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지역의 예술에 대해 생각해 보기

당신 지역의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글 입력 2020.12.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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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일 외에도 활동을 하나 더 하고 있다. 바로 지역문화재단의 모니터링단 활동. 나는 줄곧 천안이라는 지역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 생활까지 천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어쩌면 남들보다 이 지역의 예술에서는 빠삭해야 하지 않나, 하는 책임감을 느끼고는 했다. 문제는 느끼고만 있다는 거였지만. 그 책임감을 실천력으로 전환해보고자 도전했던 것이 바로 그 활동이었다.


처음엔 어떤 마음으로 신청했었더라. 당시에 코로나19가 막 기승을 부릴 때여서 세웠던 계획이 모조리 취소되고 뭘 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건 기억 난다. 때마침 모니터링단 모집 공고를 보고 부랴부랴 신청했던 것도. 우리 지역의 예술에 대해 무지하고 있던 것을 반성 삼아 공부하겠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청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모니터링단 활동이라는 게, 어디를 가나 그렇겠지만 아주 최소한의 자기 부담으로 자신의 미학관을 형성할 수 있는 최적의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할 일도 없었고, 보고서만 내면 교통비도 지원해 주고, 미학관도 기르고.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모집 인원의 불충족과 코로나19의 확산세로 인해 재단 측에서 지원 마감을 미루고 또 미뤄 6월부터에야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이제 활동한 지 반년이 되어가는 시점, 그간의 활동을 정리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생각보다' 였다. 사실 기대를 하나도 안 하고 시작한 활동이었기에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거다. 솔직히 학교에 다닐 때도 동기들이나 나나 강의가 끝나고 전시나 뮤지컬을 보러 서울을 올라가긴 했어도 천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본다거나, 민간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게 단순히 서울에서 진행하는 콘텐츠가 흥미 있어 보여서, 라고만 말하기보다는 지역 차원의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천안' 하면 떠오르는 난폭한 버스, 지하철 1호선의 고질적인 문제, 예술 행사의 홍보 부족 등등. 이 여러 문제가 결합해서 천안의 예술에 대한 편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곤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지원 사업의 대상은 신진예술인, 신진예술단체, 생활예술동아리, 전문예술인, 전문예술단체, 장애인 문화예술로 이루어져 있다. 활동 초기 때만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다녔던 심사가 연말이 되어선 급격히 늘어났고, 이번 달만 5번의 심사를 하기로 예정되어있었다. 내 주위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을. 또한,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전문'예술인들의 공연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거다. 예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좋은 학교에 다니시는 분들은 기본이었고, 무형문화재이신 분도 있었고, 해외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하신 분도 있었고, 20년이 넘도록 붓을 잡으신 분도 있었다. 내가 관심이 없던 것도 있지만, 그분들을 알 수 있는 매개체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평가가 절하되는 수밖에. 이 지역의 예술이라고 하면 그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작품전을 하고 끝내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모니터링을 할 때마다 놀라는 거다.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아직 안 알려져 있다고? 같은. 인디 가수들을 보면서 왜 안 뜨지? 하는 마음과 동일한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좀 갈까.

 

생각해 보면 지역 예술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예술을 하러 서울로 갈 거니까. 그 생각에 안일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지역 것도 모르는데 뭘 배우겠다고.

 

명백한 계기가 존재한다. 몇 주 전, 지역의 도서관에 있는 작은 갤러리로 모니터링 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아트그룹 열매 작가전'. 그 전시회를 지칭할 단어가 그것 말고는 없었다. 전시장에는 포스터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한 스승 밑에서 그림을 그려온 제자들이 꾸린 중견 여성 작가들의 회화 그룹전. 작가들은 각자 본인의 작품을 전시했고, 따라서 여러 작가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의미적인 구성을 가진 전시는 아니었다. 어떤 맥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시인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물론 '기획'을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밖에 안 보였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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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품 하나하나를 다 살펴보면서 유독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었다. 마늘을 오브제로 삼은 그림이었다. 한 줄의 설명도 적혀있진 않았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모두 작가에게 마늘이란 식료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마늘을 떠올렸을 때 상쾌하고 명료한 분위기가 아니라 약간은 어둡고 침침한 색채로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개인적인 상처와 맞닿아있겠지, 하고 말았다.

 

마침 그날은 이 마늘 그림을 그리신 작가님이 갤러리에 상주하고 계신 날이었다. 우리 엄마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셨던 작가님께서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내게 여러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경계도 풀렸을 무렵, 작가님께서는 내게 자신이 그리는 마늘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본인은 마늘로만 그림을 그리신다고. 작가님의 어머님께서 친밀하게 지내셨던 이웃집 마늘 장수에게서 입게 된 깊은 상처를 토대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마늘로써 그림을 그리신다고 하셨다.

 

엄청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상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얻게 되는 작가 자신의 치유와 더불어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면서 어머님의 상처를 아물어줄 그 가능성 자체에 마음이 많이 갔던 것 같다. 또한 인생의 중턱에 들어서면서도 갖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언젠가 자신이 그린 마늘 그림을 전시회 측에서 입간판으로 제작해줬다는 그 경험을 내게 전하면서 지었던 그 해사한 웃음이 잊히질 않는다.

 

해사한 웃음. 그 미소를 정의할 수 있는 알맞은 단어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도 그 웃음이 생각났다. 집에서 그 일을 상기했을 때도 여전히. 그토록 인물에 대한 잔상이 오래도록 짙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그날 초면인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그런 걸까. 작가님과 만남은 지역 예술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게 해 주었다. 그 외에도 연주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던 아코디어니스트도 기억나고, 여러 차례 한 곡을 다시 촬영하시던 무형문화재 선생님도 기억난다. 한 차례 한 차례 모니터링을 끝내고 나면 '이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예술에 쏟아붓는구나' 하는 생각이 줄곧 들곤 했다.

 

또한 전공이 예술경영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술 외에 부가적인 것들을 더 살피는 경향이 있다. 이 공연장의 울림이 어떻고, 좌석이 어떻고, 갤러리 위치가 어떻고, 그런 것들. 어쨌든 행사의 장소와 시간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에 이 행사에 포함되는 모든 비예술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탐구하고, 또 탐구했다. 몰랐던 예술가의 발견도 이 활동을 통해서 얻게 된 진귀한 경험이었지만, 몰랐던 명소를 알게 된 것에도 의미가 깊었다. 내가 작년에 졸업 전시를 기획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천안에 갤러리가 많은 줄도 몰랐는데, 지역 문화 회관은 물론이고 도서관과 카페에서도 갤러리를 운영하는 곳이 되게 많았다. 분위기도 좋았고, 다양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넉넉하기도 했고. 교내 기획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로서는 다양한 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팬더믹의 장기화로 외부 지역으로의 이동이 조심스러워진 이 상황에서 모니터링단 활동을 한 게 신의 한 수였을 지도 모르겠다. 배울 대로 배울 수 있고, 예술은 예술대로 관람할 수 있고. 여러 차례 활동을 하다 보면 행사마다 미흡한 점이 한 두가지씩은 있어서 참 아쉬운 점도 많지만, 나는 이 모니터링단 활동이 심사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재단 차원에서 기획할 힘을 기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역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도 생각하고 있고. 물론 이 말고도 성장을 저해하는 여러 요소를 개선해야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떨칠 수가 있겠지만,  그 전에 탄탄한 기획력이 있어야 예술인들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예술에 대한 기호를 바탕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지역에는 어떤 예술이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문화공간이 있고, 지역 예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어쩌면 그걸 외면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유명하고 저명한 예술에 휩쓸려 우리 동네의 것에 너무 모르고 있던 건 아닐까.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가 잠시 위축된 상황에서 우리 지역의 예술에 대해 조금만 더 애틋한 마음을 갖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우리 곁에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바로 그들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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