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콩 영화와 함께한 여름 [영화]

화려했던 홍콩을 추억하며
글 입력 2020.12.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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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극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예정되었던 신작 영화의 개봉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극장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기획전 형식의 재개봉작으로 부족한 영화 공급을 채우고 있다. 저화질일 수밖에 없던 영화를 리마스터링을 통해 고화질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옛 영화의 여운을 큰 스크린으로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극장으로 발을 옮겼다. 나 역시 한 영화에 눈길이 가 잠시 극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었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수년 전 대학 수업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다루던 중, 교수님께서 소장하시던 영화 DVD의 일부분을 참고자료로 보여주셨다.

 

광장에는 그 공간을 꽉 채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홍위병들이 예술가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장면이다. 곳곳에는 펄럭이는 깃발과 활활 타오르는 불이 있다. 강렬한 빨간색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홍위병들은 제각기 손에 마오쩌둥의 사진과 푯말을 들고 있다. 강인한 눈빛과 우월감에 차 있는 미소, 정부군으로 공인한다는 표식인 완장까지 팔에 차며 그들은 더욱 거리낄 것이 없다.

 

반면 알록달록한 분장을 하고 죄인처럼 끌려가는 예술가들은 한없이 무력하고 작아 보인다. 제아무리 전석 매진을 연이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이 공간에서는 그저 없애야 할 구시대의 잔해를 선보인 죄인일 뿐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력과 모욕, 야유를 피하고자 이들은 동료의 치부를 밝힌다.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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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5분짜리 영상을 봤을 뿐인데도, 긴장되는 분위기와 배우들의 표정은 뇌리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극장에 갔다. 역시는 역시였다. 180분이라는 긴 시간에도 졸기는커녕 한 장면에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몇십 년이나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배우의 탄탄하고 디테일한 연기, 경극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음악, 동작은 상영관을 나온 후에도 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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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홍콩 배우 장국영의 연기였다. TV나 영화에서의 패러디, 배우들의 언급을 통해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본 건 ‘패왕별희’가 처음이었다.

 

현실의 자신과 경극의 우희 사이에서 평생을 혼란스러워하던 ‘두지’ 역할을 섬세한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해냈다. 무엇보다 직접 중국까지 건너가 경극을 배울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결국, 촬영장에 대기하던 엑스트라도 쓰지 않을 정도로 경극의 동작 역시 훌륭하게 연기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장국영의 연기와 가치관, 태도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장국영의 작품목록을 찾아보고 있었다. 패왕별희는 중국영화라는데 사실 장국영은 홍콩 배우란다. 그렇게 수많은 홍콩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잠잘 시간도 줄여가며 밤새 영화를 봤다.

 

‘천녀유혼’, ‘영웅본색’, ‘아비정전’ 등 유명한 작품부터 ‘구성보희’, ‘금지옥엽’, ‘위니종정’ 등 가벼운 코미디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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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영화 기록

 

 

막 영화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였던 만큼 지금과 비교하면 부족한 모습도 보였다. 투박한 와이어 액션이나 허술한 CG, 개연성이 없거나 결말이 예상되는 흔한 스토리의 영화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이런 액션을 시작한 것이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훌륭하게 변한 걸 발견하거나, 지금은 전형적인 클리셰가 된 것들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신기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홍콩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고 한다. 출연할 작품은 많은데 배우의 수는 한정된 상황. 여기서 나온 배우가 저기서도 나오고. 어느새 양조위, 주윤발, 임청하, 장만옥 등 장국영 이외의 배우들에게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 ‘첨밀밀’, ‘열혈남아’, ‘일대종사’ 등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도 찾아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홍콩은 그야말로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서 있던 나라였다. 부모님께서 20대였던, 지금의 내 나이였을 1970-80년대는 극장에 홍콩 영화가 가득 올라왔을 때였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유행해 가사를 발음대로 적어 놓고 외워 부르기도 하고. 홍콩을 꿈의 여행지로 삼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국내 연예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중화권 배우들의 인기는 대단해서 책갈피에도, 잡지에도, TV 광고에도 그들의 얼굴이 실렸다. 지금도 판매되는 상품인 투유 초콜릿은 장국영이, 밀키스는 주윤발과 왕조현이 광고하는 등 그야말로 ‘홍콩 붐’의 시기였다.

 

영화를 접한 후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국의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홍콩 영화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극한직업’의 마지막 경례 장면,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입에 문 모습, 선글라스와 바바리코트,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California Dreaming,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효기간을 아쉬워하던 금성무, 나그네를 홀리던 처녀 귀신 왕조현, Maria Elena에 맞추어 메리야스 차림으로 맘보를 추던 장국영, 개그 프로에서도 BGM으로 자주 삽입되고는 하는 당년정과 분향미래일자 등.

 

예능에서 흘러나오는 당년정을 듣고 아는 체를 하니, 부모님께서 놀라며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영웅본색을 보았다고 하니, 부모님이 더 신이 나서는 주윤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밌게 본 홍콩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하셨다. 어느덧 우리의 이야기는 홍콩 영화가 주를 이루었고, 그 시기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장국영보다는 유덕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엄마가 왜 아빠랑 결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덕화만큼의 외모를 갖진 않았지만, 골격이 뚜렷하고 전체적인 느낌이 유덕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엄마가 좋아하던 영화 ‘천장지구’를 같이 보기도 했다. 아빠는 누아르 영화보다는 성룡, 홍금보가 나오는 무협 영화가 취향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무협은 마음이 가지 않아 같이 즐기진 못했다.

 

나는 이제야 접한 것이지만 부모님의 청춘과는 함께했다는 것, 엄마와 아빠도 영화를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워졌다. 홍콩 영화를 접하고 가장 좋았던 점이 청춘 시절의 부모님을 접할 수 있던 것이다. 이야기하는 내내 행복해 보이던 부모님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안타깝게도 홍콩 영화는 과도한 양산화로 인한 자가 복제, 중국으로의 반환, 일본 문화의 부상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큼 그 시기의 영화와 음악에서 느껴지는 힘은 대단하다. 비록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우리의 매체 속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이 접한 사람들에게서 홍콩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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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를 접한 6월부터, 나는 영화 속에 펼쳐진 화려한 야경과 반짝이는 간판을 보며 온몸이 끈적할 정도로 습한 여름을 지냈고, 죽음도 넘어선 의리와 사랑이 존재하는,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시공간에 살았다. 여름이 끝나고 차츰 내 일상도 예전처럼 돌아갔지만 그때의 강렬한 감동과 감정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음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영화 ‘아비정전’의 OST를 들으며 무더운 홍콩을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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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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