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은 마음의 마중물이다 -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20.11.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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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는 작가 김은섭 본인의 암 투병 중의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위로와 용기를 받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발병과 입원, 통원치료와 항암 종료에까지 써 내려간 이야기는 진솔했고, 솔직담백했다. 가슴에 닿았던 위로를 또 다른 독자들을 향해 선물해주는 이 ‘책’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에,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나를 담아낼 수 있었다.

 

시간 흘러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곳곳에,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멋진 문구들의 향연이 이 책의 큰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술방 문이 열리고 나를 태운 이동식 침대만 홀로 미끄러졌다. 문이 닫히자 이빨이 덕덕거리는 한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수술하는 동안 세균 번식을 막으려 수술실을 일부러 춥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수술하기도 전에 내가 세균보다 먼저 얼어 죽겠구나.’ 생각했다.

 

_60p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대한 격한 공감이 일었다. 나도 몇 년 전,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몸속에서 느닷없이 자라난 작은 혹 때문이었다.

 

응급수술로 늦은 저녁 수술실로 들어간 나는, 온기 따윈 없는 병상과 수술대에서도, 수술 후 마취에 깨고 나서도 생각했다. 추워서 사람 얼어 죽겠다고. 이건 아닌 거 같다고 말이다. 턱이 위아래로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두꺼운 담요 두 장을 얹어주셨던 간호사 덕분에 살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드라마에서 환자 시점으로 천장의 형광등이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철없던 나는 ‘저런 경험 언제 해보냐, 나는 왜 이렇게 건강한가.’ 생각하며 부러워했었던 게 생각난다.

 

막상 경험해보니 전혀 환영할 만한 경험은 아니더랬다. 아픈 사람들, 약 냄새, 머리하나 제대로 감지 못하는 뭣 같은 몸뚱아리, 골골대는 내 걸음걸이. 현실은 평평한 TV 속 드라마처럼 평면적이지 않았고, ‘다 필요 없다. 건강이 최고다.’는 것만 뼈저리게 체험하고 퇴원했었다.


 

아프면 돈도 명예도 부질없다. 최소한 “아, 돈이나 더 벌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돈으로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는다고 해도 내 몸뚱이는 매일 씻어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 필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난 행복한 사람인 거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_11p

 


정말이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집.’ 집에 가고 싶었다. 뭐든 다 괜찮으니 아프더라도 덜 아프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명품 지갑 줄까, 머리 감게 해줄까 하면 후자를 선택할 거라고. 명품 옷 선물로 받을래 아니면 가족과 병원 로비에 앉아 이야기할래 하면 역시 후자를 선택할 거라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램프 요정 지니가 진짜 나타난다면 나 정말 1초의 머뭇거림 없이 말할 자신 있는데,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내가 현재 누리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행복이었다. 멀리 있지 않았다. 따뜻한 밥, 누울 수 있는 공간, 가족들, 마실 수 있는 공기 등. 태평양 너머 저기 먼 대륙 안에 내가 찾는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가끔은 아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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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이지, 사건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 알리가 세상을 떠난 그 날, 모든 것이 멈추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 가능성이 주어졌다. (1) 평생 마음의 고통과 씨름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알리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2) 암울한 생각을 중단하고, 알리를 추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는 길을 선택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견디기 쉬운 곳으로 만든다. 나는 (2)를 선택했다.

 

_164p (행복을 풀다, 52쪽)

 


사건을 fact(팩트)로 인식하되 생각으로 자신을 가두어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멀리하라는 말이다. 나의 경험상, 생각에 생각을 잇고, 생각이 아래로 무거워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반복한 것치고 끝이 좋았던 적은 없다.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끼는(220p) 대신, 오래 머물러 있지 말고, 앞으로 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WHY’보다는 ‘HOW’를 생각하라 했던 어떤 한 도서의 구절도 함께 생각나게 한다.


상사에게 혼나, 자신을 ‘말꼬리 잡힌 상상력이 떠들어대는 혼자만의’ 세계에 가둘 것이 아니라, ‘일의 실수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사실/사건으로 보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생각에 생각을 더해 자신을 불평과 스트레스의 늪’으로 인도하기보단, ‘문제를 해결하는’(그만두거나, 다른 일로 옮기거나 등) 방법(HOW)으로 이끄는 편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세상의 몇몇에선 나만 겪는 일이란 것도, 남만 겪는 일이란 것도 없다더라.


 

커다란 격랑 속에서

기뻐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게나.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게


도연명의 <신석> 中 _57p


 

위 구절은 슬픔도 고통도 한순간,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언제 끝날까 했던 일은 이미 끝을 보인다. 언제 다 쓸까, 언제 괜찮아질까 고대했던 미래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여지없이 과거가 된다.

 

억울하리만치 시간은 나에게 타격을 주었던 그때 그 모든 것을 싣고 멀어진다. 생생했던 과거가 아주 조금이나마 무뎌지는 건 현재를 살기 때문이리라. 가끔 나의 기대와 희망을 미래에 맡기곤 했다. 잠겨있는 미래는 ‘살아 있는’ 오늘이 아니면 열릴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살아 숨 쉬는 오늘에 애착을 담자.


 

 

끝으로, 좋았던 구절을 담아낸다.



삶에 대한 애착은 내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오늘’에 쏟아야 함을 깨달았다. (57P)

 

∨ 내가 품은 고민의 답은 책 속에 있다기보다는 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독서는 무의식 저 끝에 숨어있던 결정적인 해답을 끄집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할 뿐이다. (75p)

 

∨ 언젠가 우리는 분명히 죽을 것인데, 암에 걸린 이유를 찾는 게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그럴 바엔 차라리 암에 걸린 걸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더 잘 살기를 모색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205p)

 

∨ Q.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은 무엇인가? / A.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 세상의 것에 매달리지 말라.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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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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