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 [사람]

글 입력 2020.11.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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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지막 촬영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만든 영화는 이제 심사위원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남은 건 그냥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네요. 우리끼리의 톡방에는 이런저런 유머와 함께 결과에 대한 기대와 긴장이 감돕니다. 기왕이면 마지막 작품인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밥모임을 가장하며 지난 6년 동안 끌어왔던 우리들의 인연은 내년이면 각자의 길을 향해 뿔뿔이 흩어집니다. 셋은 학교를 떠나고, 잠시 떠나있던 나는 도로 학교로 돌아와 마지막 학기를 보내야 합니다. 아마도 이제 우리가 우리의 이름으로 함께 영화(영상)를 만들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만큼 많이 만들었고, 후회없이 즐겼으니까. 다만 그런 와중에 신기한 게 하나 있다면 우리 중 아무도 이 업계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 정도? 뭐, 상관 없습니다. 원래부터 우리에게 영화라는 건, 영상이라는 건 취미의 영역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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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취미라곤 하나, 프로젝트에 임할 때마다 갖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밤샘 회의와 촬영, 편집이 함께 하는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투정 부릴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밤샘 작업에 지친 나를 보며 이렇게 묻기도 했습니다. 혹시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냐고.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또 다른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꿈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애를 쓰는 거냐고.

 

하지만 글쎄요.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던가요. 별거 아닌 일에 애 좀 쓰면 어때서요. 그냥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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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영화를 만든 이유는 그냥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좀 많이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무 살에 친하게 지내던 동기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동아리에 가입했고 활동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거나, 영화계에서 일해보고 싶다거나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 잠깐이지만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있었네요.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디 공모전에 나가 상이라도 받으면 영화 좀 만들어 본 평론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었거든요.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유치한 생각이지만요.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사소했던 것치고는 분에 넘치는 행복을 받았다고나 할까. 비록 동아리에서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그 시작을 계기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멋진 이야기를 쌓았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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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일까요? ‘Writer'입니다. 화가는 ’Painter'라고 합니다. 음악가는 ‘Musician'이죠. 이들 단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단어가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감독을 의미하는 영단어는 특이하게도 ’Director'입니다. 직역하자면 ‘지시하는 사람’ 쯤 될텐데 도대체 왜? 대관절 무슨 이유로?

 

그 대답은 영화라는 예술의 특성에 달려 있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종합예술입니다. 우선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이건 문학의 영역입니다. 이다음엔 시나리오를 어떻게 영상으로 담아낼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건 연출의 영역입니다. 배우들도 필요합니다. 그들의 영역은 연기입니다. 배우들이 입을 의상을 고르고, 그들이 연기할 무대를 세팅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건 디자인이죠. 아, 사운드가 빠질 수는 없겠죠. 이건 음악이 해줄 몫입니다.

 

이렇듯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카메라 감독, 조연출, 스크립터, 미술감독, 조명감독, 작곡가, 배우, 제작자 등등.

 

하나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수십 편의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똑같은 시나리오를 읽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머릿속에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영화를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장면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생각하는 영화가 달라지는 겁니다.

 

덕분에 현장에서는 늘 다툼과 잡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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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의 의견이 잘못됐고, 누구의 의견이 더 잘났고를 가려내는 건 무의미합니다. 하나의 영화는 곧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런 세상이 있으면, 저런 세상도 있는 거죠. 다툼과 잡음은 그냥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을, 수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영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통합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영화감독입니다. 영화감독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Director'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감독이 가져야할 첫 번째 직업 윤리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타인과 그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포용입니다.

 

그러니 영화를 만든다는 건 곧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다름을 조율하고 통합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타인에 대한 미움이 판을 치는 오늘날에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학교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함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다지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친구는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나는 동아리와 끝이 좋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덕분일까요. 그래서 나도 이제 그의 사정을 이해할 여유가 생긴 걸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그 녀석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에게 참 놀랍습니다. 어쩌면 영화를 찍으며 배웠던 것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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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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