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살아는 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살기만 하면 된 거 아닐까요.
글 입력 2020.12.1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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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번아웃의 징조


 

흐름이 끊기는 조각글을 쓰고 싶었다. 파편적인 생각을 전개하고 싶어졌다.

흐름과 논리 관계가 질서정연한 글들만 수차례 뽑고 있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려서 그렇다.

 

최대한 간단하게 문장을 쓰려고 한다. 내 글쓰기 철칙이다. 가독성을 높이고, 글의 기름기를 빼기 위해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학보사에서 기사를 수십 번 교정하다 보면, 다른 글을 쓸 때도 자연스럽게 문장을 검열하게 된다. 줄임말을 많이 쓰고(ex. 되어 → 돼) 피동형 표현을 습관적으로 거르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번역 투를 최대한 자제하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수명을 깎아 먹는 습관인 건 분명하다. 그만큼 문장을 공들여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이런 습관을 유지한 채로 볼륨이 큰 레포트를 쓰게 되면 생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참고 자료의 내용은 난해하고 어렵기 짝이 없는데(인문학 저서, 특히 번역서에서는 대개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문장들이 즐비하다) 시간은 촉박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안의 자기완결성 및 완벽주의적 성향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렇다. 피로도는 자연스럽게 증폭된다. 타협점을 찾아 최대한 덜 거슬리는 수준으로 문장을 고치고 내용을 정리해도, 성에 차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다. 문장을 쓴다는 것 자체에 얹어지는 부담감이 크다. 번아웃의 징조다.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쉽지 않다.

 

어쨌거나 이번 글은 그래서 논리적인 인과 관계, 문장의 간결함, 용어 사용의 전문성이나 적절성, 이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써 보고자 노력했다. 이미 실패한 것 같기도.

 

 

 

Q1. 요즘 꽂힌 디저트.


 

입맛이 변한 까닭에, 옛날에는 잘 먹던 핫초코를 손에서 내려놓고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로 삶을 채우게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학교에 진학한 직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조차도 내가 신기했다. 웬걸, 그렇게 못 끊을 것 같던 단 음료 중 하나를 끊게 되다니.

 

그랬던 내 손에 핫초코가 다시 쥐어지게 된 건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시험 기간의 스트레스와 신체 기관의 명민한 요구에 순응해 다시 따뜻한 초코를 타 먹게 됐다. 빈도가 잦진 않지만, 다시 핫초코가 내 삶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부쩍 스트레스가 늘어났다는 증거다. 감당해야 하는 레포트들의 무게가 상당한 탓이다. 덕분에 미루는 것들도 많아졌다. 쓰고자 하는 글들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고, 읽고 싶은 책도 읽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악화로 세계의 절망이 한층 깊어진 가운데, 음식이나 생활용품처럼 일상을 영위하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하러 바깥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외출다운 외출’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그런데도 가장 부담스럽고 끔찍했던 과목들이 하나둘 종강하기 시작했다.

 

종강할 때까지 살아 있겠지, 라는 말보다도 “살아 있으니 종강을 맞게 되더라”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느꼈다. 할 일이 쌓이는 와중에 스트레스가 가중되자 입만 뻐끔거리는 상태로,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아요, 라며 속으로 되뇌면서 그래도 무너지지 않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에 안고 지옥을 거닌다.

 

 

 

Q2. 최근 들어 특별히 공부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아이패드 드로잉. 모종의 이유로 아이패드가 생겼다. 패드를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처럼 갖가지 필름을 구비하고, 추천 앱들을 모조리 다운로드하고, 보조 장비들을 완벽하게 구비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우연히 획득한 아이패드로 리딩 자료를 읽고 웹서핑을 하는 등 나름대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사정을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온전한 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용 만족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더 좋은 버전으로 내 것을 구매해 알차게 쓰고픈 마음이 부쩍 생겼다. 아마 내년 상반기 중으로는 완전한 내 패드를 마련할 것 같은데, 그전에 수중에 있는 아이패드로 해볼 수 있는 재미난 것들로 무엇이 있을까...를 꾸준히 고민하던 와중에 생각난 게 드로잉이었다. 신문사에서 전 편집장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무사히 남은 학기를 종강한 후, 내년 초부터 드로잉에 도전할 예정이다. 새로운 취미를 계발할 겸 온라인 플랫폼으로 패드 드로잉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방학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다.

 

 

 

Q3. 앤디 워홀에 관한 생각


  

보름도 전에 기고한 앤디 워홀에 대한 칼럼은, 별생각 없이 썼다. 전공 수업 레포트 주제로 작성했던 글을 각색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세계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 또는 인물을 선택해 그것의 역사적 의의를 서술하는 것이 주제였는데, 내 주전공인 미학으로 대충 때울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일지 생각하다가 떠오른 인물이 앤디 워홀이었다. 그에 대한 지식 수준이 깊진 않았지만 그 수업에서 두 번째로 쓰는 열 장짜리 레포트에 들일 시간이 당시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선택권이 없었다. 앤디 워홀에 관한 레포트 ‘생산’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앤디 워홀로 열 장 써낸 사람이 할 말인가 싶긴 하겠지만, 워홀에 대한 흥미가 크진 않다. 오히려 워홀의 팝아트를 해석하는 로잘린 크라우스나 롤랑 바르트, 핼 포스터, 자크 라캉 등 비평가들의 미술 이론 및 미학이 더 흥미롭다. 사실 워홀보다도 워홀을 설명하는 그들의 이론이 재미있어서 레포트 주제로 잡았다. 특히 워홀의 작품이 냉전 당시 미국에 만들어졌던 ‘자본주의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로 표상된 가짜 실재 대신, 그것에 파묻힌 진짜 실재를 개인에게 파괴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는(공산품을 무한대로 복제하는 등) 핼 포스터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레포트를 쓸 때나, 칼럼을 쓸 때나 포스터의 설명을 자주 가져왔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워홀의 작품에 내재된, 혹은 워홀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서술하는 것에 방점을 둔 글은 나오지 않아서 교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말이다.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못 쓴 게 아니었다고 주장해 본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그래서 길을 지나가다 앤디 워홀의 작품으로 꾸며진 티셔츠나 생활용품을 마주칠 때도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 워홀의 팝아트군, 하고 그냥 눈길을 거두곤 한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비평가와 이론가들의 테제이니. 덧붙여서, 애초에 팝아트라는 작품 자체가 애초에 대중성을 의식한 워홀의 연구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보니, 그런 현상들이 딱히 탐탁지 않게 비치지 않는 것도 있다.

 

 

 

Q4. 생존의 번거로움에 관해


 

살아간다는 일을 상기시키는 것은 꽤 번거롭다. 나는 ‘리터럴리’ 인생을 구태여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라, 주기적으로 내가 생존해야만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상기시켜야 한다. 삶을 자발적으로 일찍이 중단하면 주변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처럼 윤리적인 이유에서부터 맛있는 디저트를 최대한 많이 먹어봐야 하고, 세계여행을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이유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런 탓에 삶에 부여하는 의미나, 삶을 인내하기 위해 설정하는 방향성의 범위도 넓은 편이다. 당장의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뚜렷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목표 세 가지를 뽑자면 ‘커리어 쌓기(지적 성취)’와 ‘세계 탐방’, ‘나만의 주거 공간 확보’ 정도가 있겠다. 지적으로 쉼 없는 삶을 살아 가능한 한 오래 생산적인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목적성과, 죽기 전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인지 두 눈에 다채롭게 담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결부된 결과다. 주거 공간의 경우, 나만의 장소를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희망 사항이다. (반드시 매매의 형태일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매매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첫 번째 목표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저런 목표들을 안고 살아가는 가운데 맛있는 것들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을 적당히 사서 순간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면 인생을 버틸 명목이 늘어나지 않을까. 내 관심사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보다 ‘왜 굳이 살아야 하는가’를 파헤치는 것에 있다. (진짜 위험한 생각이다.) 어떻게 생을 일찍 마감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늘. 올해를 분기점으로 더욱이나 삶에 대한 집착이 떨어진 까닭도 크다.

 

*

 

주변 사람을 더 챙겨야겠다는 도덕적인 의지도 생기고 있다. 거창하지 않은 인생에서 그나마 소중한 요인들을 꼽자면 지식, 충분한 자산, 사람 정도인 것 같아서. 엄마를 포함한 내 주변인들은 내가 퍽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제외한 주변에 무관심한 것마냥 행동하려고는 하지만 심성이 착한 탓에(?) 끝내 나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고들 평가한다. 도대체 무얼 보고 그런 판단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내게 그런 식으로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 바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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