 조금 더 버티게 하는 걸까.

 

쿠사마 야요이의 고백, 그것을 향한 나의 질문은 자연스레 나를 향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도 그녀와 같은 용기와 열망을 지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상념이 솟아나는 나의 마음 다른 한편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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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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