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중력, 고정된 가치의 무의미함 [시각예술]

유장우 개인전《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
글 입력 2020.12.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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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처럼 당연시되는 익숙한 관념은 쉽게 도전받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행동 방식을 판단하는 기준들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들은 옳고 그름의 이분화된 기준 하에서 분류되어 버린다.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향해야 하는 것, 이를테면 근면함과 성실함, 집중력 등의 고정된 가치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편리하게 규정 지어 왔다. 그러나 언제나 당연시되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정답으로 인정해 버리는 태도는 무기력할 뿐이다.

 

그리고 유장우 작가는 개인전 《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에서 ‘집중’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뮌헨예술대학교 디플롬, 마이스터 슐러 과정을 마치고 사회와 개인 사이의 충돌, 긴장 등을 탐구하는 작업을 주로 해 왔다. 그리고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탈영역우정국에서 개최된 이 전시에서는 작가의 신작 <집중의 프로토콜>과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고>의 두 가지 영상 설치 작품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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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우, <집중의 프로토콜>, 2020, 설치 전경

 

 

전시 공간의 출입구에 드리워진 커튼을 젖히면 <집중의 프로토콜>의 첫 번째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세로형의 긴 스크린에 쉬지 않고 체조를 하는 남성이 영사되고 있는데, 인물의 동작과 함께 카메라 역시 정신없이 흔들려 어지러운 잔상을 남긴다. 팔 벌려 뛰기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는 그의 숨소리는 전시실의 전반적인 소음에 일조한다. 그리고 첫 번째 영상을 지나쳐 시계방향으로 돌면 정장 차림의 여성의 모습이 천장에 매달린 스크린에 영사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녀는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고, 손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다시 신는 등 산만한 행동을 이어간다.

 

그 옆의 스크린에도 역시 정장 차림의 남성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절된 동작들을 취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대답을 외치다가 긴장한 듯 손으로 무릎을 계속 붙들고, 다리를 떨거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전시실 중앙부의 가장 큰 화면 우측에는 교복 차림새의 여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마스카라를 바르거나 머리를 묶고, ‘북북’ 소리가 날 정도로 문제집에 밑줄을 긋는다. 문제집을 찢은 뒤 뭉쳐 던지기도 하고, 다리를 꼬았다가 풀고 과자를 먹으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등 산만하게 움직인다.

 

각 인물들은 순서대로 배우, 사무직원, 학생을 연기하고 있다. 그 까닭은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배우와 사무직원, 학생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직종이기에 부산스러운 이들의 동작이 효과적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자아에 완전히 몰두해야 하는 배우, 주어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직원, 학생으로서 요구되는 학습 태도를 갖춰야 하는 학생에게 집중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영상 속 인물들은 주의력 결핍 행동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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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우, <집중의 프로토콜>, 2020, 캔버스, 스크린천, 스피커, 진동스피커, 앰프, 빔프로젝션, 2400*1350mm, FGD video 08:00min, 출처-탈영역우정국

 

 

이렇듯 네 개의 스크린은 독립적으로 행위하는 각기 다른 인물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시실 중앙의 가장 커다란 화면에는 모든 퍼포머가 한 공간에서 연기하고 있는 장면이 영사된다. 네 명의 퍼포머들은 자신의 대사를 연습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연기에 방해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기는 앞서 지나쳐온 네 가지 영상 속 장면들과 중첩된다. 네 명의 퍼포머가 저마다 내고 있는 소리는 다른 영상의 소리와 뒤섞여 버리면서 관람자는 어떤 화면에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인지 혼돈을 겪게 된다.

 

그러한 혼란은 스크린의 디스플레이 방식과 전시장 내부의 진동, 소음으로 인해 배가된다. 전시실의 첫 번째 영상을 제외한 나머지 영상들은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 관람자는 빛과 소음의 공격에 둘러싸이게 된다. 또한 스크린 구실을 하는 각각의 캔버스 뒷면에는 진동 스피커와 앰프가 설치되어 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앰프로 증폭되어 나무틀에 덧씌워진 캔버스 천에 전달되면서 드륵거리는 소음과 진동을 생성하고, 이러한 환경은 영상 속 퍼포머들의 산만한 태도를 강조함과 동시에 관람객의 집중을 방해한다. 그러나 혼돈은 관람자의 몫에서 끝나지 않는다.

 

 

“퍼포머들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주의의 상황을 재연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또 다른 집중력을 요구받는다.”

 

- 《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 서문 中

 

 

위 문장처럼 네 명의 퍼포머는 부주의한 행동을 연기하는 데 주의를 쏟아야 한다.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다른 퍼포머들이 제각기 연기를 펼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주의와 부주의와 순환에 갇힌 퍼포머들은 전시실의 환경처럼 혼란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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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우,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고>, 2020, FHD video 02:30min


 

그리고 구석의 작은 공간에 설치된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고>는 위아래로 배치된 세 대의 작은 모니터로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각 모니터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바둑알의 흑백 영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이 군 생활에서 경험했던 사격 훈련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작가가 경험한 사격 예비 훈련 중 하나인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은 총구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고 특정 사격 자세를 반복하는 훈련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훈련은 그 본 목적과는 달리 바둑돌을 떨어뜨리면 기합을 받거나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참고자료 - 유장우 개인전《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 서문)

 

작품의 수는 둘뿐이지만 총 8개의 채널로 구성된 전시실의 환경은 관람자를 낯선 공간으로 끌어들이며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그러나 이로써 방해받는 집중력이 영상매체 미술을 감상할 때 요구되는 태도라는 점, 그 태도를 방해하는 주체 또한 영상매체 미술이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이 역설적인 관계는 무엇을 함의하는가?

 

이 관계는 영상매체 미술 본연의 정체성이 ‘시간성’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유형의 물리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다른 미술과는 달리 영상 작품 앞에서 우리는 그 러닝타임만큼의 일정 시간 동안 머물러야 한다. 일반적인 회화 작품을 10분 동안 지켜보는 것과 상반되게, 30분 길이의 영상 작품을 10분가량 감상하고 자리를 뜨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처럼 보인다. 이처럼 영상미술의 감상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영상의 내용을 뒤쫓아가는 인내와 집중력’으로 함축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예술 감상의 성격으로 적절한가? 작가는 관람자를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혼란의 상황에 세워두며 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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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탈영역우정국

 

 

그러나 집중력에 대한 논의는 영상작품 감상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집중력이라는 사회적 코드와 경제학적 상관관계를 가시화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집중력의 범위를 감상의 태도에서 일상 속 의미로 확장하며 집중력과 휴식의 관계에 주목해 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접하게 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휴식의 중요성은 집중력과 학습도 향상에 있어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왔고, 학습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신경 장애·뇌졸중 연구소(NINDS)는 사전에 짧은 휴식을 반복하는 것이 학습에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건강한 오른손잡이 피험자들에게 왼손 타이핑을 지시하고 이들의 뇌파를 관찰하는 실험 과정에서 타이핑할 때보다 중간 휴식 때 뇌파에 훨씬 더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참고자료 - 연합뉴스, 기억 강화, 짧고 잦은 휴식이 도움돼 – 미 국립보건원 연구진 학술저널에 보고서, 사이언스타임즈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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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탈영역우정국


 

이 연구결과가 강조하는 내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해 왔던 집중의 상태와는 거리가 있다. 장시간 몰두한 뒤 긴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짧은 휴식과 집중을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얼핏 부주의해 보이는,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는 행동은 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집중력은 지금껏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목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 사회적 기준을 충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갖춰야 할 능력으로 받아들여져 왔을 뿐이었다.

 

결국 전시의 제목 ‘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의 비어 있는 주어는 집중력처럼 우리의 행위를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가리키는 듯하다. '구분'과 '분간'의 사전적 의미가 각각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갈라 나눔”과 “사물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선하고 악함과 크고 작은 것 따위를 가리어 헤아리는 것”인 만큼, 이 전시는 우리의 행동 방식이 현상적인 차원에서 분류될 수는 있겠지만 그 옳고 그름은 명백히 분간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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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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