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9. 12월의 불안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우리에게까지 온 건지
글 입력 2020.12.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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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9. 12월의 불안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부쩍 차가워졌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는 앙상하다. 벌써 12월이 온 것이다.

 

이상하게 찬 공기는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슬픔이나 불안의 냄새를 풍긴다. 애써 눌러오던 마음들은 그 냄새를 맡고 몸집을 키운다. 내가 추워서 웅크릴수록 불안과 슬픔은 활개를 친다. 나보다 커져버린 마음들을 붙잡을 만한 힘 같은 건 없다고-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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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봐도 살짝만 어긋나면 이런 상태로 자꾸만 돌아온다. 관성처럼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아니겠지. 올해는 잘 헤쳐 나가겠지. 굳게 믿었던 나는 또 한 번 배신당했다. 배신’당했다’면 배신을 한 것은 누구일까.

 

지겹고 지겹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것이, 이런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 나도 내가 너무 지겨운데, 남들은 내가 얼마나 지겨울까. 차라리 내게 누구나 동의할 만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남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해받지 못할 감정이라면 발설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래서 변명하자면 꽤나 긴 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자기 연민이 잔뜩 묻어나 올 것이 뻔했다. 자기연민적 글은 추하다고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글을 쓸 당시에는 몰랐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읽어보곤 부끄러웠던 기억이 많기 때문에 ‘추하다’는 다소 격한 단어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추한 나를 마주하는 건 언제나 두렵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어느 날 ‘글을 쓰는 것은 다짐 같은 것’이라는 말을 실컷 늘어놓고는 나는 그 다짐에서부터 조금씩 도망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는 삶과 쓰지 않는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체험한 이상 글쓰기를 방치해둘 수 없기에, 자기 연민이 절절히 묻어나더라도 일단은 적어 내려가 본다. 누구 하나쯤은 나의 글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길. 조금은 더 자란 언젠가의 내가 이 글을 쓰는 나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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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연말이 이렇게 두려웠나. 유종의 미를 거두는 행복한 연말의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으로 변했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달력 속 날짜는 나에게 이렇게 선고하는 듯했다.

 

“네 인생에서 더 이상 변하는 것은 없어. 이런 시간들이 영원히 반복될 거야. 봐. 올해도 똑같았지. 앞으로도 다를 것 없을 거야.”

 

이런 목소리들이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다. 외면하고 앞으로 걸어가 보려고 해도, 이런 마음들이 낙엽 마냥 자꾸 발 끝에 챈다.


그래서인지 어떤 미래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1년 후, 5년 후의 시간 속에서 사는 내 모습을 그려보면 두려워졌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리 두려울까. 나이에 상관없이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두려운 건 곧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20대 중반의 나이 때문일 것이다.

 

취업을 한다는 것이 의자 뺏기 게임처럼 느껴진다. 사람 수보다 적게 된 배치에 어떻게 해서든 엉덩이를 들이밀어서라도 앉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의자를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모두가 자신의 의자를 찾고 난 후에도 그 원 바깥을 맴돌게 될까. 의자에 앉는다고 해서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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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보며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여러 답들이 맴돌았지만 결국엔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탓이다. 못난 내가 너무도 많았다. 산다는 것이 나라는 시한폭탄들을 들고 언제 터질지 마음을 졸이며 걷는 것 같은 기분이라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돌파구는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 걸음만 나가면 되거든. 애써서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또 한 번 나에게 배신 당하여 이 자리로 돌아온다면, 차라리 나가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탓이다.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손아귀를 목덜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의 손을 내 목에서 떼어낸 내 손이, 그 해방의 몸짓과 동시에, 내 목에 밧줄을 걸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나를 교살한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中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새벽 홀로 불안에 떠는 것보다 책이라도 읽는 게 낫지 싶어 펼쳐보았던 책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나를 살리는 것도, 나를 죽이는 것도 모두 나다. 나를 이끌고 가는 이도, 나를 주저 앉히는 이도 모두 나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나를 수없이 많이 주저 앉혔다.


그래도, 어차피 살아야 할 것이라면 한 번만 더 손을 내밀어볼까. 베개와 천장 사이에 쌓아올렸던 수많은 나를 한 번 일으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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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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