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로나와 삶의 기술

글 입력 2020.12.0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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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계획이 참 많았다. 해외여행을 떠나려 했고, 미뤄왔던 국내 기차 여행도 올해는 가려 했다. 할머니가 계신 본가에 더 자주 가고 싶었고, 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공부할 계획도 있었다. 그래. 코로나가 뭔지 아무도 몰랐을 때는. 이제는 그런 야심 찬 계획을 세웠던 게 까마득한 옛날 같다. 마스크를 벗은 사람 얼굴을 볼 때면 왠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뉴스에서는 시끌벅적한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내 한 해는 순식간에 12월이 된 것처럼 어리둥절하다. 아직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일 년이 간 거지?

 

6월 무렵 나는 연초의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저 코로나에나 걸리지 않고 올해를 넘기기. 그때는 연말이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는 이제 ‘사실 내가 진작에 코로나에 걸렸는데 아무 증상도 없고 아무 흔적도 없이 지나간 거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은 확진자가 나왔는데 내가 그중에 하나가 아니라니. 몸을 잘 사리긴 했지만 나 역시 널뛰기하는 확진자 증감 추세의 한가운데에서 점점 현실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결국 올해를 한겨울 수도꼭지처럼 보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한파에 얼지 않을 정도로만 졸졸 물을 틀어놓는 수도꼭지. 나는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최소한의 물만 흘려보내듯 한 해 내내 활동을 대폭 줄였다.

 

그렇다고 겨울잠에 든 다람쥐처럼 웅크리고만 보낸 건 아니다. 집안일을 했다. 요리에 취미를 붙였고, 저녁에는 집 앞의 강변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지나서야 집 앞의 강에 오리와 잉어가 산다는 걸 발견했다.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고 매번 불평하긴 했지만, 자취하는 입장에선 집 안에서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밀린 옷장 정리를 하고, 인테리어를 바꿔 보고,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쌓아두기만 한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면 하루가 다 간다.

 

찬장과 서랍 곳곳에선 일회용 핫소스, 머스타드, 일회용 물티슈 같은 게 심심찮게 발견됐다. 그런게 나올 때면 대충 피자만 시켜 먹고 남은 건 아무 데나 던져놓고 새까맣게 잊었을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밖을 돌아다니느라 피로한 채로 늦게 돌아와 옷도 던져놓고 가방도 던져놓고 세수만 간신히 하고 침대에 누웠을 나. 점점 지저분해지는 방.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래 있는 곳이 바로 이 7평짜리 방이라고 생각하면 지저분한 상태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찝찝하다.

 

올해 내내 나는 그런 과거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온갖 얼룩과 먼지를 박박 문질러 닦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부 내가 생활하며 만들어낸 부산물이니 탓할 사람도 없다. 덕분에 잃어버린 애플 펜슬 충전기도 찾았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양말 두 짝도 찾았으니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코로나도 이래서 생겨난 걸까?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누린 물질적 풍요의 결과라는 뉴스를 보았다. 생태계 파괴나 쓰레기 문제, 쌓아 놓기만 하고 치우지 않은 잔여물들이 이런 식으로 인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 말에 깜짝 놀라거나, 인간으로서의 막중한 자책감을 느끼기 이전에, 나는 내가 올해 보내고 있는 생활을 떠올렸다. 먼지가 시커멓게 얹은 창틀이나 유통기한 지난 음식물로 꽉 찬 냉동실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는. 윽. 이게 왜 아직도 여기 있지? 난 이런 것도 안 치우고 그동안 뭘 한 걸까? 그리고 뒤늦게야 그것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예전처럼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면 안 했을 거다. 밖에 나가 뭔가를 한다는 건 집에 있는 일보다 항상 더 좋아 보인다. 더 새롭고,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이 바깥에 가득하고 그걸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잘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스펙이라고 보는 요즘 사회 아닌가. 집에만 있는 사람은 의지도 열정도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격증이라도 따 놓지 않은 한. 하지만 내가 올해 집안일에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보니, 내가 사는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의지와 노고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씻고, 빨고, 닦고, 널고, 쓸고, 치우고, 버리고...이 일은 매일 매주 반복된다.

 

*

 

문제는 두 가지를 다 할 순 없단 거다. 혼자 살면서 일과 집안일 두 가지를 완벽하게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그런 슈퍼 인간이 있을 순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둘 중 하나밖에 못 한다. 애매하게 둘 다 제대로 하려고 들었다간 꼬질꼬질한 내 집처럼 시원찮은 결과물만 남기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쓰는 게 더 나은 걸까? 올해 반강제적으로 집에 머물게 되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집을 좋아하고, 집안일을 좋아한다는 사실.

 

나는 투덜대면서 집안일을 시작했지만 이내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퇴근할 때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 와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일이나, 강변 산책까지도 즐거워졌다. 어느새 집고 동네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루트,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안정감이 몸에 익었다. 나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과 함께 어떤 평화로움도 느끼고 있었다.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지금은 쉬더라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10월로 접어들고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심경은 다시 한번 변했다. 내가 집안일을 너무 좋아하게 된 나머지 코로나가 끝나고서도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집을 선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취업이나 자소서를 위해선 경험과 생산성을 중요시하는데, 나는 집에서 완벽한 멸치육수를 내는 데나 시간을 쓰는 사람이 된 거 같은 불안감. 나는 일상을 꾸려가는 일의 노고와 중요성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면서도 너무 소박하고 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예를 들어 우리 엄마나 할머니처럼. 다시 예전처럼 생산적인, 계속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피곤한 일, 사회에서 내 경쟁력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일들이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고...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복잡한 감정이 집 안에서 혼자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이게 다 코로나가 너무 오래 가는 탓이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고민만 많아진다.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고, 작은 것들에 집중할 때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올해 잡동사니 더미 사이에서 십 년 전에 쓴 일기를 발견했고, 중학교 때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도 찾았다. 둘 다 진작에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강에서 오리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 오리들이 다 자란 오리가 되는 것도 보았다. 이런 작은 것들이 지속적인 거리 두기 상황에서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더라도 생명은 자라고, 시간은 흐르는구나. 여행을 못 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는 않구나. 2020년이 내게 알려준 건 세상이 잠시 멈추면 멈추는 대로, 내가 다듬어야 할 일상이 있고 내가 맛볼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바로 곁에도 아름다운 건 정말 많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집중할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다. 전염병이 내게 그 기회를 주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내년은 어떻게 될까? 부디 코로나 시국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침울해지긴 해도 나는 올해를 거치면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능력을 얻었다. 집에서 심심해하지 않는 능력.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나와 일상을 가꾸는 기술. 이 기술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든든하고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딜 가서도 나는 일상을 유지할 능력을 얻었으니까. 이제 내가 바라는 건 안과 밖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두 가지 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둘 사이에 어느 정도 조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게, 파도를 타는 기분으로.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가고 서로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 그립지만, 이제 나는 그런 시간만큼이나 다른 시간도 사랑한다. 빨래를 하고 커피 물을 끓이고 가만히 앉아서 오래된 일기를 읽어보는 시간. 소소하지만 끝내고 났을 땐 더없이 뿌듯한, 조용한 순간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국을 통해 이런 순간을 음미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라져서 안이건 밖이건 모두가 사랑하는 시간을 걱정 없이 마음껏 누리는 일이지만.

   

나의 내년 목표는 분명하다. 운동하기. 어떤 순간이건 충분히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체력이니까, 그리고 일이든 공부는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꾸준히 성실하게 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말기. 나는 내 일상이 너무 혹사당한 나머지 뚝 꺾이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러러면 갑자기 길이 막히더라도 방향을 틀 수 있는 유연함과 균형이 필요하겠지? 올해를 발판 삼아 내년에는 그런 인생 기술을 익히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진 아직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삶이 내게 가르쳐주겠지.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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