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둑맞은 노력 [사람]

글 입력 2020.12.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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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창작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거친다는 사건을 겪었다.

 

그 일은 여러 단계를 거쳐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처음에는 내 두 눈을 의심했고, 그다음에는 현실을 부정했으며 결국에는 분노로 가득 찼다가 마지막에는 허탈했다. 그날은 결국 하루를 통째로 넘겨버린 최악의 날이었다. 너무 화가 나면 눈물이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차라리 내 작품이 재미없다던가, 혹은 작품을 새로 엎어야 했다면 나의 부족함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나아지기 위해 얼른 눈물을 닦고 일에 열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분노하게 했던 건, 내가 원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창작물을 베꼈다.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이.

 

온전히 내 애정을 담은 작품을 누군가가 쉽게 가로챘다. 이를 인정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잠결에 타인의 작품 대신 내 작품을 착각하고 잘못 읽은 것이라 부정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읽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 창작물은 도둑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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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때로 배신한다. 제3자로 인해


 

노력을 담은 만큼, 그에 따른 고통은 비례한다. 나는 그 작품을 집필할 때의 즐거움, 열정, 설렘을 기억한다. 가장 자신 있는 소재로, 가장 자신 있는 매체로,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계획하면서 때로는 벅차오르기도 했다. 또한 내 작품을 읽고 인정해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과정을 누군가는 짧은 시간 안에 쉽게 가로챘다. 그게 너만 할 수 있는 생각인 줄 아냐고, 내게 묻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허무함은 생각보다 쉽게 다가왔다.

 

내 작품을 읽고 검토해주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얼마나 이 작품에 애정을 쏟았는지 아는 사람들. 그들은 함께 안타까워해 주며, 분명 내 작품을 ‘참고’한 상대는 내게 ‘동급’의 평가도 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작품 퀄리티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고민과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을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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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격렬하게 항의할 수 없을까.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한 교수님께 들은 말이 있다. “지금부터 네가 쓰는 모든 것들을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마감도 급해 죽겠는데 뭘 작품이야. 당장 내일까지 소설을 써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점점 창작에 애정을 담을수록 내가 말하는 것, 그리고 잠깐이라도 떠오른 것들을 허투루 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실제로 내가 별다른 고민 없이 썼던 글은 언제든지 타인이 내 글을 읽고 그 작품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창작에 애정을 느낄수록 모든 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은 쉽게 우리를 배반한다. 때때로 우리는 작품을 쉽게 빼앗아간다. 표절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유명 드라마 작가가 작가 지망생의 대본 설정을 그대로 가져가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표절이 분명함에도 원작보다 설정이 더 나아 보인다는 이유로 보호받는다.

 

그것이 표절임을 증명하기조차 쉽지 않다.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받는다.

 

 

‘그게 정녕 너만의 아이디어가 맞아?’

‘그 소재 자체는 흔하지 않아?’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

 

  

노력을 도둑맞고 뒤이어 오는 질문은 창작자를 다시 상처 입힌다. 심지어 글로 표절 인정을 받기란 시간, 비용, 그리고 감정적 소모가 막대하다. 불확실한 결과를 위한 싸움은 결국 피해자를 갉아먹는다. 완벽한 가스라이팅 엔딩에 다다르고 피해자는 더이상 작품을 창작하기 두렵다.

 

이번 상황으로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말이 있다. “사회에 나가면 빈번하게 겪을 일”이라고. 이를 경험 삼으면 된다고. 그러나 과연 그 말로 창작자들의 고통을 정리할 수 있는가? 이걸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훌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타인의 아이디어를 쉽게 빼앗는 건, 단순히 그 사람의 그 작품 하나만을 참고한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한 작가의 내면, 어쩌면 그의 삶 전체를 쉽게 가져간 것일지도. 이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란 어렵기에 이 절망을 추스리기란 쉽지 않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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