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신광수

글 입력 2020.11.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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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만난 친구. 그래서 그런지 첫인상은 그저 노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 어울려 노는 걸 즐기긴 하지만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이렇게나 중요할 수가 있구나. 파티에서 본 사람은 가벼울 것이라는 편견. 나도 똑같이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는데 말이지.


진한 인상과 열정적인 성격 때문에 큰 면적으로만 이루어져있을 줄 알았다. 진하고 강한 색들만. 그런데 그리고보니 (알고보니) 작고 세심한 면들이 많았다. 내 편견은 이렇게 또 깨져나간다.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면서 손을 계속 움직였다.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생각이 많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생각이 늘어난다. 생각이 늘어나면 손을 움직일 수가 없다. 생각을 멈추고 싶어서, 줄이고 싶어서 일단 많이 움직였다. 행동으로, 움직임으로 머리를 막는다. 언제나처럼 감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요즘 난 그림 스타일에 고민이 많아.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없어.”

“그럼 생각을 비우고 그려봐. 고민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너를 갉아먹는 것 같아.”

 

너는 가끔씩 아무렇지 않게, 핵심을 찌르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네가 나를 그려준다고 해서 되게 설랬었는데, 알고 보니까 너는 나를 그리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느낌을 네가 표현하는 거였구나."

 


팡수1.jpg

 

 

일단 색들을 칠했다. 예상했던 큰 면적이 아니었다. 더 작고 작은 색면들의 조합이었다. 많아지는 색깔들. 면적인지 선인지 모를 이미지를 사용했다. 생각 비우기를 계속 염두하며 그려서 다행히도 눈 두개를 그리지는 않았다. 얼굴도 다 그리지 않았다. 고민하고 주저하는 궤적도 함께 남기며 겨우 드로잉을 끝마쳤다.

 

“짠, 그림 어때?“

“모닥불 같아.”

“아하하, 그렇구나. 그리고 또?”

“글쎄, 그 외에는 더 모르겠어. 나는 평면적으로 실체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편이야. 그래서 나는 항상 해석이 필요해. 해석 없으면 '그냥 그렇구나'라고 밖에는 못받아들여. 비유를 모르겠어. 그래서 영화 해석도 찾아서 봐야 그 은유나 비유를 알게 돼. 아니면 난 그 정도가 끝이거든. 이번에 네가 그려준 그림은.. 그냥 모닥불같아. 이게 내 감상이야.“

 

놀라웠다. 나는 참고하는 정도로만 다른 해석들을 찾아보는데, 그 해석 없이는 사고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니. 신기했다. 나는 비유와 분석, 의미를 나름대로 느끼지만 굳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말을 안했고, 남들도 나처럼 그냥 표현 안하는 줄 알았는데. 사고 방식이 달랐던 것이구나. 내가 수학적 사고로 계산과 어림잡는 수치를 전혀 못하는, 그런 감각과 같은 영역인 것 같기도 하고. 평소에도 경험에 대해 표현을 잘하는 친구인데 상징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이후 이 신기한 깨달음을 영화하는 다른 친구와 얘기를 했다. 이 새로운 느낌을 영화하는 친구에게 말하니, 그 친구는 이런 대답을 했다. “그래서 예술성과 대중성이 중요한 거야. 대중성을 잡아야 하거든. 어렵게 생각 안해도 바로 보여지는 내용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해.”

 

이해하기 쉽게. 배려가 아니라, 또 다른 영역의 노력이라는 걸 알았다.


*


고민 걱정을 얘기하면, 답을 내리지 않고 공감을 너무나 잘해줘서, 그리는 내내 투정만 부린 것 같다. 너무 고맙게.

 

“형태를 벗어나고 싶어. 그런데 자꾸 들어가고 있어.”

“너는 느낌을 그리는구나. 그럼 이번에 날 그릴 때는 내가 움직일게. 내 형태를 보지 않고 그려봐. 어때?”

“좋은 생각이야.”

 

 

팡수2.jpg


 

좋은 아이디어에 무색하게 행동이 좀 웃기기는 했다. 계속 산만하게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바꾸고 움직였으니까. 그래도 이런 저런 시도는 해봐야지. 확실히 ‘느낌’을 잡아서 그린다고 생각하니까 훨씬 더 형태 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눈썹과 코, 입 위치만 대략 형상으로 잡혔다. 움직이는 느낌 부분부분 흰색으로도 덮었다.

 

크래프트지는 밝은 색이 잘나와서 참 좋다. 연필 선으로 움직이는 눈의 흔적 궤도를 남겼다. 고민하는 부분과, 시선을 쫓아 잡는 부분과 놓아주는 부분까지. 훨씬 더 자유로운 그림이 나왔다.

 

“이번 그림은 내 이름 같아. 내 이름이 ‘물가를 비추는 사람’이란 뜻이거든.”

“난 네가 태양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름 뜻은 달랐구나. 난 너를 만나면 항상 광합성하는 기분이야. 열정도 많고, 밝고, 따뜻해서. 근데 그 확실한 에너지, 열에 비해서 그림은 작게 쪼개서 세밀하게 나왔어. 그래서 의외였고.”


작은 곳까지 전부 배려심이 많은 너를 알게 되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과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섬. 한강 물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쌀쌀한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해가 지는 시간에 시작해서 다 그리고 보니 어두운 저녁이 되었다. 핸드폰 조명에 겨우 의지해서, 색도 뚜렷히 구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오롯이 대화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참 좋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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