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수식의 감수성 -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글 입력 2020.11.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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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수학


 

학창시절 나는 수학에 관해서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다. 수학의 뚜렷한 계열성은 내가 수학을 시도할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하였다. 나에게 수학은 담임 선생님이 내밀어 주는 보충반 신청서로 기억된다. 거듭된 경험은 하나의 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그런 내가 수포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 학생에게 수포자라는 낙인은 이후 삶의 중요한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문 이과 선택을 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많은 학생의 선택에 있어 수학은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특별한 다른 조건이 없는 경우, 많은 학생이 '수학을 잘하는가?'에 대한 대답에 따라 문이과를 선택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문과와 관련된 교과목을 더 즐기기도 했지만, 수학을 못한다는 하나의 믿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이과 직종'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뒤늦게나마 수학과 과학, 컴퓨터 기술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수학에 대한 낮은 학업효능감이 수학적 원리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그를 이용한 기술을 습득할 생각을 차단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나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믿음은 한 학생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경험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수학은 너무나 쉽게 소수를 위한 과목 취급을 받곤 한다. 학창시절 나도 그렇게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다. 그렇게 만드는 미세한 권력의 차이와 허영심이 있을 뿐이다. 다른 학문이 그러하듯, 수학적 원리를 발견하고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수학을 이해하고 즐기는 자체에 대한 큰 장벽이 없다. 그리고 수학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니 더 뻔히 느껴지는 것은 계급이나 학문 간 경계가 우리의 목을 영원히 조른다는 사실 뿐이다.


대학을 다니는 중에도 나는 내가 철저하게 '문과'라는 틀 안에서만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수학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나는 너무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삶을 설명할 수 없고 흠잡듯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학부 시절에 통계를 배우면서 이러한 믿음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 다시 만난 수학은 뇌를 가르는 도끼와 같았다. 정교하게 논리로 증명해낸 전제들이 하나의 수식을 이루는 과정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다웠다. 수학은 때로 하나의 문장보다 깊은 철학처럼 느껴졌다. 왜 수많은 철학자가 수학을 공부했는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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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속 살아 숨 쉬는 철학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 나는 다시 빅데이터를 공부하게 되었다. 다시 수학을 마주하면서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중학교 수학 교과서를 펴 읽으면서, 왜 이렇게 수학의 매력이 다르게 다가오는지를 고민했다. 다양한 원인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프레이밍 방식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수학은 감성과 로맨틱이 제거된 것이었고, 단순히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과정 이상을 학생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대학 이후에 만난 수학은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명으로서 존재했다. 하나의 문제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본질을 이해하고 실생활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나는 내가 과거에 잃어버린 경험만큼이나 수포자들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을 오늘날 수학에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를 PRESS 도서로 선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우리에게 수학의 이미지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것이지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복잡한 수식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수학이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삶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수학은 무한한 상상력이 될 수 있고 인생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를 변화시키는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하며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자극해주기도 하지요. 수학이 줄 수 있는 이런 지혜의 메시지들이 오가는 수학 교실을 상상해봅시다."

 

- 프롤로그 중

 

 

"데카르트는 움직이는 어떤 물체라도 반드시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좌표평면에 그래프로 나타내어 서로를 연결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복잡한 자연현상을 종이와 연필의 세계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프를 그리고 대수식과 연결하여 물체의 운동을 최초로 연구한 데카르트는 이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분법을 발견하고 학문으로서의 미적분학을 체계적으로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 180쪽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는 문제풀이 중심 수학교육의 대안이다. 수학 문제 풀이 해결 과정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수학과 삶을 감상적으로 연결한다. 글 대부분이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차함수 그래프의 아랫부분과 x축 x=1로 이루어진 부분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미적분학의 기본원리를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은 정의를 외우고 대입하는 기존 수학교육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수리 문제에 대한 문제 해결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이 과정 끝에 저자는 감상적인 언어로 수식을 재매개한다. 아까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차함수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차수를 낮춘 미분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차원을 바꾸어보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원리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책을 이끌어가고 가장 감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저자의 힘이다. 글을 읽는 내내 저자가 얼마나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수학을 바라보고, 자신이 배운 것을 얼마나 간절히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 수학적 원리를 저자의 경험과 가볍게 연결하는 이 책은 무겁게 전달되지 않는다. 책의 목차는 다루는 수학적 개념의 확장에 따라 무한, 점, 변화, 연결로 나누어진다. 이는 각각 무한한 차원 속에서의 세계, 빈틈없이 아름다운 소수의 비유로서의 점,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 새로운 세상과 연결과 대응된다. 하지만 각 섹션이 엄밀하게 구분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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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수포자라는 이름 아래에 너무 많은 학생이 자신의 가능성을 지워버리고 있다. 학생들의 진로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길목에 있는 것이 고작 '수학에 대한 자신감'인 것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 문이과의 구분은 흐릿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학적 지식은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학습부진 문제가 가장 심한 과목이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9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의 수학 교과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4.1%), 영어(3.3%)와 비교해 가장 높은 11.8%로 나타났으며 2017년(7.1%), 2018년(11.1%)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와같은 현상이 개인적 특성에 의한 것일까? 정말로 소수만이 즐기고, 많은 학생이 포기하고 마는 것이 개인의 적성이나 흥미에 의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포자를 만드는 데에는 너무 많은 요인이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한 하나의 프레이밍 방식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실생활과 동떨어진 지식은 시작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낀다. 어린아이가 마침내 오롯이 서게 되거나, 물건을 조작할 수 있게 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과 같다.


수학을 재미없고 생기 없게 만드는 것은 흔히 말하는 '입시교육'의 틀 이상에 있기도 한다. 너무 어렵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단순하기도 한 것이다. 바로 교사 역할의 재정의다. 이 책은 교사가 수학과 교육에 대해 가진 진실한 열정의 결과물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달되는 수학은 분명 죽은 수학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교육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 오늘날, 모든 교육자가 다시 한번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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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점에서 무한까지, 나를 만나는 수학공부

 

지은이

반은섭


분야

자연과학


쪽수

236쪽


펴낸곳

궁리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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