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두 할머니와 삼총사 - 식구를 찾아서

좋은 시절의 구간은 현재
글 입력 2020.12.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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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은 시절 다 갔네. 하지만, 넌 예뻐.”

 

 

그동안 나는 인생에 흔히 말하는 ‘좋은 시절’이라는 구간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를 관람한 후, 놓친 좋은 시절은 언제든 다시금 찾아올 수 있는 선선하고도 따뜻한 산들바람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 할매 박복녀와 도시 할매 지화자


  

선선한 가을날 스카프부터 재킷, 그리고 양말까지 분홍색으로 깔 맞춤시켜 옷을 입은 ‘지화자’라는 할머니가 ‘박복녀’ 할머니네 집에 찾아간다. 지화자가 지내던 노인병원에 아들이 보낸 집 주소가 바로 박복녀 할머니가 거주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이곳을 집 주소를 적어준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편지와 인감도장까지 받았다고 우기며 두 할머니는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이에 지화자 할머니는 절대 물러가지 않고“이 집은 내 아들 집이니, 내가 주인이다.”라고 쐐기를 강하게 박자, 박복녀 할머니와 극심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갈등도 잠시, 이 집에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잔잔한 평화가 찾아왔다. 지화자 할머니는 박복녀 할머니의 스타일을 단숨에 파악하고 구슬릴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천천히 말 고문을 트면서 박복녀의 손재주를 칭찬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박복녀 할머니도 오랜만에 닿은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가 나쁘지는 않는 모양인지 감 말랭이와 따스한 보리 차를 대접하며 “같이 잡숴~”라는 표현을 하며 마음의 문을 연다.

 

박복녀와 지화자는 결이 상당히 달라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누구보다 정이 많고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박복녀는 홀로 반려동물 몽, 냥, 꼬와 함께 밥과 정을 나누면서 살고 있었다. 지화자는 아들이 있었지만 혈육으로 묶여있지 않았던 탓인지 멀리 사라져 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지화자는 아들을 찾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게 된다. 그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박복녀에게도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권유하지만, 단숨에 거절한다. 그러나 1인 다역으로 ‘사진사’로도 나오는 ‘꼬’가 옆에서 함께 부추기며 예쁜 사진을 남겨놔야 한다며 지화자의 말에 강력하게 동참한다. 그렇게 이끌려 독사진을 찍게 되는 박복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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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 전, 박복녀 할머니에게

분칠 해주는 지화자 할머니

 

 

“아이구~ 이게 누구입니까~ 예쁜 예쁜 누님~ 입가에 미소 살~짝

쓰리 앤 딱 포~ 쓰리 앤 딱 포~"

 

 

박복녀 할머니가 사진 찍는 모습을 옆에서 본 지화자 할머니는 “참 곱다~”라며 같이 찍어 달라고 사진사에게 부탁한다. 그렇게 두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팔짱을 끼며 편안하고 인자한 표정을 짓는다.

 

 

“예쁜 누님들~ 조금 더 다정하게 ~”
 

 

    

삼총사 몽, 냥, 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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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붕 아래, 박복녀 할머니의 옆에는 든든한 삼총사 몽, 냥, 꼬가 살고 있다. 길 잃은 몽, 버림받은 냥, 알 못 낳는 꼬는 할머니와 함께 유쾌하고 찰떡같이 합을 뭉치며 옹기종기 생활하고 있다.

 

극을 보기 전에는, ‘동물들이 식구가 되는 과정을 어떻게 연출해서 보여줄까?’에 대한 궁금증이 엄청 컸다. 그리고 괜히 이 뮤지컬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동물들의 특징을 살려서 극을 보여준다는 것이 어쩌면 평범하고 누구나 예상한 대로 진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비롯한 모든 관객들이 이 삼총사들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박장대소를 하고, 마스크 안에서 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 특히, 꼬는 힘겹게 낳은 하나의 알을 도시 할매 지화자가 허락 없이 먹을 때, 충격을 받은 모습 그대로 독백으로 노래 부른 장면은 며칠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다. 정말 닭으로 빙의해서 닭이 가지고 있는 속 사정, 아픔, 현실을 웃프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이 극에 시선이 멈출 수 없게끔 역할을 잘 소화했다.

 

또한 ‘냥’과 ‘몽’의 손짓, 발짓 또한 예술이었다.

 

관찰 예능에서 연예인들이 연기 수업을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중, 동물 묘사를 하는 연습 과정을 신선하지만 충격적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솔직하게 ‘굳이 동물 연기까지 해야 하나?,’ ‘과연 저 연습이 배우의 인생에 큰 공부가 되는 걸까?’라고 의심했던 적이 있다.

 

그 의심을 한 나는, 이 뮤지컬을 통해 아직도 한 분야에 대한 시야가 좁다는 것을 ‘냥’과 ‘몽’이 콕 집어줬다. 이 두 반려동물은 큰 대사 없이도 손끝, 발끝의 묘사를 통해 내면의 표현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포인트들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첫째 줄에서 가까이 보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게 되었다.

 

또한, 두 할머니들 사이에서 위로와 행복을 주는 삼총사들의 열연은 극이 마칠 때까지 눈길이 갔고, 보내주기 싫어서 극 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지점은 매 순간, 매 장면이었다.

 

食口(식구)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꼭 혈윤이 섞여야 한다는 부가적인 첨가는 필요 없다. 서로를 위해 감싸주고, 쳐다봐주고,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이 전부다. 더 첨부할 감정도, 뺄 감정도 없이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짙은 따뜻함과 정성은 여러 사람을 한 대 모아 진정한 ‘식구’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 뮤지컬을 통해 소박하지만 든든한 밥 한 숟가락 드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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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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