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작가'

글 입력 2020.12.06 15: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충격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선 극장. 하지만 나올 때는 한숨과 함께였다. 시작과 끝까지, 숨이 턱턱 막혔고 답답하면서도 후련했다. 연극 ‘문외한’인 나에게는 연극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연극이라는 문화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집 앞에 있는 영화관이나 손에 있는 OTT 서비스처럼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대학로, 홍대, 강남. 그리고 20년을 살았던 부산에는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극장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극을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극 중 관객과 배우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했다. 내 옆자리에 있는 관객이 ‘간택’되어 배우와 재미있는 농담과 대화를 나누고, 다른 관객은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에 웃는다. 나도 따라 웃겠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


‘배우님이 나에게 말을 걸면 어떡하지’


불안감이 나를 연극 극장으로 이끌지 않았다.


하지만 연극 <작가>가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바꾸었다. 연극에 대해 공부한 적도, 접해 본 적도 많이 없지만 나는 연극 <작가>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관객을 ‘갖고 놀았다!’
 


연극의 줄거리와 주제보다 극의 연출에 대해 말하고 싶다.

 

 

131.jpg

 

 

 

극의 시작 - ‘불청객’의 난입



오후 4시. 시작시간이다. 극장 내 불이 꺼지고 나는 극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런데, 관객석 1열에서 한 관객이 큰 소리를 낸다. 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발을 쿵쿵댔다.


‘연극 시작됐어요... 조용히 앉아주세요...’


내 간절한 마음이 그녀에게 닿기를. 곧 무대에 배우가 등장할 것이고, 관객은 무대에 시선을 둬야 한다. 반짝거리는 수십 개의 눈이 배우를 맞이할 것이며, 배우는 수십 개의 눈앞에 서서 연기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관객은 무대에 눈을 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 아래의 한 불청객에게 시선집중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불청객이 이제 말까지 한다.


‘스태프 님 이분 좀 말려주세요...’


하지만 내 오해였다. 그녀는 불청객도 관객도 아닌 배우였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배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배우가 무대 위에 있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걸까.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은 누가 한 걸까.


그렇게 연극은 내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부쉈다.

 

 


극의 중반 - ‘관객’과의 대화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던 여자 배우는 무대 위로 올라가 한 남자 배우와 언쟁을 벌였다. 그녀는 문학을 배우는 학생 그리고 남자는 연출가다. 그녀는 남자의 연출법에 대해 지적한다. ‘왜 여성의 노출과 섹스를 연극의 극적 소재로 사용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한 그들의 치열한 대화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긴 대화가 끝나고, 또 한번의 반전.


학생과 연출가 사이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본인을 이 연극의 작가와 연출가라고 소개했다. 지금부터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백발의 연출가가 관객석을 보며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그때 드는 생각.


‘막과 막 사이에 GV가 있는 구조구나’

‘그런데 GV를 이렇게 빨리 하나.’

‘아 어떤 질문을 해야 하지,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안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때, 내 오른쪽에 있던 한 남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속으로 박수를 쳤다. 검정색 비니와 마스크 그리고 동그란 안경을 쓴 그는 마이크까지 들고 질문했다. 그의 질문이 끝나면 무대 위의 배우와 작가, 연출가가 답변했다. 연출가와 작가는 다른 예술적 가치로 인해 싸우기도 했다. 그 이후로, 그 관객은 두 번의 질문을 더했다. 나는 ‘지목받지 않아 다행이야’ 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또 뒷골이 서늘해졌다.


‘이것도 연출이라면? 질문한 관객도 배우고, 작가와 연출가라고 말했던 그들도 배우라면?’


그 깨달음이 너무 늦게 나에게 찾아왔다. 극은 다음 막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두 번의 충격을 받고 연극에 더 몰입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깨는 연극이구나. 그렇다면 정신차려야지, 이제는 ‘낚이지’ 않아야지. 하지만 그 후로 연극의 메시지가 나를 또 때렸다.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느끼는 감정과 부패를 하나씩 짚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연극은 연출과 줄거리로, 한시도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게 나를 몰입시켰다. 집에 두고 온 마카롱이나, 내일 해야 할 일들, 연극이 끝나고 뭐먹지 등.

 

 

 

‘놀아난’ 관객=나



결국은 ‘놀아난’ 것이다. 그리고 연극은 나를 ‘갖고 놀았다’.


영상 콘텐츠 제작에 대해 잠깐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연출, 메시지, 재미. 세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연극 <작가>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켰다. 생각지 못한 연출로 재미를 줬고, 연출로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작가>는 항상 나를 깨어있게 했다. 연출로든, 담고 있는 메시지든, 여운이든. 배우님들이 연기력으로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이 끝나고 배우님들이 나와서 관객에게 인사했을 때, 한 배우님의 눈에 맺힌 눈물까지도 잊을 수 없다.

 

 

[신재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