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여름이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여름은 최악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여름이 오면 왠지 모르게 들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여름만큼 모든 것이 절정이고 짙게 우거져 있는 계절이 또 있을까. 오히려 그동안 좋아했던 겨울은 조용하고 적막한 쪽에 더 가까웠다. 초저녁까지 밝은 낮을 유지하는 여름은 활기를 주고 아직 한 해가 반이나 남았다는, 그래서 무엇이든 더 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준다.
생각해보면 지나간 여름엔 항상 즐겁고 행복했던, 꿈같은 기억들이 가득한데, 이제라도 다가오는 여름에 설렐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튼, 여름’은 여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김신회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여름에 대해 쓴 에세이이다. 수영, 휴가, 낮술, 전 애인처럼 여름 하면 생각나는 자신만의 키워드 별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다.
풍부한 글쓰기 경력을 가진 저자답게 글 자체가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말 그대로 정말 ‘재미’있다. 에세이란 이런 맛에 읽는 건가 싶을 정도로. 또한 여행이나 술 등 취향도 나와 많이 겹쳐 묘한 친근감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여름이 주는 행복감을 표현하는 문장들이 굉장히 아름다웠고 와닿았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중략)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그 어디서든 여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116쪽, 여름을 완성하는 것 - 치앙마이 中
특히 공감했던 구절 중 하나인데, 이처럼 중요한 것은 계절 자체보다 그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 상태인 것 같다. 마음이 지치고 여유 없는 상태라면, 아무리 좋아하는 여름이라도 마음껏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가끔 에세이를 읽다 보면 마치 작가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듯,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 공감이 잘 안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책에서는, 단순히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치부하기엔 공감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고, 한 번쯤 같은 기분을 느껴봤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멋들어지는 문장들로 표현되었을 때, 더 이상 남일이 아닌 내 일처럼 읽을 수 있었다.

평소 성격이 무심한 편이고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나와 달리, 작가는 사소한 것도 굉장히 섬세하고 풍부하게 표현해낸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것을 먹으려고 여름을 기다릴 정도로 초당옥수수와 샤인 머스캣을 좋아한다. 나 역시 이 둘을 먹어본 적 있었지만, 같은 걸 먹어도 나는 ‘음 맛있군’ 하고 끝나는 반면, 작가는 먹었을 때의 식감과 기분을 정말 생생하게 묘사해서 글을 읽는 나도 같이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래는 초당옥수수를 한 입 먹었을 때의 묘사이다.
상큼한 과즙에 버금가는 채즙이 입안을 적시고, 혀 위를 구르는 알갱이를 살짝 깨물면 시원하게 톡 터진다.
29쪽, 알중 아니고 옥중 - 초당옥수수 中
모두 여름을 좋아하세요

책을 소장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 두 가지로 충분했다. 첫 번째는 표지였다. 삐뚤빼뚤하지만 깔끔한 그림과 글씨. 표지가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어 읽고 싶어졌다. 두 번째는 바로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라는 김신회 작가의 한 마디.
주변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여름’을 대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위 말해 ‘여름파’가 드물다는 사실은 항상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본다면 충분히 재고해볼 만한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마냥 덥기만 한 여름을 이런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 하며 미처 몰랐던 여름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을 읽고 여름에 더욱 진심인 사람이 되었으며, 내년 여름은 어떻게 준비해볼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