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백예린의 일기장 [음악]

글 입력 2020.12.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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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한 해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큼지막한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집 밖은 위험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문장이 현실화되어 밖에 나가는 일은 뚝 끊겼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 생기면 kf 94 마스크를 끼고 가방 속에는 손 세정제를 넣는게 당연해졌다.

 

크리스마스가 하루하루 가까워 오지만 연말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도 다름 아닌 집.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토록 차분한 연말이라니. 난 올해가 시작할 때만 해도 느낌이 되게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2020. 모양만큼이나 동글동글하게 소리나는 게 귀여웠고, 귀여운 어감은 내게 막연한 기대를 줬는데, 그 기분은 사라진지 오래다.

 

기대는 다소 희미해졌으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건 여전히 좋다. 그 분위기가 좋다는 뜻이다. 분위기를 이루는 요소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크리스마스 영화들,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경쾌함을 자아내는 캐롤 속 슬레이벨,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위에 얹힌 노란 전구들의 점등이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요소가 추가될 예정인데, 바로 12월 10일 정규 2집 앨범으로 컴백한 백예린의 신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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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정규 앨범을 갖고 돌아온 백예린의 새 앨범은 14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드라지는 특징은 이번 앨범이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띈다는 점.

 

1집인 'Every letter i sent you'는 부드럽게 전개되는 앨범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들처럼 조심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2집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을 가감없이 담아낸 일기장 같다. 가사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감정의 파고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이는 백예린이 올 한 해 겪었던 많은 일들에서 비롯된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백예린이 직접 언급하는 2020년은 그녀에게 변화가 많은 해였고, 그 중에는 안 좋은 사람과의 만남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다. 그렇게 사람과 일에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진 열네개의 곡들의 가제는 전부 '0123', '0126'과 같은 날짜였고, 이 곡들을 날짜 순으로 캘린더처럼 앨범에 배치한게 이번 앨범이다.

 

앨범 제목인 'tellusboutyourself'는 백예린이 떠올린 가상의 인스타그램 계정명이다. 자신 안의 수많은 자아에게 '네 자신에 대해 말해줘' 라고 부탁하는 셈.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백예린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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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고. 가족, 친구, 동료, 애인, 반려동물 등 상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달라진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가면이라는 뜻인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타인에게 보이는 외적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집에 도착해 혼자가 되면, 사회적 가면을 모두 벗어버리고 또 다른 내 모습이 된다. 인간이란 이렇게 복잡하다.

 

그래서 일기장을 보면 한 사람의 복잡한 생각이 생생히 담겨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느꼈던 감정들이 생생한 르포타주로 남는다. 또한 감정은 희노애락이라는 4가지 감정으로 간단히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내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겪은 사건을 가져오고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 책 속 이야기들을 인용하다보면 끝없이 구체적으로 서술하게 된다.

 

백예린의 2집 앨범을 일기장이라고 봤을 때 그녀의 일기 역시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사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글에 14개의 트랙을 전부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앨범이 재생되는 동안 나는 사랑에 깊이 빠져 있다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은 다정한 기분이 들다가, 나에게 무례한 누군가와 한바탕 싸우기도 하고, 잔뜩 상처받고 사랑을 끝내기도 하고, 이제는 내 사람이 아닌 누군가에게 희망이 있는 듯이 빛나면서 잘 지내라고 안부를 건네기도 했다.

 

그래서 난 백예린의 일기를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사랑과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아닌 사람이 되었다가, 또 내가 되었다가 하면서.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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