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음에 대한 이야기 -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명화 속 죽음을 통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글 입력 2020.12.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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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왠지 무겁다.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제 같이 논 친구, 어제 먹은 음식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있어도, 어제 죽은 이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가 된다.

 

그것은 죽음이 되돌릴 수 없고 비가역적인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 우리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절대는 없다지만, 단언할 수 있고 변하지 않을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죽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거다.

 

누구나 오늘 혹은 내일, 언젠가는 죽지만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다. 우리는 죽음 후를 알 수도 없이 죽는다. 몇몇 종교나, 사후세계를 경험해봤다고 하는 이들은 그들만의 답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끼리도 전부 말이 다르다. 뭔가 불공평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이전에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 것, 둘 중 하나인데 우리는 죽음이 뭔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죽음 그 이후는 물론, 죽음 그 자체도 제대로 거론되고 있지 않다. 더러운 것을 피하듯 우리는 죽음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꼭 말해야 하거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고작이다. 죽음에 대한 말이 저승사자라도 불러오는 것처럼 ‘괜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하고 넘어가지만, 언제까지나 죽음에 대해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큼,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평생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다 죽음이 닥쳐온 순간에야 불안해하며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입에 올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


이 책은 죽음을 그린 화가들과 죽음을 그린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철학, 신학 등을 공부한 박인조는 삶을 위해 죽음을 바라본다. ‘죽음에 대한 태도에 따라 삶의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기에 ‘미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친숙해’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한 절박함, 진정성 그리고 이유가 정제되고 순수해지기’ 때문이다.

 

책은 총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죽음에 말 걸며 알아가는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1부로, 우리의 첫 여정은 죽음에 대해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2부는 죽음으로 인해 선명해지는 삶인 ‘죽음을 기억하라.’다. 삶의 유한함을 느끼는 것, 즉 죽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인 ‘죽음이 남기고 간 것들’인 3부를 통해 책이 마무리된다. 사람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가야 한다.

 

파트마다 작가가 엄선한 여덟 화가의 그림이 있고, 작가의 글이 있다. 각 화가마다 대표 격인 그림 하나가 있고,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그림이 몇 점 더 실려 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림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다.

 

작품에 따라 이 그림이 무슨 뜻인지, 어떤 죽음을 의미하는지,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화가의 삶과 죽음은 어떠했는지 등을 말한다. 화가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말하고, 작가는 작품을 우리에게 친숙하게 전달해주며,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 이 글을 통해 책에 나온 작품 두 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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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바이올린을 켜는 죽음과 함께하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Death playing the Fiddle), 1872년, 캔버스에 유화, 75x61cm,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한 줄 평을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라고 적었다. 작품 속 사람의 표정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까. 이 그림은 아놀드 뵈클린 본인을 그린 자화상으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해골이 붓과 팔레트를 든 화가의 뒤에서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그림이다.

 

작가는 대표적인 그림마다 죽음에 관한 격언을 적어 놨다. 여기서는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를 인용했다.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에 관한 책인데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까우니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시간에 대해,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모』에서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라는 말을 발췌했는데, 그림과 꼭 맞는 설명이다. 그림 속 남자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붓과 팔레트를 놓지 않고 있다. 해골은 남자를 두렵게 할 수 없다.

 

뵈클린은 낭만주의 시대 스위스 화가로 각종 질병으로 12명 중 여섯 명의 자녀와 부인을 잃었다. 출세작이 없어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마지막 20년은 난해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작가의 인생을 안다고 화가의 그림이 뜻하는 바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겠지만, 적어도 대략적인 짐작이나 가늠은 해볼 수 있다. 뵈클린은 적어도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고, 그의 그림에는 죽음에 대한 그의 고찰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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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신 위에서 화해하는 캐풀렛과 몬터규>(The Reconciliation of the Montagues and the Capulets over the Dead Bodies of Romeo and Juliet), 1850년경, 캔버스에 유화, 177.8x231.1cm, 개인소장

 

 

프레더릭 레이턴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만 그림에 있는 것은 아니고, 시신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 시신을 끌어안은 여성도 있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사람도 있으며, 악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캐풀렛과 몬터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목도하고서야 화해한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 작가는 말하고 있으며, ‘죽음이 남기고 간 것들’이라는 3부의 이름에 걸맞게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닌 화해하는 주변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들의 죽음은 단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두 가문의 끝없는 분쟁을 잠재운다. 작가의 말마따나 ‘너무나 늦은 화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죽음 이후의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나의 죽음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화가인 프레더릭 레이턴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여지가 있다. 1896년 화가로서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세습 남작 작위를 받았는데, 작위 공포 다음 날 협심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작위를 세습할 직계혈족이 없어 그의 작위는 하루 만에 소멸하었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이렇듯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

 

이 책은 전공 서적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보다는 그림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죽음에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을 도와준다. 그림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그림을 통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작가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화가와 작품에 대한 격조 높은 이해를 원하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사조가 어떻고 유파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에 그림을 접해보지 않았고, 예술에 대해 가볍게 알고 싶다면, 넓고 얕은 교양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맞는 책이다. 그림에 대해 몇 줄 정도 짧은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림을 혼자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게 작가의 설명과 맞아 떨어졌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테마를 잡고, ‘죽음’에 대해서만 모아놓고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화가들이 담아낸 순간 속 영원을 엿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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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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