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이 들려주는 여성의 이야기 - 뮤지컬 웨이트리스 Waitress [공연예술]

나의 브로드웨이 관극 연대기 02
글 입력 2020.12.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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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퀘어에는 빨간색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TKTS라는 이 건물은, 그날 공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남은 좌석들을 많게는 50%까지 할인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곳이다. 뮤지컬 ‘웨이트리스’는 그렇게 만나게 됐다. 뉴욕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뮤지컬이 너무 보고 싶던 어느 날에 TKTS를 떠올린 내가, 무작정 TKTS를 방문해 샀던 표가 ‘웨이트리스’의 표였던 것이다.

 

‘웨이트리스’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라고는 정말 웨이트리스처럼 차려 입은 사람들이 타임스퀘어 언저리에서 나눠주었던, 파이를 두 손에 들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담긴 팜플렛에 담긴 아주 짧은 시놉시스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궁금증이 생기던 작품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웨이트리스’라는 작품에 이미 끌리고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표를 사고 몇 시간 후 들어선 극장에는 달콤한 버터 냄새가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작은 파이 조각을 한 개씩 팔고 있었다. 궁금해서 한 조각을 샀는데,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달았다!) 무대의 프로시니엄은 각종 파이들이 들어차 있는 파이 디스플레이로 꾸며져 있었고, 무대 장막 역시 파이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었다.

 

이 뮤지컬에서 ‘파이’는 대체 무엇일까. 내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뮤지컬과 파이의 관련성이라고는 ‘스위니 토드’에서 등장하는 다소 괴랄한 파이뿐이었기에, 조금씩 증폭되는 호기심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브로드웨이 극장치고는 아담한 크기의 극장이었던지라 생각보다 시야가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대의 막이 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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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는 작은 파이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여성이다. 유일한 가족인 남편 칼은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원치 않는 사랑을 강요한다. 제나의 유일한 낙은 맛있는 파이를 만드는 것 하나뿐이고, 남편을 떠나버리고 싶어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제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원치 않는 임신과 불행한 결혼생활 가운데 시들어가던 제나에게, 그때 포마터라는 산부인과 의사가 나타난다. 서로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참지 못한 두 사람은, 단순히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이를 넘어 자신의 가장 깊은 이야기까지 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이관계에서 제나는 힘을 얻어 전국 파이 경연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상금으로 남편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파이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나가 남편 몰래 돈을 조금씩 숨겨 모아오고 있었던 것을 남편에게 들키고, 설상가상으로 출산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오히려 제나에게 이전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용기가 되어준다. 아이를 끌어안고 제나는 당당하게 남편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외치고, 포마터와의 관계도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던 파이 가게를 사장에게 물려받아, 친구들과 자신의 아이와 함께 파이를 만들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공연의 마지막 넘버가 끝나고 관객이 열렬한 박수를 보낼 때, 함께 열심히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재밌다!’ 그럼 뮤지컬을 재미있으려고 보러 가는 거지 왜 가는 것이냐 싶을 수 있지만, 당시 나는 자막이 없는 영어로 된 매체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웨이트리스’를 보면서도 알아들은 대사보다 알아듣지 못한 대사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도 않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뮤지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로맨틱하고 희망찬 넘버들, 그리고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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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이 뮤지컬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이 들려주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제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로 고통받지만, 또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가 되어 새로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제나라는 여성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이 뮤지컬의 클라이맥스이자 제나의 솔로 넘버 ‘She used to be mine’이 특히 사랑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충분히 예쁘지 못해 사랑받지 못했고, 외롭고 힘들었으며 뒤죽박죽이었던 젊은 시절, 그렇지만 다 지나오고 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던 시절,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든 여성에게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이 끝나고 찾아보니 ‘웨이트리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최초로 전부 여성으로 이루어진 창작진이 제작한 뮤지컬이었다. 남다른 설득력과 몰입감을 선사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웨이트리스’는 2020년 1월을 마지막으로 브로드웨이 공연의 막을 내렸다. 그 전까지 나는 ‘웨이트리스’의 공연장을 3번 찾았다. 어떤 날은 ‘She used to be mine’의 절절한 감정이 와닿았고, 어떤 날은 아이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 샘솟는 제나의 힘을 보면서 감동받기도 했다. 같은 공연이었지만 매번새로운 감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따스한 극이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웨이트리스’를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꼭 있었으면 좋겠다.

 

 

[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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