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말 이 전시가 좋다고 생각하세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2.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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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전시회 가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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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The Secret Sharer, 2012



내 취미는 전시회 가기였다. 매달 재미있어 보이는 전시회를 정리해서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던 시기가 있었다. 휴학한 일 년 동안 유럽여행을 위해 알바를 했는데 남는 시간에는 전시회에 갔다. 그때는 정말 미술관에 눌러 붙어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예술을 사랑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낭만에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예쁘고 깔끔한 미술관과 분위기 있는 작품들, 그 사이의 나를 즐겼던 거일 수도 있고.


왜 전시를 좋아하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매료되어 있었다. 일상을 특별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짧은 순간. 그냥 스쳐가는 어떤 평범한 순간들이 찬란한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지 않은가.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항상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했다. 말보다 작품을 통해 생각의 흔적을 훔쳐보는 게 재미있었다. 정제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에는 있었다.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작품들도 분명 있었지만, 어떤 작품들은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그렇게 나와 같은 박동으로 뛰는 심장을 가진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와, 누군가의 순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공명하는 순간들. 그르누이가 향을 좇듯이 나는 그 순간을 좇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전시회에 가는 것이 무료해졌다.


 

어떤 전시를 보고 온 날은 정말 화가 나서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우다다 하고 싶은 말을 글에 쏟아냈다. 이 전시는 잘못됐다. 돈이 아깝다. 실제로 이렇게 쓰기에는 어쩐지 눈치가 보여서 말을 조금 수정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명했다.


정말 이 전시가 좋다고 생각하세요?


관람객이 붐빌 만큼 인기가 많았던 전시들이 몇 기억난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을 데려와서 큰 주목을 받았던 곳들이다. 어떤 전시는 백과사전 같았다. 전시장의 모든 벽과 작품 주위에 꼼꼼하게 텍스트가 채워져 있었다. 이 작가는, 이 작품은, 무엇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작품은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작품을 볼 틈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공간이 텍스트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텍스트를 열심히 읽다가 결국에는 지쳐 빠른 걸음으로 작품들을 휙휙 지나쳤다. 모든 작품이 의미 있어야 하기에 아무 작품도 의미를 갖지 못했다. 루브르의 엄청난 컬렉션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다가 무얼 봐야 하고 내가 무얼 보고 있는지 마침내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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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지쳤던 내가 천장에서 마주한 표정

 

 

나도 그렇게 휙휙 지나치던 사이에 한 글을 보았다. 남성 작가의 여성 편력. 불륜과 버려진 아내에 대해서. 그것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천재 예술가에게 바치는 찬양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영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이미 첫 문장부터 불쾌했던 나는 예술가의 영감을 위해서 모든 것이 허용이 되는가 생각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써놓을 정도라면, 그런 것 같았다.


부족한 학생을 계몽시키던 백과사전에서 벗어나면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은 작품들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사람들. 그곳은 작품들의 아파트 같았다. 정체가 되어서 동선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았다. 어떤 작품들은 시선보다 높게 위치해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보라고 걸어둔 걸까? 잠시 의심스러웠다.


마지막 관을 돌고 나오는데 옆에 있던 한 부부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는 유명한데, 볼 게 없네. 유화 몇 점에 판화뿐인 작품들을 보게 될지 몰랐다며 실망스럽다고 했다. 작가의 잘 알려진 작품을 기대하는 관람객과 원작 최초 공개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은 미술관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봤다. 미술관이 홍보한 멘트가 거창하긴 했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가격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에 대해 쓴 글에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댓글을 몇 개 달아주었다. 찬찬히 읽어보다가 무기력해졌다.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한동안 전시회에 가지 않았다.




사랑할 수 있으면 증오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돌고 돌아 전시회 가기라는 취미에 다시 돌아왔다. 어떤 전시들이 있었는지 찬찬히 살펴보다가 전시에 개를 데려와 같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는 한 미술관의 이야기를 듣고 먼지 속에 묵혀두고 있던 책이 생각났다. 단순히 '동물'과 '미술관'이라는 키워드에서 생각이 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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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레 체프터가 쓴 '동물원이 된 미술관'이다. 원글의 표현이 그런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잘 읽히는 문장이 아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에 따르면 미술관은 관람객을 가르치고, 관람객은 작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을 강요당한다. 이 작품이 비싼 작품이라더군, 하며 그저 구경꾼으로 자리한다. 그렇기에 니콜레 체프터는 우리가 미술을 '증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미술을 너무도 사랑해서 "대단히 성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공포는 미술을 신격화하고 찬양하기만 하는 현재의 미술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시스템을 고착화시키는 예술가, 큐레이터, 관리요원, 비평가, 심지어 관객까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늘날 전시회를 방문한다고 해서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미술은 도구화되었다. (...) 미술은 클리셰가 되었다.
 
 
우리는 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미술에 감탄할까? 자비롭고 관대하기 때문이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상 전시된 작품이 분명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작품이 특별한다고 믿는 것일까?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술관을 믿는다. (...) 전시회장은 신성한 미술 공간이다. (...) 그렇게 미술이라는 신화는 지위, 천재 숭배, 과도한 찬양으로 계속 새롭게 표현된다.
 
 
우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작품을 응시하고 정신을 집중한 채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림 컬렉션에 전시된 수많은 그림 사이를 분주히 뛰어다닌다. 그러는 동안 제대로 들여다보는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는 무리를 이루는 군중이 되었고 자신의 개성을 잃는다. 더는 자신만의 견해를 펼치지 못한다. (...) 우리는 미술을 하나의 이상으로 소비하고 더는 미술을 스스로 체험하지 않는다. (...) 그러니 즉시 보상받아라. 찬미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극단적인 게 아닌가 싶은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모든 문장을 밑줄 치면서 읽고 싶었다. '증오'라는 표현이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랑할 수 있으면 증오할 수도 있어야 한다.


최근에 본 전시 후기에 만족하지 못했던 점을 적어 내려 가다가 이내 지워버린 일이 떠올랐다. 좋았던 기억으로만 글을 덧칠했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할 수 있으면 증오할 수도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참석했던 한 행사에서 미래의 미술관에 대한 대담이 진행되었다. 과거의 미술관은 아이디어와 즐거움을 공유하는 열린 공간이었다고 한다. 야유회를 하고 동물도 오는 그런 곳. 작품을 위한 미술관이 아니라 관객들의 대화를 위해 작품을 놓는 미술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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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레 체프터의 책이 나온지도 4년이 흘렀다. 이미 한 미술관엔 동물이 들어섰다. (전시를 위해 미술관에 들어왔던 동물과는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어떤 미술관에서는 예술가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한다. 도슨트와 관객이 열렬히 이야기를 나누는 곳도 있다. 전시를 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도 다양한 곳으로 넓어지는 중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전시 소개 영상 밑에는 전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달린다. 좋았다는 의견도 있고 별로라는 의견도 있다.


처음 미래의 미술관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낯설어했던 상황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좋은 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할 수 있는 미래의 미술관에 점점 가까워진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한동안 미술관의 문은 열리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가고 싶었던 전시가 많아 아쉽지만 안전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길 고대해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회에 다녀왔을 때, 누군가 이 전시가 좋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말이든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 물어봐도 될까요? 최근에 본 전시는 좋으셨나요?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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