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연처럼 소박한 나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 리틀 포레스트 [영화]

글 입력 2020.12.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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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킨포크’(kinfolk). 자연 속에서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강조하는 생활방식이자 현상을 이르는 ‘킨포크’는 지난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이후 최근 국내에서도 ‘가치지향적’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점차 복잡해지고 부풀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킨포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이번 글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문명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자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1854)을 통해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속 인물들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신만의 ‘작은 숲’을 꾸려가는 과정을 보고자 한다.

 

 


‘자연', '자연 속의 인간’, 그리고 ‘참다운 삶’


 

1845년 7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독립기념일을 맞아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호숫가로 ‘돌아간’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그가 문명을 포기하면서까지 호숫가로 돌아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연 속에서 지내며 문학과 학식을 중요시하고 노예폐지론자들에게 집을 빌려줄 만큼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소로는 형제자매와도 잘 어울리면서도 자연, 특히 ‘월든’(walden) 호숫가에서 혼자 사색하는 일을 즐겨 했다고 전해진다. 1833년 하버드에 입학한 이후 문학적 소양을 기르게 되며 문학계에서 촉망받던 그였지만 여전히 자연 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방황하던 소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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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이후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교사 생활 또한 견딜 수 없었던 소로는 1837년 여동생 소피아의 소개를 통해 만난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을 따라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초월주의’는 물질적인 현실 세계의 뒤편에 의식적인 초월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음으로써 현실 세계의 무한성을 긍정하는 사상으로 대중보다 개인을, 이성보다 감성을, 인간보다 자연을 중시했던 소로의 생각과 맞닿아있었다. 결국, 그는 모험가적 기질을 발휘해 1845년 3월 말부터 콩코드의 월든 호수 근처에 직접 집을 짓기 시작하였고 독립기념일에 맞춰 자유를 찾아 ‘독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듯 자연으로 돌아간다.

 

1854년, 소로는 월든에서 보낸 약 2년 2개월의 시간을 담아 <월든>을 출간하게 된다. <월든>은 소로 본인이 느꼈던 자연의 모습에 대한 묘사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활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 책이었다. 때로는 소설적이고 때로는 에세이적으로, 때로는 시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으로 구성된 <월든>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소로는 이 책을 통해 초월주의, 자연주의, 목가주의적 관점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19세기 중반의 물질적 풍요 뒤편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을 경고함과 동시에 ‘나다운 삶’, ‘참다운 삶’에 대해 끊임없이 통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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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결핵으로 인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월든> 출간 이후 소로는 초월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적인 노예제를 고발하고 노예제를 지원하는 정부에 대항해 납세를 거부하는 등 세상을 향해, 자신을 위해 ‘실천적’으로 투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참다운 삶’에 대한 소로의 생각에서 시작된 <월든>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나만의’, ‘내 안의’ 작은 숲을 찾아가는 영화



소로의 <월든>과 함께 살펴볼 영화인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에서 연재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주인공 혜원이 고향 미성리로 돌아오게 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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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배경은 겨울.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자친구 훈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혼자 합격하지 못한 혜원은 도망치듯 미성리로 돌아온다. 자신이 부끄러웠던 혜원은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길 바랐지만 떠난 엄마를 대신해 묵묵히 자신을 챙겨주던 고모 복순, 어렸을 때부터 미성리에 머물며 단짝처럼 지냈던 동창 은숙, 그리고 타지에서의 생활을 접고 귀농한 동창 재하를 만나게 된다. 혜원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동안의 도시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을 점차 느끼게 되고 자신만의 답을 찾기 전까지 미성리에 머물기로 한다.

 

두 번째 배경은 봄. 혜원은 도시와는 사뭇 다른 생활에 때때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은숙과 재하의 도움을 받아 적응하게 된다. 직접 농사를 짓고 엄마의 요리법을 따라 음식을 만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혜원은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과 다르게 자연과 가까이 지내왔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가운데 음식으로 자연을 가르쳐주고자 했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두고 홀로 떠난 엄마에게 서운함이 남았던 혜원은 자꾸 떠오르는 엄마의 기억을 밀어내고자 한다.

 

한편, 잊고 지내고자 했지만 내심 궁금했었던 엄마에게서 편지를 받게 된 혜원은 단순히 조리법에 대한 편지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고 이에 재하는 혜원에게 본인만의 레시피를 담아 답장을 보내는 것을 권한다. 그동안 엄마의 요리법을 따라만 했었던 혜원은 못 이기는 척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 배경은 여름. 은숙과의 말다툼 이후 재하를 찾아간 혜원은 어렸을 적 따돌림을 당했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역시 그 가운데 어려움 앞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맞설 것을 이야기하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이전과 달리 엄마와의 기억을 가진 채 혜원은 자신만의 방식인 음식을 통해 은숙에게 화해를 구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이 곧 음식을 타인에 대한 정성이라고 이야기했던 엄마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몸소 느끼게 된다.

 

혜원은 뒤늦게나마 엄마에 대한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으며 이해하려고 하는 한편. 자신처럼 도시에서 힘든 생활을 했던 재화와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도시에서의 날들을 털어내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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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배경은 가을. 어느새 자신만의 방법인 음식으로서 혜원은 재하를 좋아하는 고민을 가진 은숙과 도시에서의 생활로 인한 고민을 가진 재하를 위로해 줄 만큼 여유가 생긴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녀에게도 서울로 돌아갈지, 미성리에 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재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라는 의도와 엇나간 실언을 하게 되고 때마침 들이닥친 가을장마로 인해 그동안 노력을 기울였던 작물들을 잃게 된 혜원은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가을장마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면서 재하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혜원에게 장마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버텼던 사과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그녀가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준다. 이에 마음을 다잡게 된 혜원은 미성리에 도착했던 첫날 발견했지만 그동안 외면했었던 엄마의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어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겨울. 엄마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서울로 돌아온 혜원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식과 관련된 일에 차근차근 도전하고 있다. 그 이후로 혜원은 자연이 그리워질 때마다 미성리를 찾게 되고 아무도 없었던 혜원의 집에는 어느새 ‘그녀’의 신발이 보인다.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 혜원과 관련된 다양한 배경적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미성리의 생활을 통해 점차 자기 자신을 되찾아가는 혜원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영화는 혜원이 자신만의 삶을 만들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자 뒤늦게나마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혜원이 자신만의 꿈을 만들어가는 방법인 ‘식’(食)을 통해 혜원을 둘러싼 ‘공간적’ 차원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혜원은 그동안 이미 완성된 음식으로 가득했던 도시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한 작물들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됨으로써 자연과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점차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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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는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던 혜원과 다르게 시골 생활에 대한 불편함이나 재하에 대한 호감을 비롯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은숙과 도시에서의 생활에 지쳐 고향에 돌아온 자신의 모습을 닮은 혜원을 담담하게 위로하는 재하를 통해 혜원을 둘러싼 ‘심리적(관계적)’ 차원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혜원은 그동안 형식적이고 서로 간에 무심했던 관계 속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평범하게 서로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진심의 관계로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성격과 자신감 또한 되찾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삭막했던 도시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혜원의 ‘시련’을 의미하는 겨울부터 자기 자신을 점차 깨달아가는 혜원의 ‘기다림’을 의미하는 봄,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엄마와의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혜원의 ‘고민’을 의미하는 여름, 그리고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된 혜원의 ‘수확’을 의미하는 가을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뤄지는 ‘시간적’ 차원의 변화를 통해 어느새 자신이 기르던 작물들처럼 ‘성장’해버린 혜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연에게서 ‘배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마침내 혜원이 자신만의 시간을 이겨내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피울 수 있는 즉, ‘다섯 번째 계절’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재하가 스스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양파를 ‘아주 심기’하면서 혜원을 떠올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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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기 때문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마치 차갑게 식어버린, 어쩌면 언제 상했을지도 모르는 편의점 도시락처럼 생기도 의미도 없던 모습에서 벗어나 뒤늦게나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추구하게 된 혜원의 모습을 통해 더욱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영화는 그렇게 작은 속삭임을 듣고자 하는 우리에게 순간순간 다른 장르로 스며든다. 때로는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은은하게 흘러가는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혜원이 자신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도시 생활에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에세이처럼, 한편으로는 과거의 혜원과 재하처럼 여전히 회색빛 도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타인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기도처럼.

 

사소해 보였지만 특별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과 함께 융화된 삶을 살면서 세상을 향해, 인간을 향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고민하고 소리치던 소로의 삶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남긴 말처럼 당신만의 ‘작은 숲’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순한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거듭거듭 안으로 살펴봐야 한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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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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